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랜시아 책 - 제 63 편. 첫 인간 가족

(UF-KOR-001-2016-1)

유랜시아 책

제 3: 부 유란시아의 역사

제 63 편. 첫 인간 가족



제 63 편. 첫 인간 가족

63:0.1 (711.1) 처음 두 인간이―쌍둥이가―11 살이었을 때, 실제 인간의 둘째 세대, 곧 처음으로 얻은 자식의 부모가 되기 전에, 유란시아는 사람이 사는 세계로서 등록되었다. 구원자별에서 전해 온 천사장의 말씀은 공식으로 행성을 인정하는 이 기회에, 다음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

63:0.2 (711.2) “사람의 지성이 사타니아 606번에서 나타났는데, 새 민족의 이 부모를 안돈과 폰타라 부르겠다.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 우주의 아버지가 내리는 영 선물이 빨리 몸소 깃들도록 모든 천사장이 기도한다.”

63:0.3 (711.3) 안돈은 네바돈에서 주는 이름이요, “완전해지고 싶은 인간의 갈망을 나타내는, 아버지 같은 첫 사람”을 의미한다. 폰타는 “완전해지고 싶은 인간의 갈망을 나타내는, 아들 같은 첫 사람”을 의미한다. 안돈과 폰타는 자기 생각 조절자와 융합할 때 이름을 받기까지, 결코 이 두 이름을 알지 못했다. 유란시아에서 필사자로서 체류하는 동안 내내, 그들은 서로 손타안과 손타엔으로 불렀고, 손타안은 “어머니에게 사랑받음,” 손타엔은 “아버지에게 사랑받음”을 뜻한다. 자신들에게 이런 이름을 주었고, 그 뜻은 그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함을 가리켰다.

1. 안돈과 폰타

63:1.1 (711.4) 여러 점에서, 안돈과 폰타는 지구의 표면에서 언젠가 살았던 인간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쌍이었다. 이 놀라운 쌍은 온 인류의 실제 부모였고, 많은 직계 후손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했으며, 그들의 모든 조상, 가까운 조상 및 먼 조상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63:1.2 (711.5) 이 첫 인간 쌍의 부모는, 그들 부족의 평균과 거의 다른 듯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총명한 구성원 편에 속했고, 그 집단은 싸울 때 돌을 던지고 곤봉 쓰는 것을 처음으로 배운 집단이었다. 그들은 또한 날카로운 바늘 모양의 돌ㆍ부싯돌ㆍ뼈를 사용했다.

63:1.3 (711.6) 아직도 부모와 함께 사는 동안, 안돈은 곤봉 끝에 날카로운 부싯돌 조각을 묶었고, 이 목적으로 동물의 힘줄을 썼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그와 똑같이 모험을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누이의 목숨을 구하는 데, 그는 적어도 열두 번이나 그러한 무기를 잘 써먹었으며, 그 누이는 어떤 탐험 여행에도 어김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63:1.4 (711.7) 허다한 후일의 후손이 부끄럽게도, 뒤떨어진 원숭이족 사촌들과 짝지었다. 안돈과 폰타가 영장목 부족들로부터 달아나려고 한 결정은, 이들의 특징을 나타낸 저질의 지성보다 훨씬 높은 품질의 지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한 동물보다 더한 무엇이라는 어렴풋한 느낌은 인격을 소유했기 때문이었고, 깃드는 생각 조절자의 계심이 그런 느낌을 키웠다.

2. 쌍둥이의 도망

63:2.1 (712.1) 북쪽으로 달아나기로 결심한 뒤에, 안돈과 폰타는 한동안 두려움, 특히 아버지와 그 직계 가족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까 하는 두려움에 빠졌다. 그들은 적대하는 친척들의 공격을 받는 것을 상상했고, 그래서 벌써부터 시샘하는 부족원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을 깨달았다. 어린이로서, 그 쌍둥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붙어 다니면서 보냈고, 이 때문에 영장목 부족의 동물 사촌들 사이에서 결코 지나치게 평판이 좋은 적이 없었다. 동떨어진 아주 우수한 나무 집을 지은 것도 부족에서 그들의 위치를 개선하지 않았다.

