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랜시아 책 - 제 124 편. 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UF-KOR-001-2016-1)

유랜시아 책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4 편. 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제 124 편. 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124:0.1 (1366.1)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갈릴리보다 학교 공부를 하는 기회가 더 좋았을지 모르지만, 예수가 최소의 교육을 받고서 자신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그렇게 멋진 환경을 가지면서, 동시에 문명 세계의 모든 구석에서 온 온갖 종류의 남녀, 그렇게 많은 남녀를 항상 접촉하는 큰 장점을 누릴 수 없었다. 알렉산드리아에 남았더라면, 유대인들이 순전히 유대인 방식으로 그의 교육을 지도했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받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그는 이방인을 이해하는 데 적절히 준비가 되었고, 히브리 신학의 동부, 즉 바빌로니아파의 견지, 그리고 서부, 즉 헬라파 견지의 장단점에 대하여 더 낫고 치우치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1. 예수가 아홉 살 되던 해 (서기 3년)

124:1.1 (1366.2) 예수가 언제라도 몹시 아팠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어도, 남동생들과 아기 여동생과 함께 이 해에 그는 아이들이 걸리는 하찮은 병을 얼마큼 앓았다.

124:1.2 (1366.3) 학교 공부는 계속되었고 그는 아직도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으며, 달마다 한 주 동안 자유로웠다. 아버지와 함께 이웃 여러 도시까지 여행하는 데, 그리고 나사렛 남쪽에 있는 삼촌의 농장에서 머무르는 데, 그리고 막달라에서 출발하여 고기잡이하는 나들이에, 시간을 계속 똑같이 나누어 썼다.

124:1.3 (1366.4) 학교에서 지금까지 닥친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늦겨울에 일어났다. 이때 모든 형상ㆍ그림ㆍ펜화가 우상 숭배의 성질이 있다는 가르침에 대하여 예수는 하잔에게 감히 이견을 내밀었다. 예수는 도공의 진흙으로 아주 다채로운 물건들을 빚는 것 뿐 아니라, 풍경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런 종류는 무엇이나 유대인의 율법에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이때까지 이런 활동을 계속하도록 부모가 놓아둘 정도로, 예수는 부모의 반대를 적당히 무마하였다.

124:1.4 (1366.5) 그러나 학교에서는 소동이 다시 일고 있었는데, 이때 공부가 부진한 어느 생도가 교실 마루 바닥에 예수가 목탄으로 선생을 그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명백하게 그 그림이 드러났다. 한 위원회가 요셉을 호출하고서 맏아들이 율법을 무시하는 성향을 막으려고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하러 가기 전에 여러 장로가 보았다.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재능 있고 적극적인 아이가 한 일에 대하여 그들에게 불평이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것은 지금까지 받은 비난 가운데 가장 심각하였다. 예수는 바로 뒷문 바깥에, 큰 바위 위에 앉아서, 그의 예술적 노력을 비난하는 말에 얼마 동안 귀를 기울였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주장 때문에 그들이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을 분개하였다. 그래서 씩씩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비난하는 사람들과 겁 없이 맞섰다. 장로들은 혼란에 빠졌다. 더러는 그 사건을 우스운 일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한편 한두 사람은 그 소년이 신성 모독까지는 아니라도 거룩한 것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요셉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마리아는 분개했지만, 예수는 말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용감히 자기의 관점을 변호했다. 지극한 자제력을 가지고, 논쟁이 되는 모든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 문제에서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장로 위원회는 말없이 떠났다.

124:1.5 (1367.1) 마리아는 예수가 이 의심스러운 활동 가운데 어느 것도 학교에서 계속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예수가 집에서 진흙 빚기를 허락하도록 요셉에게 영향을 미치려 애썼지만, 요셉은 둘째 계명에 관한 랍비의 해석이 우선해야 한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날부터 아버지 집에서 사는 동안, 어떤 것의 모습도 더 이상 그리거나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확신하지 않았고, 아주 좋아하는 그러한 오락을 포기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큰 시련 중의 하나였다.

124:1.6 (1367.2) 6월 후반에, 예수는 아버지를 따라서 처음으로 타볼산 꼭대기에 올랐다. 이날은 맑았고, 경치는 훌륭했다. 아홉 살 먹은 이 소년에게는 그가 인도ㆍ아프리카ㆍ로마를 제외하고, 온 세계를 정말로 바라본 듯했다.

124:1.7 (1367.3) 예수의 둘째 여동생 마르다가 9월 13일 목요일 밤에 태어났다. 마르다가 태어나고 3주가 지나서, 집에 한동안 있던 요셉은 집에 덧붙인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작업장이자 침실이었다. 예수를 위해서 작은 작업 벤치가 만들어졌고,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연장을 소유했다. 여러 해 동안, 남는 시간에, 그는 이 벤치에서 일했고, 멍에를 만드는 데 상당히 솜씨가 좋아졌다.

