144:0.1 (1617.1)9월과 10월에는, 길보아산 비탈에 자리잡은 한적한 야영지에 은거하면서 지냈다. 예수께서는 9월 한 달을 여기서 사도들과 함께 따로 지내면서, 천국 진리에 입각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144:0.2 (1617.2)예수와 사도들이 이때 사마리아와 데가볼리의 경계지역에 은거하면서 지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적대감이 무척 심해졌으며;헤롯 안티파스는, 요한과 예수께서 어떤 면에서든지 서로 관련돼있다고 계속 의심하면서 요한을 여전히 감옥에 잡아둔 채, 석방하거나 처형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유대지방 또는 갈릴리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계획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셋째 이유가 있었는데:요한의 측근 제자들과 예수의 사도들 간에 싹튼 긴장감이 점차 심해졌으며, 신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더 나빠졌다.
144:0.3 (1617.3)예수께서는, 가르치면서 전도하는 예비 업무 기간이 거의 끝났고, 다음 단계로 자신의 지상 생애에서 온전하고 최종적인 분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 이행업무의 개시가 어떤 면에서든지 세례 요한을 시험하거나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한동안 은거하면서, 요한이 처형되든지 아니면 석방되어 공동으로 수고하려고 그들과 연합할 수 있을 때까지, 사도들을 재훈련시키면서 데가볼리의 도시들에서 조용히 지내기로 결정했다.
1. 길보아에서야영함
144:1.1 (1617.4)시간이 지나면서, 열두 사도는 예수께 더욱 헌신하고, 천국 업무에 점점 더 열중하게 됐다. 그들의 헌신은 대부분 개인적 충성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다방면의 가르침을 파악하지 못했으며;예수의 본성 또는 이 세상에 증여된 사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다.
144:1.6 (1617.9)길보아에서 기다리는 동안, 예수께서는 자신의 초기 생애와 헤르몬 산에서 겪은 체험에 대해, 열두 사도에게 많이 이야기했으며;또한 자신이 세례 받은 직후에, 언덕에서 40일 동안 일어난 것 가운데 일부를 알려줬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이 체험에 대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직접 당부했다.
144:1.7 (1618.1)이 9월에 몇 주 동안 휴식하면서 방문했고, 예수께서 처음에 그들을 불러서 봉사하게 한 이래 체험한 것에 대해 회상했고, 그때까지 주님이 그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조화시키려고 진지하게 애썼다. 그들은 모두 이번이 장기간 휴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임을 어느 정도 눈치 챘다. 그들은 유대지방 또는 갈릴리에서 곧 있게 될 대중 사역이, 도래하는 나라에 대한 최종 선포의 시작임을 깨달았지만, 천국이 도래했을 때, 그것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는 확립된 관념을 거의 또는 전혀 갖지 못했다. 요한과 안드레는 천국이 이미 임했다고 생각했으며;베드로와 야고보는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믿었으며;나다니엘과 도마는 어리둥절하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으며;마태와 빌립과 열심당 시몬은 확신 없이 혼동했으며;쌍둥이 형제는 행복에 겨워서 논쟁에 무관심했으며;가룟 유다는 모호한 태도로 침묵했다.
144:1.8 (1618.2)예수께서는 이 시절 대부분을 야영지 근처 산에서 홀로 지냈다. 이따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갔으나, 홀로 기도하거나 교류하려고 물러나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베레아 언덕에서 40일을 지낸 후에 아버지와 교류한 이 시절을 기도라고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또한 예수께서 경배 드렸다고 말하는 것도 모순이지만, 아버지와 개인적으로 교류한 시절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대체로 정확하다.
144:1.9 (1618.3)9월 한 달 동안 토의하는 중심 주제는 기도와 경배였다. 경배에 대한 토의를 여러 날 한 후에:“주님, 우리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도마가 요청한 데 대한 대답으로, 예수께서 기도에 관한 기억에 남을만한 강론을 했다.