63:2.2 (712.2) 나무 꼭대기 사이에 지은 이 새 집에서, 어느 날 밤, 사나운 폭풍에 잠이 깬 뒤에, 무서워서 다정한 포옹 속에 서로를 부둥켜안으면서, 그들은 부족의 거처와 나무 꼭대기의 집을 떠나려고 마침내, 완전히 마음을 먹었다.

63:2.3 (712.3) 그들은 북쪽으로 반나절 여행하는 거리에 어설픈 나무 꼭대기 은신처를 이미 마련해 놓았다. 이것은 고향 숲을 떠난 첫날에 그들이 지낼 비밀스럽고 안전한 은신처였다. 그 쌍둥이는 밤에 땅에서 있는 것을 죽는 듯이 싫어하는 영장목의 두려움을 가졌는데도, 밤이 오기 조금 전에 북쪽으로 여행 길을 떠나갔다. 이런 밤 여행을 시도하는 것은 보름달이 있더라도 비상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부족원과 친척들이 그들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그들을 추적할 가능성이 덜하다고 똑바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자정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그들은 앞서 준비해 놓은 회합 장소에 안전히 다다랐다.

63:2.4 (712.4) 북쪽으로 가는 여행 길에 노출된 부싯돌 매장물을 발견했고, 여러 용도에 알맞게 생긴 많은 돌을 발견하고, 앞날을 위하여 물자를 모았다. 이 부싯돌을 어떤 목적에 더 알맞게 쪼개려고 노력하면서, 안돈은 불이 튀는 부싯돌의 성질을 발견했고, 불을 지피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기후가 아직도 쾌적했고, 불이 거의 필요 없었기 때문에, 그때 이 생각은 머리 속에 깊이 박히지 않았다.

63:2.5 (712.5) 그러나 하늘에서 가을 해는 낮아지고 있었고, 그들이 북쪽으로 여행함에 따라서, 밤은 더욱 서늘해졌다. 이미 그들은 몸을 따듯하게 하려고 동물의 가죽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집을 떠난 지 한 달이 되기 전에, 안돈은 그가 부싯돌로 불을 지필 수 있다 생각한다고 짝에게 뜻을 알렸다. 불을 지피는 데 부싯돌의 불꽃을 쓰려고 두 달 동안 애썼지만, 실패하기만 했다. 날마다 이 쌍은 부싯돌을 쳐서 나무에 불을 붙이려고 애쓰곤 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녁, 해가 질 무렵에 그 기술의 신비가 풀렸는데, 그때 폰타에게 근처의 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버려진 한 새 둥지를 확보할 생각이 떠올랐다. 그 둥지는 말라서, 상당히 불붙기 쉬웠고, 따라서 불꽃이 떨어지는 순간, 당장 타올라서 큰 불덩이가 되었다. 성공한 데 너무나 놀라고 당황해서, 그들은 불을 거의 잃을 뻔했지만, 적당한 땔감을 더해서 불을 살렸고, 다음에 온 인류의 부모가 땔나무를 얻으려고 처음으로 탐색을 나섰다.

63:2.6 (712.6) 이것은 짧지만 파란 많은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기쁜 순간 중에 하나였다. 밤새 그들은 불이 타는 것을 구경하며 앉아 있었고, 기후에 대항하고, 따라서 그들의 발견이 남쪽 땅에서 사는 동물 친척들로부터 언제까지나 독립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사흘 동안 쉬고 불을 즐기고 난 뒤에, 다시 길을 떠났다.

63:2.7 (712.7) 안돈의 영장목 조상들은 번개로 붙은 불에 가끔 땔감을 더한 적이 있지만, 결코 이전에는 땅의 생물이 뜻대로 불을 지피는 방법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쌍둥이는 마른 이끼와 기타 물질이 새 둥지만큼 불이 잘 붙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3. 안돈의 가족

63:3.1 (713.1) 쌍둥이가 집을 떠난 밤부터 첫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거의 2년이 되었다. 그들은 아이를 손탓이라고 불렀고, 손탓은 유란시아에서 출생할 때 보호하는 덮개에 싸인 첫 사람이었다. 인류가 시작되었고, 이 새로운 진화와 함께, 더욱 약해진 아기들을 적절히 돌보는 본능이 나타났으며, 이런 아기들은 순전히 동물인 종류와 대조해서 지적 서열의 지성이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63:3.2 (713.2) 안돈과 폰타는 아이들을 모두 19명 가졌고, 손자 손녀를 거의 50명, 증손을 6명 볼 때까지 살았다. 그 가족은 인접한 네 개의 바위 피난처, 곧 반 동굴에서 거주했는데, 그 중에 셋은 복도로 서로 연결되었고, 안돈의 아이들이 고안한 부싯돌 연장으로 부드러운 석회석에서 이 복도를 파냈다.