124:1.8 (1367.4) 이 해 겨울과 이듬해 겨울은 나사렛에서 몇십년 만에 가장 추웠다. 예수는 산에서 눈을 본 적이 있었고, 이전에 몇 번이나 나사렛에 눈이 왔는데, 잠시만 땅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겨울까지는 얼음을 본 적이 없었다. 물이 고체ㆍ액체ㆍ증기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물을 끓이는 그릇에서 달아나는 수증기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는데―물리적 세계와 그 구성에 대하여 소년으로 하여금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자라는 이 소년 속에 들어 있는 성격자는 여태까지, 방대한 한 우주에 두루 있는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창조하고 조직한 분이었다.

124:1.9 (1367.5) 나사렛의 기후는 혹독하지 않았다. 1월이 가장 추운 달이었고, 평균 기온은 화씨로 약 50도였다. 7월과 8월이 가장 더운 달이었고, 그때 기온은 화씨 75도에서 90도까지 변하곤 했다. 산에서부터 요단강과 사해(死海) 계곡까지, 팔레스타인의 기후는 몹시 추운 날씨로부터 바짝 타는 정도에 이른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유대인은 세계의 변화하는 기후 지대에 어디서나 살도록 준비가 되어 있다.

124:1.10 (1367.6) 가장 더운 여름 몇 달 동안에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보통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쯤까지 서쪽으로부터 불었다. 그러나 이따금 끔찍하게 뜨거운 바람이 동쪽 사막으로부터, 온 팔레스타인에 불어오곤 했다. 이 뜨거운 강풍은 보통 2월과 3월, 비 오는 철이 끝날 무렵에 닥쳤다. 그 시절에는 11월부터 4월까지 비는 시원한 소나기로 내렸지만, 비가 꾸준히 오지는 않았다. 팔레스타인에는 단지 두 계절, 여름과 겨울, 즉 건조한 철과 비 오는 철밖에 없었다. 1월에 꽃이 피기 시작했고, 4월말이 되어서는 온 땅이 하나의 광대한 꽃밭이었다.

124:1.11 (1367.7) 이 해 5월에, 예수는 삼촌의 농장에서, 처음으로 곡식 거두는 일을 도왔다. 열세 살이 되기 전에, 그는 대장장이 일 외에는 나사렛 근방에서 남녀들이 일하는 거의 모든 직종에 대해서 그럭저럭 무엇인가 발견했고,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대장간에서 몇 달 지냈다.

124:1.12 (1368.1) 일과 카라반의 여행이 뜸할 때, 예수는 아버지와 함께 근처의 가나ㆍ엔도르ㆍ나인으로 구경 삼아 또는 일 때문에 여러 번 여행했다. 소년일 때도 세포리스를 자주 찾아보았는데 이곳은 나사렛으로부터 북서쪽으로 겨우 4.8킬로미터 조금 넘는 거리에 있었고, 기원전 4년부터 서기 약 25년까지 갈릴리의 서울이요 헤롯 안티파스의 거처 중의 하나였다.

124:1.13 (1368.2) 예수는 계속하여 육체와 지능 면에서 자라고 사회적ㆍ영적으로 성장하였다. 집을 떠난 여행은 자신의 가족을 더 낫게 더 큰 아량을 가지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때가 되자 부모조차 그를 가르칠 뿐 아니라 그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예수는 소년기에도, 독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요 솜씨 좋은 선생이었다. 그는 이른바 “구전(口傳) 율법”과 항상 견해가 달랐지만, 언제나 집안 풍습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꽤 잘 어울렸으나 그들의 머리가 더디게 돌아가는 것에 가끔 실망했다. 그는 열 살이 되기 전에―신체적ㆍ지적ㆍ종교적으로―어른이 될 인품을 장려하는 모임을 만든 일곱 소년의 무리에서 지도자가 되었다. 이 소년들 가운데서 예수는 여러 가지 새로운 놀이와 신체적으로 오락을 즐기는 개량된 방법을 소개하는 데 성공했다.

2. 열 살 되던 해 (서기 4년)

124:2.1 (1368.3) 7월 5일, 그달의 첫 안식일에 아버지와 함께 시골 길을 걷는 동안에, 예수는 일생의 사명의 특별한 성질을 자각하는 것을 가리키는 느낌과 생각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요셉은 아들의 중대한 말을 주의 깊게 들었지만,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 정보도 자진해서 주지 않았다. 이튿날 예수는 어머니와 함께, 비슷하지만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소년이 꺼내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 정보도 자청해서 주지 않았다. 그의 인격의 성품과 땅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의 성질에 관하여 자신의 의식 안에서 커지는 이 계시(啓示)에 대하여, 부모에게 예수가 다시 말을 꺼내기까지는 거의 두 해가 흘렀다.

124:2.2 (1368.4) 8월에 그는 회당의 상급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끈질기게 묻는 질문 때문에 항상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다. 갈수록 더 그는 온 나사렛을 얼마큼 시끄럽게 만들었다. 부모는 소란을 일으키는 이 여러 질문을 그만두라고 하기 싫었고, 주임 교사는 소년이 보인 호기심과 통찰력과 지식 욕구에 크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24:2.3 (1368.5) 예수의 놀이 친구들은 그의 행동에서 아무런 초자연적인 것을 구경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방법으로 그는 아주 그들과 비슷하였다. 공부에 대한 관심은 평균이 넘었지만, 온통 유별나지는 않았다. 반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이 질문을 던지기는 하였다.