144:1.10 (1618.4)요한은 전에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는데, 도래하는 나라에서 구원을 얻기 위한 기도였다. 예수께서 따르는 자들에게 요한의 기도 형식을 금지한 적은 없었지만, 그런 고정되고 틀에 박힌 기도문을 중얼거리는 습관을 주님이 온전히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들은 아주 일찍부터 감지했다. 그럼에도 신자들은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끊임없이 요청했다. 열두 사도는 예수께서 허락할만한 간구 형식을 알고 싶어 했다. 주로 일반인들을 위한 간단한 기원문이 필요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때 도마의 간청에 응답하면서, 함축성 있는 기도 형식을 그들에게 가르쳐주기로 허락했다. 예수께서는 길보아 산에서 머물던 셋째 주 어느 날 오후에 이것을 훈계했다.
2. 기도에관한강론
144:2.1 (1618.5)“요한은 정말로 너희에게 간단한 기도 형식을 가르쳤다:‘오, 아버지여,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영이 우리 마음을 영원히 정화시키게 하옵소서, 아멘!’ 그는 너희가 군중에게 뭔가를 가르칠 수 있도록 이 기도문을 가르쳤다. 기도하는 너희가 자기 혼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그런 판에 박힌 형식적 기원문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었다.
144:2.2 (1618.6)“기도는 영{靈}을 향한 혼{魂}의 태도인,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표현이며;기도는 아들신분으로서 하는 교류와 친교의 표현이어야 한다. 기도는, 영이 표현했을 때, 협동하는 영적 진보로 인도한다. 이상적인 기도는, 지성적 경배로 이끄는 영적 교류의 한 형태다. 참된 기도는, 너희의 이상{理想}을 달성하려고 하늘을 향해 손을 내미는 진지한 태도다.
144:2.3 (1619.1)“기도는 혼의 호흡이며, 아버지 뜻을 확인하려고 계속 시도하도록 너희를 이끌어야한다. 너희 중에 누가 이웃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에게 가서:‘친구여,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나를 만나러 왔으나, 나에게는 그들에게 차려낼 것이 하나도 없으니, 빵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했지만;그가:‘나를 괴롭히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내가 잠자리에 누웠으니;일어나서 너에게 빵을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면, 너는 너의 친구가 배고프다는 것과, 그에게 줄 음식이 없다는 것을 계속 설명할 것이다. 너희에게 말하는데, 비록 너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일어나서 빵을 주지 않을지라도, 너의 끈질긴 요청으로 인해 그가 일어나서 너에게 필요한 만큼의 빵을 줄 것이다. 이렇게 끈질김이 필사적 사람에게서도 호의를 얻을 수 있다면, 너희가 영으로 끈질기게 구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기꺼이 주시는 손에서 생명의 빵을 얼마나 더 많이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다시 말한다: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찾으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요;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구하는 자마다 받고;찾는 자가 발견하고;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144:2.4 (1619.2)“만일 자녀가 미련하게 요청했을 때, 자녀의 잘못된 간청 그대로가 아니라 부모의 지혜에 따라서 주기를 주저할 아버지가 너희 중에 있겠느냐? 자녀에게 빵이 필요한데, 미련하게 돌덩이를 원한다고 해서 자녀에게 돌덩이를 주겠느냐? 너희 자녀에게 생선이 필요하다면, 그물에 생선과 함께 물뱀이 우연히 걸려들었고, 아이가 바보스럽게 그 뱀을 원한다는 이유 때문에, 너희가 그 뱀을 아이에게 주겠느냐? 그렇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너희도 기도에 응답하는 방법을 알고, 너희 자녀에게 유익하고 알맞은 선물을 준다면, 하물며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요청하는 자에게 영{靈}은 물론이고 추가적인 복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사람은 항상 기도해야하고, 낙심해서는 안 된다.
144:2.5 (1619.3)“어느 사악한 도시에 살던 한 재판관 이야기를 해주겠다.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했다. 그 도시에 가난한 과부가 있었는데, 이 불의한 재판관에게 거듭 와서, ‘내 원수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가 한동안 듣지 않았으나, 곧 속으로,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지만,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계속 찾아와서 나를 지치게 하지 않도록 저 여자를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끈질기게 기도하도록 너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이며, 너희의 간청이, 위에 계신 정확하고 올바른 아버지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너희의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서 너희의 태도를 바꾸고, 영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혼의 수용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144:2.6 (1619.4)“그러나 너희는, 기도할 때 신앙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참된 신앙은, 혼이 성장하고 영적으로 진보하는 길에 우연히 가로놓일 수 있는, 산더미 같은 물질적 어려움을 없애줄 것이다.”
