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0.1 (1825.1)2월 11일부터 20일까지, 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아브너의 관계적-연합-동료들과 여인 무리단의 회원들이 일하고 있는 북쪽 페레아의 모든 도시들과 마을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이 복음의 메신저들이 성공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예수는 사도들에게 왕국 복음이 기적과 이적들을 동반하지 않고도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166:0.2 (1825.2)페레아에서의 석 달 동안의 이 사명 전체가 열두 사도들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며, 이때부터 복음은 예수의 개인성보다는 그의 가르침으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지침들을 오랫동안 따르지는 않았다, 이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그들은 곧 그의 가르침에서 벗어났고 그리고는 그의 신성한-인간 개인성의 기적적인 개념과 영광스러웠던 기억들을 중심으로 초기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 라가바의 바리새인들
166:1.1 (1825.3)2월 18일 안식일에 예수는 라가바에 있었고, 그곳에는 나다니엘이라 불리는 어떤 부유한 바리새인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동료 바리새인들의 상당히 많은 숫자가 지역 전역에서 예수와 열두 사도들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안식일 아침에 약 20명쯤 되는 그들 모두를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예수를 귀빈으로 초청하였다.
166:1.2 (1825.4)예수가 이 아침 식사시간에 도착하였을 때, 두세 명의 율법사와 함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이 이미 거기에 있었고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주(主)는 자기의 손을 씻기 위해 물을 담아 놓은 대야로 가려고 하지 않고, 곧바로 나다니엘의 왼쪽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많은 바리새인들, 특히 예수의 가르침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그가 오직 깨끗하게 할 목적으로만 자기의 손을 씻는다는 것, 그가 순수하게 예식적인 이러한 행동들을 몹시 혐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자기의 손을 두 번 씻는 것을 하지 않고 직접 식탁으로 온 것에 대하여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바리새인 실천 관행의 엄격한 요구를 따르는 것에 주(主)가 태만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했던 것과는 달리, 음식의 각 과정의 이후 혹은 식사의 끝난 후에도, 손을 씻지 않았다.
166:1.3 (1825.5)나다니엘과 그의 오른쪽에 앉은 쌀쌀맞은 바리새인사이에서 상당한 귓속말이 있은 후, 그리고 주(主)의 맞은편에 앉았던 사람들이 눈썹을 여러 번 크게 치켜올리고 또한 입술을 실룩대는 냉소가 있은 후에, 예수는 마침내 말했다: “나는 너희가 나를 이 집으로 초청하여, 너희와 함께 빵을 나누고 그리고는 아마도 나에게 하느님 왕국의 새 복음의 선포에 관하여 무언 가를 물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 자신들의 자아-정의로움을 받드는 예식적인 헌신의 전시를 구경하라고 너희가 나를 이곳으로 불렀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 봉사는 이제 너희가 내게 다했다; 너희는 이 특별한 사건에 너희의 손님으로서 온 나에게, 이제 다음에 어떤 것으로 명예롭게 대접할 것이냐?”
166:1.4 (1826.1)주(主)가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식탁 위에 자신들의 눈을 내려 깔고 침묵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예수가 말을 이었다; “너희 바리새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친구로서 나와 함께 자리하고 있고, 더러는 심지어 나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대다수는 복음에서의 일이 그들 앞에서 큰 힘으로 닥쳐있는 데도, 빛을 보기를 또한 진리를 인정하기를 끈질기게 거절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적-음식을 담는 그릇들이 더럽고 오염되었는데, 너희가 어떻게 그렇게 컵과 접시들의 겉을 정성 들여 깨끗하게 하는 것이냐! 너희는 사람들에게 어떤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을 제시하려고 다짐하지만, 너희의 내면의 혼은 자아-정의로움, 탐욕, 강탈, 그리고 모든 방식의 영적 사악함으로 가득 차있다. 심지어 너희의 영도자들은 대담하게 사람의 아들을 죽이고자 음모를 꾸미고 계획을 짜기까지 한다. 너희 어리석은 사람들아, 하늘의 하느님은 너희의 외면의 가장하는 태도와 그리고 너희의 경건한 고백뿐만 아니라, 너희의 혼의 내면의 동기도 본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겠느냐? 구제의 기부와 십일조를 내는 행위가 너희의 불의를 씻어주어서, 모든 사람의 재판관의 현존 안에서 너희가 깨끗하게 설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생명의 빛을 끈질기게 거절하는 너희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너희가 십일조를 내는 데 지나치게 세심하고 또 구제하는 것에 허세를 부리지만, 그러나 너희는 알면서도 하느님의 방문을 업신여겨 내쫓고 또한 그의 사랑의 계시를 거절하고 있다. 너희가 이들 하찮은 의무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비록 옳다고 할지라도, 너희는 더 중요한 요구들을 행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지 말았어야 한다. 