124:2.4 (1368.6) 아마도 가장 특별하고 눈에 띄는 특성은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싸우기 싫어하는 것이었다. 나이로 보아서 아주 잘 발육된 소년이었기 때문에, 불공평한 처사나 인신 공격을 받을 때에도 자신을 방어하기 싫어한 것이 놀이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보였다. 우연하게도, 이 특성 때문에 크게 시달리지는 않았는데, 이는 그가 한 살 더 먹은 이웃 소년 야곱과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요셉의 한 사업 동료인 석공(石工)의 아들이었다. 야곱은 예수를 크게 찬미하는 사람이었고, 예수가 몸으로 싸우기 싫어하는 것 때문에 아무도 예수를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았다. 여러 번, 더 나이 많고 촌스러운 소년들이 예수의 소문난 온순함을 믿고 그를 공격했지만, 이들은 그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늘 준비된 경호원, 석공의 아들 야곱의 손에 반드시 신속하고 확실한 징벌을 받았다.

124:2.5 (1369.1) 예수는 그 시절과 세대의 드높은 이상을 대표하는 나사렛 소년들에게 널리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정말로 그는 어린 친구들한테서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공평했을 뿐 아니라, 애정이 있음을 가리키고 분별 있는 동정심에 가까운, 보기 드물고 이해하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124:2.6 (1369.2) 이 해에 비로소 그는 더 나이 먹은 사람들과 사귀기를 뚜렷이 좋아하는 성향을 보였다. 자기보다 윗 사람들과 문화ㆍ교육ㆍ사회ㆍ경제ㆍ정치ㆍ종교적인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그의 깊은 논리와 날카로운 관찰력이 어른 친구들의 마음을 끌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집을 부양할 책임을 지게 될 때까지, 예수는 자기보다 나이를 더 먹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성향을 보였는데, 부모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또래나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과 사귀도록 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항상 애썼다.

124:2.7 (1369.3) 이 해에 늦게, 갈릴리 바다에서 삼촌과 함께 그는 두 달 동안 고기잡이 경험을 가졌는데, 성과가 아주 좋았다. 그는 어른이 되기 전에, 솜씨 좋은 어부가 되었다.

124:2.8 (1369.4) 신체의 발육은 계속되었고, 그는 학교에서 상급에 속하고 특혜를 받는 생도였다. 그는 집안 아이들 중에서 바로 밑 동생보다 3살 반 더 나이 먹은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남동생ㆍ여동생들과 함께 썩 잘 어울렸다. 예수는 나사렛에서 평판이 좋았고, 다만 좀 우둔한 어떤 아이들의 부모는 예수가 너무 건방지며, 적절히 겸손하지 않고 소년답게 자제함이 없다고 자주 말했다. 예수는 어린 친구들의 놀이 활동을 더욱 심각하고 생각 깊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경향을 차츰 나타냈다. 그는 타고난 선생이었고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된 때조차, 다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4:2.9 (1369.5) 요셉은 일찍부터 예수에게 생계를 잇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공업ㆍ상업보다 농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갈릴리는 유대 지방보다도 더 아름답고 번영하는 지역이었고, 거기서 생활하는 데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사는 비용의 겨우 4분의 1쯤 들었다. 갈릴리는 농사 짓는 마을과 번성하는 산업 도시들이 있는 지방이었고, 인구가 5천이 넘는 마을이 2백이 넘고, 1만 5천이 넘는 도시가 서른이나 있었다.

124:2.10 (1369.6) 갈릴리 호수에 있는 고기잡이 산업을 살펴보려고 아버지와 처음 여행 갔을 때, 예수는 어부가 되려고 거의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중에 아버지의 직업과 가까이 한 것이 그에게 목수(木手)가 되도록 영향을 미쳤고, 그 뒤에 여러 가지 영향이 섞여, 마지막에는 새로운 체제의 종교 선생이 되는 선택으로 이끌었다.

3. 열한 살 되던 해 (서기 5년)

124:3.1 (1369.7) 이 한 해 동안 내내,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집을 떠나 여행을 계속했지만, 또한 삼촌의 농장을 자주 찾아보았고, 이따금 막달라로 가서 그 도시 근처에 근거지를 둔 삼촌과 함께 고기잡이에 들어갔다.

124:3.2 (1369.8)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에게 어떤 특별한 편애를 보이거나, 아니면 그가 약속의 아이, 운명의 아들이라는 것을 안다고 털어놓고 싶은 유혹을 가끔 받았다. 그러나 부모는 이 모든 문제에서 특별히 지혜롭고 현명했다. 어떤 방법으로 그에게 어떤 편애를 조금이라도 보인 것이 몇 번 되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소년은 모든 그러한 특별 배려를 재빨리 물리쳤다.