63:3.3 (713.3) 이 초기 안돈 사람들은 대단히 뚜렷한 씨족 정신을 드러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사냥했고, 결코 집터로부터 그다지 멀리 떠나지 않았다. 자기들이 고립되고 독특한 집단의 살아 있는 존재이며, 따라서 떨어져 있기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듯했다. 이렇게 밀접한 인척 관계를 느끼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보조 영들이 지성에게 베푸는 봉사가 향상되었기 때문이었다.

63:3.4 (713.4) 안돈과 폰타는 씨족의 양육과 향상을 위하여 끊임없이 수고했다. 그들은 42살까지 살았고, 그 나이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툭 튀어나온 바위가 떨어져서 죽음을 당했다. 아이들 중에 다섯 명과 손자ㆍ손녀 11명이 함께 죽었고, 거의 스무 명의 후손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63:3.5 (713.5) 부모가 죽고 나서, 발을 몹시 다쳤는데도, 손탓은 즉시 그 씨족의 지도권을 쥐었고, 그의 아내, 곧 맨 위 누이가 그를 유능하게 보조했다. 그들의 처음 과제는 죽은 부모ㆍ형제ㆍ자매ㆍ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무덤에 넣도록 돌을 굴려 올리는 것이었다. 이 매장하는 행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죽은 뒤에 살아남는 것에 대한 그들의 관념은 아주 어렴풋하고 분명치 않았고, 대체로 그들의 환상적이고 다채로운 꿈 속의 생활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63:3.6 (713.6) 이 안돈과 폰타의 가족은 20 세대에 이르기까지 같이 지냈는데, 그때 식량 경쟁과 사회적 마찰이 합쳐서 비로소 가족이 흩어지게 되었다.

4. 안돈 씨족

63:4.1 (713.7) 원시인―안돈 족속―은 까만 눈과 거무스레한 살갗, 누런 빛과 붉은 빛의 잡종과 같은 것이었다. 멜라닌은 모든 인간의 살갗에서 발견되는, 색을 입히는 물질이다. 그것은 최초의 안돈 살갗에 있는 물감이다. 일반적 겉모습과 피부 색깔로 보면 이 초기의 안돈 족속은 살아 있는 어느 다른 인간 종류보다, 오늘날의 에스키모를 더 비슷하게 닮았다. 그들은 추위를 막으려고 동물의 가죽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었고, 오늘날의 인간보다 몸에 털이 거의 더 많지 않았다.

63:4.2 (713.8) 이 초기 인간의 동물 조상이 누렸던 부족 생활은 수많은 시초의 사회 모임에 전조(前兆)가 되었고, 이 존재들의 발달하는 감정과 늘어난 두뇌력과 함께, 즉시 사회 조직이 발달하고 씨족 노동의 새로운 분업이 생겼다. 그들은 몹시 흉내를 잘 냈지만, 놀이 본능은 조금만 발달되었고, 유머 감각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원시인은 때때로 빙그레 웃었지만, 결코 마음껏 너털 웃음을 웃지는 않았다. 유머는 후일에 아담 종족이 물려준 유산(遺産)이었다. 이 초기 인간은 나중에 진화하는 많은 필사자처럼, 그렇게 아픔을 예민하게 느끼지 않았고 불쾌한 상황에 그다지 민감하지도 않았다. 출산은 폰타와 그 직계 후손에게 아프거나 괴로운 시련이 아니었다.

63:4.3 (714.1) 그들은 놀라운 부족이었다. 남자들은 제 짝과 자식들의 안전을 위하여 영웅처럼 싸우곤 했고, 여자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헌신했다. 그러나 그들의 애족심은 온전히 직계 씨족에게만 국한되었다. 그들은 가족에게 대단히 충성했고, 제 아이들을 방어하는 데 죽음도 서슴지 않았지만, 손자ㆍ손녀를 위하여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 애쓰는 개념을 깨우칠 수 없었다. 종교의 탄생에 필수인 모든 감정이 이미 이 유란시아 원주민에게 있었는데도, 이타주의는 인간의 가슴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63:4.4 (714.2) 이 초기의 인간은 동무들에 대하여 감동적 애정, 그리고 서툴기는 하지만 진짜 우정 관념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열등한 부족들과 항상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전투 중에서, 이 원시인들 중에 하나가 부상한 동료 투사를 보호하고 구하려 애쓰면서 한 손으로 용감히 싸우는 것은 후일에 흔히 보는 광경이었다. 후일에 진화가 발전되면서 대단히 고귀하고 상당히 인간다운 많은 특성이 이 원시 민족들에게 전조(前兆)로 나타난 것은 감동이 된다.