3. 믿는자의기도
144:3.1 (1619.5)그러나 사도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으며;새로 제자 된 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본보기 기도문을 예수께서 주시기를 원했다. 기도에 관한 이 교훈을 듣고 난 후에, 야고보 세베대가 말했다:“주님,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우리에게 자주 간청하는 새 신자들을 위해서, 어떤 기도 형식을 원하는 것입니다.”
144:3.2 (1619.6)야고보가 말을 끝내자 예수께서 말씀했다:“너희가 여전히 그런 기도문을 원한다면, 내가 나사렛에서 내 형제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알려 주겠다:
144:3.13 (1620.11)신자들을 위한 모범 기도문을 가르쳐달라고, 사도들이 예수께 원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세례 요한은 추종자들에게 여러 기도문을 가르쳤고, 모든 위대한 선생도 학생들을 위한 기도문을 고안했다. 유대인 종교 교사들은, 회당에서나 길거리 모퉁이에서도 낭송하는, 스물다섯 내지 서른 개의 고정된 기도문을 갖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특히 공공연하게 기도하는 것을 혐오했다. 열두 사도는 이때까지 그가 기도하는 것을 겨우 몇 번 들었다. 그들은 그가 온 밤을 기도나 경배로 지새우는 것을 봤으며, 그가 간구하는 방법이나 형식을 무척 알고 싶어 했다. 요한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들은 군중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를 알아야하는, 정말로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144:3.14 (1620.12)예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언제나 은밀히 기도하라고;기도에 몰두할 때, 훌쩍 떠나 조용한 자연 속에서 홀로 기도하거나,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144:3.15 (1620.13)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아버지께로 상승한 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소위 이 주의 기도문을 마치는 것이 많은 신자의 관행이 됐다. 그리고 훨씬 나중에는 복사하는 과정에서 두 줄이 빠지게 됐고:“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구절이 이 기도문에 더해졌다.
144:3.16 (1620.14)예수께서는 나사렛 집에서 기도했던 것과 똑같은, 공동체 형식의 기도문을 사도들에게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문구를 가르친 적이 없었으며, 오직 집단이나 가족 또는 공동체가 드리는 간구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자청해서 그렇게 한 적이 전혀 없었다.
144:3.23 (1620.21)예수께서 산 위에서 기도하며 밤을 지새울 때, 그것은 주로 제자들을 위해서, 특히 열두 사도를 위해서였다. 주님은 낙원 아버지와의 교류를 이해하는 본질의 경배에 많이 몰두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한 적이 거의 없었다.
4. 기도에대한부연설명
144:4.1 (1620.22)기도에 관한 강론이 있은 다음에 여러 날 동안, 사도들은 이런 가장-중요하고 경건한 습관에 관해 주님께 계속 질문했다. 이 기간에, 기도와 경배에 관해 사도들에게 준 예수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현대 용어로 요약되고 다시 서술될 수 있다:
144:4.2 (1621.1)어떤 간구든지 진지하고 간절하게 반복하는 것은, 그런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의 진지한 표현이고 신앙으로 표현된다면, 아무리 경솔하든지 또는 직접 응답이 불가능하든지 상관없이, 영적 감수성을 위한 혼의 수용력을 확장시키기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144:4.3 (1620.10)기도할 때마다, 아들신분이 선물임을 기억해라. 어떤 자녀든지, 아들이나 딸의 신분을 획득하려고 무엇인가를 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 자녀는 부모의 뜻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으로 은혜를 입고 영의 새 생명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하늘 나라를--곧 신의 아들신분을-- 어린아이가 하듯이 받아들여야한다. 의로움--곧 점진적 성품 발달--은 너희가 노력으로 얻지만, 아들신분은 은혜로 신앙을 통해서 받는다.