124:3.3 (1370.1) 예수는 카라반에게 소모품을 파는 상점에서 어지간히 시간을 보냈고, 세상의 모든 지방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눔으로, 그의 나이로 보아서 놀랍게, 세계의 동향에 관하여 정보를 쌓았다. 이 해는 그가 자유롭게 놀고 어린이로서 즐거움을 많이 누린 마지막 해였다. 이때부터 계속, 이 소년의 생활에서 어려움과 책임이 빠르게 늘어났다.

124:3.4 (1370.2) 서기 5년, 6월 24일, 수요일 저녁에 유다가 태어났다. 이 일곱째 아이의 출생에 관련된 병이 뒤따랐다. 마리아가 몇 주 동안 몹시 아파서, 요셉이 집에 남아 있었다. 예수는 아버지의 심부름과 어머니의 심각한 병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할 일로 아주 바빴다. 이 소년은 다시 어린 시절, 어린이의 위치로 돌아갈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아플 때부터―그가 열한 살이 막 되기 전에―그는 정상으로 마땅히 그의 어깨에 지워지는 것보다 만 1년이나 2년 앞서 맏아들의 책임을 지고, 이 모든 일을 해낼 수밖에 없었다.

124:3.5 (1370.3) 하잔은 예수가 히브리 성서를 통달하도록 돕느라고 그와 함께 한 주에 하루 저녁을 보냈다. 그는 싹이 보이는 생도(生徒)의 진보에 크게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예수를 여러 면에서 기꺼이 도와주었다. 이 유대인 훈장은 성장하는 이 젊은이의 지성에 큰 영향력을 미쳤지만, 학식 있는 랍비들 밑에서 공부를 계속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전망에 관하여 온갖 제안을 내밀어도, 어째서 예수가 그토록 흥미를 보이지 않았는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124:3.6 (1370.4) 5월 중순경에, 소년은 스키토폴리스까지 아버지가 출장갈 때 따라갔는데, 이곳은 데카폴리스 지방의 주요한 그리스 풍의 도시이며, 또한 베스쉬안 지역의 고대 히브리인 도시였다. 가는 길에 요셉은 사울 왕과 블레셋인의 오랜 역사의 상당한 부분, 그리고 그 뒤에 이스라엘의 파란 많은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일러 주었다. 예수는 이른바 이 이방인 도시의 깨끗한 모습, 가지런한 질서 있는 배열에 엄청나게 감명을 받았다. 그는 노천 극장을 보고 감탄하고, “이교도” 신들의 예배에 바쳐진 아름다운 대리석 성전을 찬미했다. 요셉은 그 소년의 열심에 상당히 마음이 흔들렸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찬양하여 이 좋은 인상을 지우려고 애썼다. 예수는 가끔 나사렛의 언덕에서 이 웅장한 그리스 풍의 도시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았고, 대규모의 공공(公共) 사업과 화려한 여러 건물에 관하여 여러 번 물은 적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이러한 물음에 대답을 피하려 했다. 이제 그들은 이 이방인 도시의 아름다움과 얼굴을 마주했고, 요셉은 예수가 묻는 말에 점잖게 못 들은 척할 수 없었다.

124:3.7 (1370.5) 마침, 이때 데카폴리스 지역의 그리스 풍의 도시들 사이에 해마다 있는 경기, 그리고 신체의 우수함을 보이는 대중 전시가 스키토폴리스의 원형 경기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예수는 아버지에게 경기를 보러 데려가 달라고 졸랐고, 너무 졸라서 요셉은 부탁을 물리치기를 망설였다. 소년은 여러 경기를 보고 흥분했고, 사람들이 신체의 발육과 운동 기술을 전시하는 정신에 아주 흠뻑 젖었다. 예수가 이 허영에 찬 “이방인”의 전시를 보는 동안, 요셉은 아들이 열심에 빠진 것을 지켜보고 말할 수 없이 충격을 받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 예수가 이 여러 경기가 좋다고 인정하면서, 야외에서 건전한 신체 활동을 하여 이렇게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나사렛의 젊은이들에게 좋을 것이라고 제안하는 것을 들었을 때, 요셉은 일생 최대의 충격을 받았다. 요셉은 그러한 관습이 어떻게 나쁜가 예수와 함께 오랫동안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소년이 납득하지 않았음을 잘 알았다.

124:3.8 (1371.1) 아버지가 자기에게 성난 것을 예수가 꼭 한 번 본 것은 그날 밤 여인숙에서 그들의 방에서 토론하던 중에, 소년이 유대인 사상(思想)의 경향을 아주 까마득하게 잊고서 집으로 돌아가 나사렛에서 원형 경기장을 짓기 위해 일하자고 제안했을 때였다. 맏아들이 유대인답지 않게 그런 감정을 표시하는 것을 들었을 때, 요셉은 평상시의 차분함을 잊어버리고, 예수의 어깨를 움켜잡고, 성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들아, 네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런 나쁜 생각을 입 밖에 내는 것을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예수는 아버지의 감정 표현에 깜짝 놀랐다. 결코 전에는 아버지가 분개하여 몸소 따끔하게 야단치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단지 이렇게 대답했다, “좋아요 아버지, 그렇게 하지요.” 아버지가 살아 계신 동안, 소년은 그리스 풍의 경기와 기타 체육 활동을 비치는 말을 조금도 다시 꺼내지 않았다.