63:4.5 (714.3) 최초의 안돈 씨족은 27대까지 끊어지지 않고 지도자의 핏줄을 유지했고, 그때 손탓의 직계 후손 가운데서 아무런 남자 자손이 나타나지 않자, 그 씨족에서 통치권을 지망하는 두 경쟁자가 주도권을 쥐려고 싸움에 들어갔다.

63:4.6 (714.4) 안돈 씨족들이 널리 퍼지기 전에, 일찍부터 서로 뜻을 교통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잘 발달된 언어가 진화했다. 이 언어는 줄곧 성장했으며, 활발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호기심 많은 이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에, 거의 날마다 낱말이 더해졌다. 이 언어는 나중에 유색 인종들이 나타나기까지, 유란시아의 말, 초기 인간 가족의 언어가 되었다.

63:4.7 (714.5) 시간이 흐르자, 안돈 씨족들의 수가 늘어났고, 가족들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마찰과 오해를 낳았다. 이 민족들은 오로지 두 가지만 머리 속에 생각하고 있었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사냥하는 것, 그리고 이웃 부족들의 손에서 실제로 어떤 불공평한 대우나 모욕을 받든지, 또는 받았다고 생각하여 복수하려고 싸우는 것이었다.

63:4.8 (714.6) 가족 싸움이 늘어났고, 부족 전쟁이 터졌으며, 유능하고 진보된 집단의 가장 좋은 성분 중에서 심각한 손실이 있었다. 이 손실 가운데 더러는 돌이킬 수 없었고, 능력과 지능을 가진 가장 귀중한 핏줄이 더러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이 초기 민족과 그 원시 문명은 씨족들이 벌인 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하여 멸종의 위협을 받았다.

63:4.9 (714.7) 그러한 원시인을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도록 유도하기는 불가능하다. 사람은 싸우는 동물의 자손이며,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교양 없는 사람들은 서로를 짜증나게 하고 성나게 한다. 생명 운반자들은 진화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이 성향을 알며, 따라서 발전하는 인간들을 궁극에 적어도 뚜렷이 다르고 따로 된 세 민족, 그리고 더 흔하게 여섯 민족으로 분리하도록 주선한다.

5. 안돈 족속의 분산

63:5.1 (715.1) 초기의 안돈 종족들은 아시아로 아주 깊숙이 파고들지 않았고, 처음에는 아프리카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시절에 지리(地理)는 그들에게 북쪽으로 가라고 가리켰고, 느리게 진행하는 셋째 빙하의 얼음에 방해를 받을 때까지, 이 사람들은 북쪽으로 멀리 멀리 떠나갔다.

63:5.2 (715.2) 이 광범위한 빙상이 프랑스와 영국 제도에 이르기 전에, 안돈과 폰타의 후손은 유럽으로 서쪽으로 밀고 나갔고, 그때 따듯했던 북해의 바다까지 이르는 큰 강들을 따라서, 따로 떨어진 촌락을 세운 것이 1천 개가 넘는다.

63:5.3 (715.3) 이 안돈 부족들은 프랑스에서 일찍부터 강가에서 정착한 사람들이었고, 솜 강을 따라서 수만 년 동안 살았다. 솜 강은 빙하에 영향을 받지 않은 강이었고, 그 시절에 오늘날과 비슷하게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이것이 어째서 안돈 후손의 자취가 그렇게 많이 이 강 유역의 진로를 따라서 발견되는가 설명한다.