144:4.4 (1620.11)예수의 혼이 온갖 우주의 최상급 통치자들과 초월교통을 이루도록, 기도가 그를 이끌어 올렸다. 기도가 이 세상 필사자를 참된 경배의 교류로 이끌어 올려줄 것이다. 영적 감수성을 위한 혼의 수용력이, 하늘로부터 오는 복{福}의 양을 결정하는데, 그 복은 개인적으로 소유될 수 있고, 그 복이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의식{意識}하여 깨달을 수 있다.
144:4.5 (1620.12)기도, 그리고 그에 관련된 경배는, 매일의 일상적 삶 곧 물질 실존의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해방되는 기법이다. 기도는 영성화된 자아-실현에 접근하고, 지적 및 종교적으로 달성하는 개성에 접근하는 통로다.
144:4.6 (1620.13)기도는 해로운 자기반성에 대한 해독제다. 적어도,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는 혼에게 유익한 그런 혜택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동료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의 유익한 영향력을 끊임없이 이용했다. 주님은 대개 단수{單數}가 아니라 복수형{複數形}으로 기도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 생애 가운데 큰 위기가 닥칠 때 이외에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한 적이 없다.
144:4.7 (1620.14)기도는, 인류의 여러 종족이 세운 물질 문명 한가운데서 영 생명체가 하는 호흡이다. 경배는, 쾌락을-추구하는 필사자 세대를 구원한다.
144:4.8 (1620.15)혼의 영적 건전지를 재충전하는 것에 기도가 비유될 수 있는 것처럼, 경배는 우주 아버지의 무한한 영이 보내는 우주 방송을 수신{受信}하려고, 혼 속에서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144:4.9 (1620.16)기도는, 자녀가 영 아버지를 진지하고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며;인간의 뜻을 버리고 신의 뜻을 취하는 심리적 과정이다. 기도는, 현 상태를 고쳐서 장차 반드시 돼야하는 상태로 만들려는, 신의 계획 가운데 일부다.
144:4.10 (1620.17)예수께서 길게 밤을 지새우는 경우에 그토록 자주 동행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그가 기도하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유는, 주님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예수의 모든 기도는 영으로 그리고 마음으로--곧 말하지 않고-- 했다.
144:4.11 (1620.18)모든 사도 중에서 베드로와 야고보가, 기도와 경배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을 가장 정확하게 납득했다.
5. 다른형식의기도
144:5.1 (1621.11)이 세상에 머물던 나머지 기간에, 예수께서는 때때로 추가적인 여러 기도 형식을 사도들에게 알려줬지만, 그것은 단지 다른 일을 설명하는 방편으로 주어졌고, 이 “비유적인 기도”를 군중에게는 가르치지 말라고 분부했다. 그것들 가운데 다수는 다른 인간거주 행성들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열두 사도에게 밝히지 않았다. 이 기도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144:5.102 (1624.11)사도들은 이런 기도문을 공개적인 가르침 시간에 마음대로 제시할 수 없었지만, 이 모든 계시로부터 자신의 개인 종교 체험에 많은 혜택을 입었다.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상세한 교훈을 주는 과정에서, 이것들 및 모범 되는 다른 기도문들을 설명의 예로 사용했는데, 견본이 될 만한 이 일곱 개의 기도가 이 기록에 복사되도록 특별히 허락됐다.
6. 요한의사도들과협의함
144:6.1 (1624.12)10월 1일 무렵, 빌립과 몇몇 동료 사도가 가까운 마을에서 음식물을 사던 중에, 세례 요한의 사도 가운데 몇 사람을 만나게 됐다. 시장{市場}에서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결과로, 예수의 사도들과 요한의 사도들이 길보아 야영지에서 3주 동안 협의하게 됐는데, 요한이 예수의 전례를 본받아서 최근에 열두 지도자를 사도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충성스런 지지자들의 최고책임자인 아브넬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했다. 예수께서는 이 공동 협의가 있던 첫 주간 내내 길보아 야영지에 있었지만, 마지막 2주 동안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144:6.2 (1624.13)이 달의 둘째 주가 시작될 무렵에, 아브넬은 길보아 야영지에 있던 모든 동역자를 소집했고, 예수의 사도들과 함께 회의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이 스물네 사람은, 삼 주 동안 하루에 세 번씩, 일주일에 엿새 동안 회합을 가졌다. 첫 주에는, 오전과 오후 그리고 밤 회합 사이에 예수께서 그들과 어울렸다. 그들은 주님이 자기들과 함께 있으면서 공동 심의를 주관하기 바랐지만, 그는 그들의 토론에 참여하기를 한사코 거절했으며, 그럼에도 세 번의 경우에 그들에게 말씀을 주기로 동의했다. 예수께서 스물네 사람에게 했던 이 강연들은, 동정심과 협동과 아량에 관한 것이었다.