124:3.9 (1371.2) 나중에,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 풍의 원형 경기장을 보았고, 유대인의 관점에서 그런 것들이 얼마나 싫은 것인가 알았다. 그런데도, 일생을 통해서 내내, 그는 자신의 계획에, 그리고 유대인의 풍습이 허락하는 한, 열두 사도를 위하여 후일의 정규 활동 계획에, 건전한 오락 관념을 소개하려고 애썼다.

124:3.10 (1371.3) 열한 살 되던 이 해가 저물 때, 예수는 활기 있고 잘 성장하고 적당히 익살이 있고 썩 명랑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이 해부터 계속하여, 깊이 생각에 잠기고 골똘히 생각하는 별다른 시간을 보내는 버릇에 점점 더 빠져 들어갔다. 어떻게 가족에 대하여 책임을 수행하고, 동시에 세상에 사명(使命)을 다하라는 요청에 복종할 것인가 많은 생각에 빠졌다. 그는 사명이 유대 민족의 지위를 향상하는 데 한정된 것이 아님을 이미 깨달았다.

4. 열두 살 되던 해 (서기 6년)

124:4.1 (1371.4) 이 해는 예수의 일생에서 사건이 많은 해였다. 그는 학교 공부에 계속하여 진전이 있었고, 자연을 연구하는 데 지칠 줄 몰랐으며, 한편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가 더욱 공부하였다. 그는 집에 있는 목수 작업장에서 정규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번 돈을 관리하라고 허락을 받았는데, 이것은 유대인 가정에서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 해에 그는 또한 그런 일을 가족에게 비밀로 하는 지혜를 배웠다. 마을에서 어떤 방법으로 자기가 문제를 일으켰는가 의식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혹시 동료들과 다르게 여기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점점 더 신중하게 감추었다.

124:4.2 (1371.5) 이 해 내내 그의 사명의 성질이 무엇인가 실제로 의심하지는 않더라도, 확실치 않게 느끼는 기간이 여러 번 있었다.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그의 인간 지성은 자신이 두 성품을 가졌다는 현실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가 꼭 하나의 인격을 가졌다는 사실이, 바로 그 인격과 결합된 성품의 구성 요소들이 두 가지 기원을 가진 것을 그가 인식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124:4.3 (1371.6) 이때부터 계속, 그는 동생들과 어울리는 데 더 나아졌다. 갈수록 더 요령 있게 행동하였고, 늘 이해심을 가지고 그들의 복지와 행복을 배려했으며, 대중 봉사를 시작할 때까지 그들과 좋은 관계를 가졌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야고보와 미리암과 사이가 좋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두 동생, 아모스와 룻과 사이가 아주 뛰어나게 좋았다. 마르다하고는 언제나 사이가 썩 좋았다. 그가 집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대체로, 요셉과 유다, 특히 유다와 마찰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났다.

124:4.4 (1372.1) 전례 없이 이렇게 신과 합쳐진 인간을 기르는 일을 떠맡은 것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벅찬 체험이었고, 그들은 부모의 책임을 아주 충실하고 성공적으로 이행한 큰 공로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예수의 부모는 이 맏아들 안에 초인간적인 무엇이 거함을 갈수록 더 깨달았지만, 이 약속의 아들이 정말로, 진실로, 사물과 존재들이 가득한 이 지역 우주를 실제로 창조한 분이라는 것을 결코 털끝만큼도 꿈꾸지 못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정말로, 필사의 몸으로 육신화한 우주 창조자인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 죽었다.

124:4.5 (1372.2) 이 해에 예수는 여느 때보다 더 음악에 마음을 쏟았고, 동생들을 위해서 집에서 공부를 줄곧 가르쳤다. 자기의 사명의 성질에 관하여 요셉과 마리아의 견해가 다른 것을 소년이 날카롭게 의식하게 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그는 부모의 견해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그가 깊이 잠들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가끔 부모가 의논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갈수록 더 아버지의 관점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그의 생애와 상관 되는 문제에서 어머니는 차츰 아들이 자기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상하게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해가 지남에 따라서, 이렇게 견해의 차이가 커졌다. 점점 더 마리아는 예수의 사명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가장 아끼는 아들이 자기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여 이 착한 어머니는 갈수록 더 마음을 상했다.

124:4.6 (1372.3) 요셉은 예수의 사명이 영적 성질을 가졌다는 것을 차츰 더 믿었다. 다른 더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다면, 땅에서 예수의 자신 수여에 대한 요셉의 관점이 실현되는 것을 그가 살아서 볼 수 없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듯하다.

124:4.7 (1372.4) 학교에서 마지막 해를 보내는 동안에,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집으로 들어가거나 나갈 때마다 문설주에 못박힌 양피지 조각을 만지고, 다음에 그 양피지를 만진 손가락에 입맞춤하는 유대인의 관습에 대하여 예수는 아버지에게 항의하였다. 이 절차의 일부로서, “우리가 들어가고 나감을 지금부터, 아니 영원까지도 주가 보호하실지라” 말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형상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이유에 대해서 거듭하여 가르치고, 그러한 작품들이 우상(偶像) 숭배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들이 형상과 그림을 금지한 까닭을 예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높은 일관성 개념을 가졌고, 따라서 문설주의 양피지에 이렇게 경의를 표하는 버릇이 본질적으로 우상 숭배의 성질이 있다고 아버지에게 지적했다. 예수가 이렇게 아버지한테 지적한 뒤에, 요셉은 그 양피지를 없애버렸다.