63:5.4 (715.4) 이 유란시아 토착민은 나무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상시에 아직도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강가를 따라서, 위에서 튀어나온 절벽의 보호 밑에, 그리고 접근하는 길이 잘 내려다보이고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산허리의 석굴 속에서 정규적으로 살았다. 그들은 이렇게 연기로 지나치게 불편을 겪지 않고서, 지핀 불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동굴에서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후일에 빙상이 나중에 남쪽으로 더 내려와서 그들의 후손을 동굴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숲 가장자리 가까이서, 그리고 냇물 가에서 야영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63:5.5 (715.5) 일부 보호된 거처를 감추는 데 그들은 아주 일찍부터 놀랍게 영리해졌고, 돌로 된 침실, 지붕이 둥근 돌 오두막을 만드는 데 큰 솜씨를 보였으며, 밤에는 그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한 오두막의 입구는 앞에 돌을 굴려서 막았고, 이것은 이 목적을 위해서 지붕의 돌들이 마지막에 제자리에 놓여지기 전에 안에 들여 놓은 큰 돌이었다.

63:5.6 (715.6) 안돈 족속은 두려움이 없고 솜씨 있는 사냥꾼이었으며, 야생의 딸기와 어떤 나무 열매들을 제외하면 순전히 고기를 먹고 살았다. 안돈이 돌도끼를 발명한 것처럼, 그의 후손도 던지는 막대기와 작살을 일찍 발견하고 효과 있게 사용했다. 마침내 연장을 만드는 머리가 도구를 쓰는 손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고, 이 시초 인간들은 부싯돌 연장을 다듬는 데 상당히 솜씨가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인간이 금ㆍ백금ㆍ다이아몬드를 찾아서 땅 끝까지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게, 그들은 부싯돌을 찾아서 멀리, 또 널리 여행했다.

63:5.7 (715.7) 여러 가지 다른 면에서 이 안돈 부족은 퇴보하는 후손들이 50만 년 동안 도달하지 못한 정도의 지능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후손들은 여러 번, 불을 피우는 여러 가지 방법을 되풀이해서 다시 발견했다.

6. 오나가―진리를 가르친 첫 선생

63:6.1 (715.8) 안돈 족속이 더욱 흩어짐에 따라서, 그 씨족들의 문화적ㆍ영적 상태는 오나가의 시절까지 거의 1만 년 동안 퇴보했다. 오나가는 이 부족들의 지도권을 쥐고 그들 사이에 평화를 가져왔고, 처음으로 모두가 “사람과 동물에게 숨을 주시는 분”을 예배하도록 이끌었다.

63:6.2 (716.1) 안돈의 철학은 매우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어쩌다가 불을 발견하여 크게 편안해졌기 때문에 불 숭배자가 될 뻔한 것을 겨우 모면했다. 그러나 논리는 자신이 발견한 불로부터 더 우수하고 더 경외감을 자아내는, 열과 빛의 근원인 태양으로 그를 인도하였다. 하지만 태양이 너무 멀리 있어서 그는 태양 숭배자가 되지는 않았다.

63:6.3 (716.2) 안돈 족속은 자연―천둥ㆍ번개ㆍ비ㆍ눈ㆍ우박ㆍ얼음―을 두려워하기를 일찍 배웠다. 그러나 이 초기 시절에 배고픔은 늘 되풀이되는 욕구였고, 그들이 대체로 동물을 먹고 살았으니까, 궁극에 일종의 동물 숭배를 발전시켰다. 안돈에게, 먹이가 되는 큰 동물은 창조의 힘과 오래 가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때때로 이 큰 여러 동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지정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특이한 동물이 한창 있을 때, 동굴 벽에 그 동물의 서투른 윤곽이 그려지곤 했고, 나중에는 예술이 계속 진보함에 따라서, 그러한 동물 신(神)이 여러 가지 장신구에 새겨졌다.

63:6.4 (716.3) 아주 일찍부터 안돈 종족은 부족이 숭배하는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을 삼가는 버릇을 길렀다. 젊은이들의 머리에 인상을 주기에 더 알맞게, 당장 그들은 경외하는 예식을 진화시켰는데, 이것은 이 존경받는 한 동물의 몸 근처에서 진행되었다. 더 나중에 그 후손이 이 원시적 연출을 더 공들인 희생 예식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의 일부로서 희생물 바치기의 기원이다. 모세가 이 관념을 히브리인의 의식(儀式)에서 더 다듬었고, 이론으로는 이를 사도 바울이 “피를 흘림”으로 죄를 대속하는 교리로서 보존했다.