144:6.3 (1624.14)안드레와 아브넬이, 두 사도회의 합동 모임을 번갈아 주관했다. 이 사람들에게는 토의해야 할 많은 어려움과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이 있었다. 그들이 고민거리를 예수께 거듭 가지고 갔으나, 단지 이런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나는 오직 너희의 개인적이고 순수하게 종교적인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나는 각 개인에 대한 아버지의 대표자이고, 집단에 대해서가 아니다. 너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으면 나에게 갖고 와라, 그러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고, 너희의 문제 해결에 대해 조언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종교적 의문에 대한 다양한 인간 해석을 조정하고 종교를 집단 활동으로 바꾸게 될 때, 너희는 그런 모든 문제를 자신의 판단으로 해결하게 돼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동정심을 갖고 있고 항상 관심을 갖고 있으며, 영적이지 않은 이런 취지의 문제에서 너희가 결론에 도달하고 그것에 모두 동의한 경우에는, 나도 온전히 동의하고 진정으로 협동할 것을 미리 약속한다. 그리고 이제 너희가 심의하는 데 내가 방해되지 않도록 2주 동안 떠나있겠다.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 나를 걱정하지 말라.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할 것인데, 우리에게는 이 영역 이외의 다른 영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144:6.4 (1625.1)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한 후에 산을 내려갔으며, 그들은 2주 내내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이 기간에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스물네 사람은, 자신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을 만큼 진정되기까지 얼마간 시간이 지나야했는데, 주님이 함께 계시지 않아서 당황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은 한 주가 지나기 전에 다시 토론에 열중했고, 도움을 청하러 예수께 갈 수 없었다.
144:6.5 (1625.2)그 모임이 동의한 첫째 항목은, 예수께서 최근에 그들에게 가르쳤던 기도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양쪽 사도들은, 이 기도를 신자들에게 가르칠 것을, 투표해서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144:6.6 (1625.3)그다음으로 결정한 것은, 요한이 살아있는 한, 그가 감옥에 있든지 석방되든지, 열두 사도 두 집단은 각각 현재 일을 계속하는 것과, 수시로 합의할 장소에서 세 달마다 한 주 동안의 합동 모임을 갖는 것이었다.
144:6.7 (1625.4)그러나 그들의 모든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세례 문제였다. 예수께서 그 주제에 대해 어떤 발언이든지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의 어려움이 더 심화됐다. 그들은 마침내 다음과 같이 동의했다:요한이 살아있는 한, 혹은 그들이 합동으로 이 결정을 변경하기 전에는, 요한의 사도들만 신자에게 세례를 주고, 예수의 사도들만 마지막에 새 제자들을 훈련시키기로 한다. 따라서 그때부터 요한이 죽을 때까지, 요한의 사도 중에서 두 명이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예수와 그의 사도들을 따라다녔는데, 이는 천국 업무와 연합한다는 것을 표명하는 데 세례를 첫 단계로 삼도록, 합동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144:6.8 (1625.5)그다음으로 동의한 것은, 요한이 죽을 경우에 요한의 사도들이 예수께 스스로 나아와서 그의 지시를 따를 것이고, 예수 또는 사도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더 이상 세례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144:6.9 (1625.6)그다음에는, 요한이 죽을 경우에, 예수의 사도들이 신성한 영의 세례에 대한 상징으로 물세례를 시작하기로 가결했다. 세례에 대한 설교에서 회개를 포함해야 할지 아닐지는 선택의 여지로 남겨뒀으며;그 집단을 제한할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요한의 사도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전도했다. 예수의 사도들은 “믿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다.
144:6.10 (1625.7)이것은, 다양한 노력을 조화시키고, 의견 차이를 조정하고, 집단 이행업무를 조직하고, 대외 규칙을 제정하고, 개인적인 종교 실행을 사회화시키려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첫 시도에 관한 이야기다.