124:4.8 (1372.5) 시간이 지나자, 예수는 가정 기도(祈禱)와 기타 관례와 같은 그들의 종교 형식의 습관을 고치느라고 많이 애썼다. 나사렛에서는 그러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이름난 나사렛 선생 요세의 예를 보다시피, 그 회당이 자유로운 랍비 학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24:4.9 (1372.6) 이 해와 다음 두 해 동안 내내, 종교 관습과 사회 예절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부모의 고정된 관념에 적응시키려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로서, 예수는 크게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자신의 확신에 충실하려는 욕구, 그리고 부모에게 충실히 복종하라는 양심의 훈계, 이 둘의 갈등으로 마음이 산란하였다. 제일 큰 갈등은 그의 어린 생각에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 큰 계명(誡命) 사이에서 생겼다. 하나는 “진리와 올바름에 대한 너의 최상의 확신이 내리는 명령에 충실하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네 부모를 존경할지니, 저희가 너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길렀음이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 확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의무, 이 두 가지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 필요한 대로 적응하는 책임을 그는 결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의 확신과 가족에 대한 의무, 이 두 가지를 조화되게 섞어서, 충성ㆍ공정ㆍ관용ㆍ사랑에 기초를 둔 개념, 훌륭한 집단 결속의 개념으로 만드는 만족감을 얻었다.

5. 열세 살 되던 해 (서기 7년)

124:5.1 (1373.1) 이 해에 나사렛 소년은 어린 시절을 지나서 청년기의 시초로 들어갔다. 목소리가 바뀌기 시작했고, 그 외에도 정신과 육체의 모습이 곧 어른이 되어간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124:5.2 (1373.2) 서기 7년, 1월 9일, 일요일 밤에, 아기 남동생 아모스가 태어났다. 유다는 채 두 살이 되지 않았고, 아기 여동생 룻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음 해에 사고(事故)로 돌아가셨을 때, 예수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상당히 큰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24:5.3 (1373.3) 땅에서 사람을 깨우치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운명을 가진 것을 예수가 인간으로서 확신하게 된 것은 2월 중순 무렵이었다. 원대한 계획과 함께 중대한 결정이 이 소년의 머리 속에서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그는 겉으로 보아서 나사렛의 보통 유대인 소년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제 청년기에 접어든 목수 아들의 생각과 행동에서 비로소 펼쳐지자, 온 네바돈의 지적 생명이 황홀하고 놀란 가운데 계속 바라보았다.

124:5.4 (1373.4) 서기 7년, 3월 20일, 그 주 첫 날, 나사렛 회당에 부속된 지역 학교에서 예수는 훈련 과정을 졸업했다. 이것은 큰 꿈을 가진 어떤 유대인 가족에서도 생활에 중요한 날, 첫아들이 “계명의 아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되찾은 첫아들, “최고자의 아이요” 온 땅의 주의 종으로 선포되는 날이었다.

124:5.5 (1373.5) 요셉은 세포리스에서 새 공공(公共) 건물을 짓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지난 주 금요일에 이 경사에 참석하려고 거기서 왔다. 예수의 선생은 총명하고 부지런한 생도가 어떤 특별한 생애, 어떤 탁월한 사명을 타고났다고 굳게 믿었다. 전통을 따르지 않는 예수의 성향 때문에 온갖 문제가 있었는데도, 장로들은 소년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고, 이름난 히브리 학원에서 교육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그를 예루살렘에 보낼 계획을 이미 세우기 시작했다.

124:5.6 (1373.6) 이따금 이 계획이 거론되는 것을 듣는 동안, 예수는 랍비들과 어울려 공부하려고 예루살렘에는 결코 가지 않겠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일어날 비극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이것은 그로 하여금 어머니와 자신은 물론, 곧 다섯 남동생과 세 여동생으로 구성될 큰 가족을 부양하고 지도하는 책임을 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모든 그런 계획을 단념하도록 보장할 것이었다. 예수는 아버지 요셉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크고 긴 체험, 이 가족을 양육하는 체험을 겪었고 나중에 자신이 부과한 기준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 갑자기 슬픔에 빠지고 너무 뜻밖에 아버지를 잃은 이 가족―그의 가족―에게 현명하고, 참을성과 이해심이 있고 유능한 선생이자 큰형이 되는 것이었다.