63:6.5 (716.4) 이 원시 인간의 생활에서 먹을 것이 온통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은, 그들의 큰 선생 오나가가 이 단순한 사람들에게 가르친 기도에서 나타난다. 이 기도는 다음과 같다:

63:6.6 (716.5) “아, 생명의 숨이여, 오늘날 우리에게 나날의 양식을 주시고, 얼음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며, 숲에 있는 우리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고, 자비롭게 큰 저승으로 우리를 받으소서.”

63:6.7 (716.6) 오나가는 현재 카스피 바다 지역, 고대 지중해의 북쪽 바닷가에, 오반이라 부르는 촌락에서 본부를 유지했는데, 이곳은 메소포타미아 남쪽 땅으로부터 북쪽으로 이끄는 여행 길이 서쪽으로 도는 곳에, 머무르는 장소였다. 오반으로부터 그는 하나의 신의 교리와 그가 큰 저승이라 부른, 다음 세상의 개념을 전파하려고 먼 촌락들까지 선생들을 보냈다. 이 오나가의 밀사(密使)들은 세상에서 첫 선교사였다. 그들은 또한 처음으로 고기를 익히고, 먹을 것을 요리하는 데 불을 처음으로 정규적으로 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작대기 끝에, 또한 뜨거운 돌 위에 고기를 익혔고, 나중에는 큰 덩어리를 불 속에서 구웠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은 거의 전적으로 날 고기 먹는 버릇으로 돌아갔다.

63:6.8 (716.7) 오나가는 (서기 1934년부터) 983,323년 전에 태어났으며, 그는 69살이 되기까지 살았다. 행성 영주 이전 시절에 살던 이 큰 지성인이자 영적 지도자가 이룩한 업적의 기록은 이 원시 민족들을 참된 사회로 조직한, 가슴 떨리는 이야기이다. 그는 효율적 부족 정부를 세웠고, 그와 같은 것은 수천 년 동안 뒤잇는 세대들이 이룩하지 못했다. 두 번 다시, 행성 영주가 도착할 때까지, 그토록 높은 영적 문명은 땅에 없었다. 이 소박한 사람들은 원시적이기는 해도 진정한 종교를 가졌다. 그러나 질이 나빠지는 그들의 후손이 나중에 그 종교를 잃어버렸다.

63:6.9 (717.1) 안돈과 폰타는 여러 후손처럼 생각 조절자를 받았지만, 오나가의 시절이 되어서야 조절자와 수호 세라핌이 큰 떼를 지어 유란시아로 왔다. 이때는 정말로, 원시인의 황금기였다.

7. 안돈과 폰타가 살아남다

63:7.1 (717.2) 인류의 빛나는 창시자 안돈과 폰타는 행성 영주가 도착하고 나서 유란시아의 판결이 있을 때 인정을 받았으며, 시간이 되자 예루셈에서 시민 자격을 가지고, 저택 세계의 체제에서 솟아났다. 그들은 결코 유란시아로 돌아가도록 허락받은 적이 없어도, 그들이 세운 민족의 역사를 알고 있다. 그들은 칼리가스티아의 배반을 슬퍼했고, 아담의 실패 때문에 슬퍼했지만, 미가엘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수여할 무대로 그들의 세계를 선택하였다는 발표를 듣고서 넘치게 기뻐했다.

63:7.2 (717.3) 예루셈에서 안돈과 폰타는 자신의 생각 조절자와 융합했고, 또한 손탓도 포함하여, 아이들 몇 명도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직계 후손에서도 대다수가 겨우 영 융합을 이룩하였다.

63:7.3 (717.4) 안돈과 폰타가 예루셈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뒤에, 그들은 첫째 저택 세계로 돌아가서, 유란시아로부터 하늘의 구체들까지 가는 시간 순례자들을 환영하는 상물질계 성격자들과 함께 수고하도록 체계 군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이 근무에 무기한으로 배치되었다. 그들은 이 계시와 관련하여, 유란시아에 인사말을 보내려고 애썼지만, 현명하게도 이 요청은 거절되었다.

63:7.4 (717.5) 그리고 이것이 유란시아의 역사 전체에서 가장 영웅답고 황홀한 장(章), 온 인류의 독특한 부모가 진화하고, 사는 투쟁을 겪고, 죽고, 영원히 살아남은 것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63:7.5 (717.6) [유란시아에서 거주하는 한 생명 운반자가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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