144:6.11 (1625.8)다른 여러 사소한 일이 거론됐고, 그 해결책이 만장일치로 합의됐다. 예수의 도움 없이 문제들에 부닥치고 어려움을 풀어나가야 할 처지에 놓였던 이 두 주 동안, 이 스물네 사람은 정말로 훌륭한 체험을 했다. 그들은, 서로 의견을 달리 하는 것, 토론하는 것, 논쟁하는 것, 기도하는 것, 협상하는 것을 배웠으며, 그 기간 내내 다른 사람의 관점에 공감하고, 적어도 정직한 의견에 어느 정도는 아량을 베풀기를 배웠다.
144:6.12 (1625.9)재정 문제를 마지막으로 토의하던 어느 날 오후에 예수께서 돌아왔는데, 그들의 심의에 대해 듣고, 그들이 내린 결정에 귀를 기울인 후에 말씀했다:“그렇다면 너희가 이렇게 결정했으니, 나는 이 일치된 결정의 참뜻을 너희 각자 실행하도록 도와주겠다.”
144:6.13 (1626.1)이때로부터 두 달 반 후에 요한이 처형됐고, 이 기간 내내,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와 열두 사도와 함께 남아있었다. 그들은 모두 데가볼리의 도시들에서 이렇게 수고하는 계절 동안 함께 일했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줬다. 길보아 야영지는 서기 27년 11월 2일에 해체됐다.
7. 데가볼리의여러도시에서
144:7.1 (1626.2)11월과 12월 내내, 예수와 스물네 사람은 데가볼리의 그리스 도시들에서 조용히 일했는데, 주로 스키토폴리스, 거라사, 아빌라, 가다라 등지에서 일했다. 이것은 정말로 요한의 업무와 조직을 넘겨받는 예비 과정 중에서 마지막 기간이었다. 새 계시를 사회에 퍼뜨린 종교는, 구원을 모색하는 기존 종교의 형식 및 관례와 절충하는 값을 반드시 치르게 마련이다. 세례는, 사회에 자리잡은 한 종교 집단으로서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을 흡수하려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치러야했던 값이었다. 요한의 추종자들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과 합치면서, 물세례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144:7.2 (1626.3)데가볼리의 도시들에서는 예수께서 대중에게 거의 설교를 하지 않았다. 스물네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당했고, 요한의 열두 사도와는 여러 차례 특별 회합을 가졌다.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은, 왜 예수께서 감옥에 있는 요한을 방문하러 가지 않았는지, 요한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지, 더욱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예수께서 왜 경이로운 일을 행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자신의 신성한 권위에 대한 외형적 표적 일으키기를 거절하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길보아 야영지로 오기 전에는 주로 요한의 증언으로 인해 그들이 예수를 믿었으나, 그 뒤에는 곧 주님과, 그리고 그의 교훈과 직접 접촉한 결과로 믿기 시작했다.
144:7.3 (1626.4)이 두 달 동안, 그 집단은 대체로 짝을 지어 일했는데, 예수의 사도 하나와 요한의 사도 하나가 함께 일했다. 요한의 사도가 세례를 줬고, 예수의 사도는 가르쳤으며, 한편 자신이 이해하는대로 모두가 천국 복음을 전파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이방인들과 변절한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혼을 납득시켰다.
144:7.4 (1626.5)요한의 사도들 중에서 최고책임자인 아브넬은, 예수를 경건하게 믿는 자가 됐고, 나중에는 복음을 전파하라고 주님이 위임한 70인 선생 집단의 우두머리가 됐다.
8. 펠라근처야영지에서
144:8.1 (1626.6)12월 후반기에, 그들은 모두 펠라에서 가까운 요단강 근처로 갔고, 거기서 다시 가르치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복음을 들으러 이 야영지로 찾아왔다. 예수께서 어느 날 오후에 대중을 가르치고 있을 때, 요한의 절친한 친구들이 세례자로부터 마지막 전갈을 주님께 전하러 왔다.