6.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

124:6.1 (1374.1) 이제 청년기의 문턱에 이르렀고 정식으로 회당 학교를 졸업했으니까, 예수는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같이 그의 첫 유월절 축하에 참석할 자격이 있었다. 이 해에 유월절 축제는 서기 7년 4월 9일, 토요일에 있었다. 상당히 큰 무리가 (103 명) 4월 4일 월요일 아침 일찍,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려고 준비했다. 그들은 남쪽으로 사마리아를 향하여 길을 떠났지만, 예즈릴에 다다르자, 사마리아 지나가는 것을 피하려고 동쪽으로 향했고, 길보아 산을 돌아서 요단강 유역으로 갔다. 요셉과 그 가족은 야곱의 우물과 베델의 길을 거쳐 사마리아를 통해서 내려가는 것을 좋아했을 터이지만,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관하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웃 사람들과 함께 요단강 유역의 길을 거쳐서 가기로 작정하였다.

124:6.2 (1374.2) 무척 두려워했던 아켈라우스는 폐위되었고, 그들은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기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첫째 헤롯이 베들레헴의 아기를 죽이려고 한 지 12년이 지났고, 아무도 이제는 그 사건을 이름 없는 이 나사렛 소년과 연관 지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었다.

124:6.3 (1374.3) 예즈릴 교차점에 이르기 전에, 그들이 계속 여행하자, 오래지 않아서 왼편에 고대의 슈넴 마을을 지났는데, 예수는 거기서 한때 살았던, 온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소녀, 그리고 또한 엘리사가 거기서 행한 놀라운 이적(異蹟)에 관하여 다시 이야기를 들었다. 예즈릴을 지나치면서, 예수의 부모는 아합과 예세벨이 한 일과 예후의 공적을 이야기했다. 길보아 산 둘레를 지나면서, 그들은 이 산의 비탈에서 목숨을 끊은 사울, 그리고 다윗 왕과 이 역사적 장소에 관계된 것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124:6.4 (1374.4) 길보아산 기슭을 돌면서, 순례자들은 바른쪽에 그리스 풍 도시 스키토폴리스를 볼 수 있었다. 멀리서 대리석 구조를 바라보았지만, 몸을 더럽혀서, 예루살렘에서 다가오는 유월절의 엄숙하고 신성한 예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될까 두려워, 그들은 이방 도시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마리아는 어째서 요셉이나 예수가 스키토폴리스에 대해서 입을 열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리아는 지난 해에 그들에게 불편한 대화가 있었던 것을 몰랐는데, 그들이 이 사건을 마리아에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24:6.5 (1374.5) 길은 이제 열대 지역인 요단강 유역 밑으로 바로 이끌었고, 사해(死海)를 향하여 흘러 내려가고 물결이 반짝이고 찰랑거리는 요단강, 구부러지고 늘 굽이쳐 흐르는 강이 감탄하는 예수의 눈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열대의 골짜기에서 남쪽으로 여행하면서, 그들은 겉옷을 벗어놓고 화려한 곡식 밭, 그리고 분홍 꽃이 잔뜩 핀 아름다운 올리앤더를 보고 즐겼다. 한편 꼭대기에 눈이 덮인 거대한 헤르몬산이 북쪽에 멀리 서서 웅장한 모습으로 이 역사적인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스키토폴리스의 맞은편으로부터 세 시간 남짓 여행하자, 그들은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샘물에 다다랐고, 여기서 그들은 밤에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서 텐트를 쳤다.

124:6.6 (1374.6) 여행하던 이틀째, 그들은 얍복강이 동쪽으로부터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을 지났고, 동쪽을 향하여 이 강 유역을 바라보면서, 기드온 시절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때 미디안 족은 그 땅에 퍼지려고 이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틀째 여행하던 끝에, 그들은 요단강 유역을 내려다보는 가장 높은 산, 사르타바산 밑 가까이에서 텐트를 쳤다. 이 산 꼭대기는 알렉산드리아의 요새가 차지했고, 거기서 헤롯은 아내들 가운데 하나를 감옥에 가두었고, 목 졸라 죽인 두 아들을 땅에 묻었다.

124:6.7 (1375.1) 셋째 날에 그들은 헤롯이 최근에 지은 두 마을을 지났고, 그 우수한 건축과 아름다운 야자나무 동산을 눈여겨보았다. 밤이 되기까지 예리고에 이르렀고, 거기서 아침까지 머물렀다. 그날 저녁에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는 2.4킬로미터 걸어서 고대의 예리고 터로 갔는데,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거기서 요수아가 공훈을 세웠다는 소문이 있었고, 예수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124:6.8 (1375.2) 넷째 날이자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 도로에는 이어진 순례자들로 줄을 이루었다. 그들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이끄는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꼭대기에 가까워 오자, 요단강을 건너 그 뒤의 여러 산까지, 그리고 남쪽으로 사해의 느릿한 물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길의 중간쯤에서, 예수는 올리브산을 (그 뒤에 무척 그의 일생의 일부가 될 지역) 처음 구경했고, 요셉은 그 거룩한 도시가 이 산마루 바로 건너에 있다고 그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다. 그 도시와 하늘 아버지의 집을 곧 보게 된다는 즐거운 기대에 소년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124:6.9 (1375.3) 올리브산 동쪽 비탈에서 그들은 베다니라고 부르는 작은 마을의 경계에서 쉬려고 멈추었다. 친절한 마을 사람들은 순례자들을 보살피려고 쏟아져 나왔고, 마침 요셉과 그의 가족은 어느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 가까이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에게는 예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세 아이―마리아ㆍ마르다ㆍ나사로―가 있었다. 그들은 마실 것을 들자고 나사렛 가족을 안으로 초청하였고, 그 두 가족 사이에는 일생 동안의 우정이 생겼다. 그 뒤에 여러 번, 파란 많은 생애에서 예수는 이 집에 머물렀다.

124:6.10 (1375.4) 그들은 길을 재촉하여 곧 올리브산 가장자리에 섰고, 예수는 (그가 기억하건대) 처음으로 그 거룩한 도시, 허세로 크게 지은 여러 궁전, 그리고 영감을 주는 아버지의 성전을 보았다. 예루살렘의 처음 광경을 황홀히 바라보면서 4월 이날 오후에 거기 올리브산에서 서 있는 동안, 이때 그렇게 온통 마음을 빼앗기면서 가졌던 순전히 인간적 흥분을 예수는 일생에 어느 때에도 느낀 적이 없었다. 후일에 바로 이 자리에 서서, 또 하나의 선지자, 하늘의 선생들 가운데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사람을 물리치려 한 그 도시 때문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124:6.11 (1375.5) 그러나 그들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계속 갔다. 이제 목요일 오후였다. 도시에 이르자, 그들은 성전을 지나쳤고, 예수는 그렇게 많은 인간 무리를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 유대인들이 문명 세계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와서 여기에 모였는가 깊이 생각했다.

124:6.12 (1375.6) 그들은 유월절 주간에 숙박하려고 미리 정해놓은 장소에 곧 이르렀다. 이곳은 마리아의 어느 부유한 친척이 사는 큰 집이었고, 그는 사가리아를 통해서 요한과 예수의 초기 내력에 관하여 얼마큼 아는 사람이었다. 이튿날, 준비하는 날에, 그들은 유월절 안식일을 적절히 축하하려고 준비했다.

124:6.13 (1375.7) 유월절을 위해 준비하느라고 온 예루살렘이 떠들썩한 동안에, 요셉은 아들을 데리고 어느 학교를 방문할 틈을 냈고, 거기서 2년 뒤에 예수가 적절한 나이, 열 다섯 살이 되자마자, 교육을 다시 시작하도록 주선이 되어 있었다. 세심하게 짜놓은 이 계획에 예수가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을 지켜보고 요셉은 참으로 어리둥절했다.

124:6.14 (1375.8) 예수는 성전과 그에 관계된 모든 예배(禮拜)와 기타 활동에 깊이 감명을 받았다. 네 살이 되고 난 뒤에 처음으로, 자신의 명상에 너무 깊히 빠져서, 많이 묻지 않았다. 그러나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어째서 하늘 아버지가 죄 없고 무력한 동물의 도살(屠殺)을 그토록 많이 요구하는가, 몇 가지 난처한 질문을 던졌다. 소년의 얼굴 표정으로부터, 자기의 대답과 설명하려는 노력이 깊이 생각하고 날카롭게 따지는 아들에게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아버지는 잘 알았다.

124:6.15 (1376.1) 유월절 안식일 전날에, 영적 빛의 큰 물결이 예수의 필사 지성을 휩쓸었고, 옛날부터 내려온 유월절을 기념하여 축하하려고 모인, 영적으로 눈멀고 도덕적으로 무지한 군중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느낌이 그의 인간 가슴을 넘치도록 채웠다. 이날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보낸 가장 특별한 날 중의 하나였다. 그날 밤에, 땅에서 살던 생애에 처음으로, 이마누엘의 임명을 받고서, 구원자별로부터 배치된 사자(使者)가 그에게 나타났다. 그 사자는 말했다. “때가 왔나이다. 당신의 아버지의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이다.”

124:6.16 (1376.2) 그래서 나사렛 가족의 무거운 책임이 어린 그의 어깨에 지워지기도 전에, 아직 열세 살이 채 안 된 이 소년에게, 한 우주의 책임을 비로소 다시 질 때가 왔다고 상기시키려고 이제 하늘의 사자가 도착한 것이다. 이것은 유란시아에서 아들의 자신 수여를 마침내 완수하고, “인간이자 신(神)인 그의 어깨 위에 한 우주의 정부”를 되돌려 놓은, 길게 이어지는 여러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124:6.17 (1376.3) 시간이 지나자, 육신화의 신비는 우리 모두에게, 갈수록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이 나사렛 소년이 온 네바돈의 창조자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바로 이 창조 아들의 영과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영이 인류의 혼들과 결합되는가도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가 육체를 입고 인생을 살지만, 정신적으로 그의 어깨 위에 한 우주의 책임이 놓여 있음을 그의 인간 지성이 점점 더 깨닫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124:6.18 (1376.4) 이렇게 나사렛 소년의 경력이 끝나고, 청년기에 들어간 그 젊은이―점점 더 자의식하는 신다운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확대되는 일생의 목적을 부모의 소망, 그리고 가족과 그가 사는 시대의 사회에 대한 의무와 통합하려고 애쓰면서, 이제 그는 세계적 생애를 비로소 깊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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