144:8.2 (1626.7)요한은 이때까지 1년 반 동안 감옥에 갇혀있었고, 이 기간 대부분, 예수께서 아주 조용히 일을 진행했으므로;요한이 천국에 관해 궁금히 여기게 된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요한의 친구들은, 예수께서 가르치는 도중에 말씀을 중단시키고 말했다:“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물어보라고 했습니다--당신이 정말 구원주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144:8.3 (1626.8)예수께서 잠시 멈췄다가 요한의 친구들에게 말씀했다:“그를 잊지 않았다고, 돌아가서 요한에게 전해라.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그에게 말하되,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소식이 전파된다고 해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요한의 사자들에게 말씀을 덧붙인 후에, 다시 무리를 돌아보면서 말씀했다:“요한이 천국 복음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는 단지, 나의 제자이기도 한 자기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려고 질문한 것뿐이다. 요한은 약한 자가 아니다. 헤롯이 그를 감옥에 가두기 전에 요한의 설교를 들었던 너희에게 묻겠는데:너희는 요한에게서 무엇을 봤더냐--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기분이 변덕스럽고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잘 차려입은 사람들과 풍족하게 사는 이들은 대개 왕궁의 뜰이나 부자의 저택에 있다. 그러나 너희는 요한을 볼 때 무엇을 찾았느냐? 선지자냐? 그렇다. 너희에게 말하는데, 그는 선지자보다 훨씬 큰 자다. 요한에 대해 기록되기를:‘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는데;그가 네 앞에서 길을 예비하리라’고 했다.”
144:8.4 (1627.1)“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난 적이 없으나;하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큰데, 그가 영으로 태어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됐음을 알기 때문이다.”
144:8.5 (1627.2)그날 예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간 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그리고 요한의 사도들은 그날 이후로 예수께 확실히 결합했다. 이 사건은 요한의 추종자들과 예수를 따르는 자들 사이에 진정한 합동이 이뤄졌다는 표시였다.
144:8.6 (1627.3)그 사자들은 아브넬과 이야기한 후에, 요한에게 이 모든 것을 보고하려고 마캐러스로 떠났다. 그는 크게 위안 받았고, 그의 신앙은 예수의 말씀과 아브넬의 전갈로 인해 강화됐다.
144:8.7 (1627.4)예수께서는 이날 오후에 계속 가르치면서 말씀했다:“그러나 내가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너희 가운데 다수는, 요한의 메시지뿐 아니라 내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장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같은데, 그들이 동료들을 불러서 말했다:‘우리가 너희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우리가 통곡해도 너희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 일부도 마찬가지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희는 그가 마귀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바로 이 사람들은, ‘보라, 먹기를 탐내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했다. 정말로, 지혜가 정당한지는 그 결과가 입증한다.
144:8.8 (1627.5)“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런 진리를 영리하고 불손한 자들에게 숨기시는 반면, 천진한 사람들에게는 드러내심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잘되도록 하시며;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온 인류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 모두 나에게로 와라, 그러면 너희의 혼이 휴식을 얻을 것이다. 신성한 멍에를 메라, 그러면 너희는 모든 이해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안을 체험할 것이다.”
9. 세례요한의죽음
144:9.1 (1627.6)서기 28년 1월 10일 밤에,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의 명령에 따라서 처형됐다. 마캐러스로 갔던 요한의 제자 중에서 몇 사람이 이튿날 그가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헤롯에게 가서 그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하여 어느 무덤에 뒀다가, 나중에 아브넬의 고향인 세바스테에 매장했다. 이튿날인 1월 12일에, 그들은 펠라 근처에 있던, 요한과 예수의 사도들의 야영지로 가서, 요한의 죽음을 예수께 전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보고를 받자 무리를 해산시키고, 스물네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 말씀했다:“요한이 죽었다. 헤롯이 그의 목을 벴다. 오늘 밤에 합동 회의를 열고, 이에 따라 너희가 할 일을 준비해라.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 천국을 공개적으로 힘차게 선포할 때가 왔다. 우리는 내일 갈릴리로 들어갈 것이다.”
144:9.2 (1627.7)따라서, 서기 28년 1월 13일 이른 아침에, 예수와 사도들은, 스물다섯쯤 되는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을 향해 길을 떠났고, 그날 밤 세베대의 집에 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