공의를 피하고 자비를 업신여겨 내쫓고 진리를 거부하는 모든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한편으로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찾고 장터에서 아첨하는 인사받기를 갈구하면서, 아버지의 계시를 멸시하는 모든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166:1.5 (1826.2)예수가 떠나려고 일어났을 때, 식탁에 앉아 있던 율법사들의 하나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주(主)여, 당신이 언급한 것들의 어떤 것에는, 당신이 우리도 역시 비난하고 있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 또는 율법사들에게 선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까?” 그러자 예수는 서있는 채로, 율법사에게 대답했다; “바리새인처럼, 너희는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 감당하기에 고통스러운 짐을 사람들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면서, 잔치에서 상석에 있는 것과 긴 예복을 입는 것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의 혼이 이들 무거운 짐 밑에서 비틀거리고 있을 때에도, 너희는 손가락 하나도 거들어 주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의 조상들이 죽였던 선지자들을 위하여 무덤 만들기를 가장 커다란 즐거움으로 삼는 너희에게 화 있을 것이라! 그리고 선지자들이 그들의 시대에 했던 것─하느님의 공의를 선포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를 계시하는 것─을 이제 이 시대에 와서 행하고 있는 그들을, 너희가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을 때에는, 너희가 너희 조상들이 한 일을 찬성하는 것임을 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모든 세대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피는, 이 악용하는 그리고 자아-정의로움의 세대에게 요구될 것이다. 보통 사람들로부터 지식의 열쇠를 빼앗아버린 너희 모든 율법사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너희는 너희 자신이 진리의 길에 들어가기를 거절하면서, 그와 동시에 너희는 그곳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다른 모든 사람을 방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늘의 왕국의 문들을 닫을 수 없다; 들어가려는 신앙을 가진 모든 자들에게 우리가 그것을 열어놓았고, 이 자비의 문은,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얗게 회칠한 무덤같이 겉으로는 아름다우나 속으로는 죽은 자의 뼈와 모든 방식의 영적 불결이 가득한, 그러한 그릇된 선생과 참되지 않은 목자들의 편견과 거만에 의해서는 닫히지 않을 것이다.
166:1.6 (1826.3)그리고 예수가 나다니엘의 식탁에서 말을 마치고는, 더 이상 음식을 함께 하지 않고 집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들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그의 가르침을 믿는 신자가 되었고 그래서 왕국 속으로 들어갔지만, 그러나 더욱 많은 수가 끈질기게 어둠의 길 안에 있으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 앞에서 재판받고 판결받도록 그를 데려가는 데 사용될 수도 있는 어떤 것을 그들이 그의 말에서 잡아챌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그를 기다리며 두고 보겠다고 더욱 굳게 결심하였다.
166:1.11 (1827.5)이번 경우에 예수는 처음 두 가지 실천 관행의 영적 쓸모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비(非)-바리새인들과 사회적으로 교제하는 것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거절을 꾸짖으려고 계획했던 자신의 언급들은, 나중에 그가 이들 동일한 사람들의 다수와 다시 식사할, 또 다른 그리고 뒤이어지는 기회를 위하여 예비로 남겨두었다.
2. 열 명의 문둥병자
166:2.1 (1827.6)다음 날 예수는 열두 사도들과 함께 사마리아 경계 가까이에 있는 아마투스로 갔으며, 도시에 가까이 갔을 때 그곳 장소 근처에서 머물고 있는 열 명의 문둥병자 무리들과 마주쳤다. 이들 무리의 아홉 명은 유대인이었고, 한 명은 사마리아인이었다. 보통 이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의 모든 관계적-연합이나 접촉을 주의하며 삼갔을 것이지만, 그들의 공통된 질병은 모든 종교적 선입견들을 극복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들은 예수에 대하여 그리고 일찍이 있었던 그의 치유의 기적들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들었었고, 또한 주(主)가 열두 사도들과 이런 여행으로 나갈 때, 70인들은 예수의 예상되는 도착 시간을 공표하는 실천 관행을 만들었기에, 이곳에 왔을 때,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이 무렵에 이 부근에서 그가 나타나기로 예상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에 따라서, 그들이 그의 주목을 끌어서 치유를 청했으면 하는 희망을 품었던 도시의 외곽인 이곳 부근에서 보초를 세워가며 기다렸다. 문둥병자들은 예수가 그들 근처로 오는 것을 보자, 그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멀찌감치 서서 그에게 외쳤다: “주(主)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저희의 질병으로부터 저희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남들을 치유했듯이 저희를 치유해주십시오.”
166:2.2 (1827.7)예수는 이때 마침 열두 사도들에게, 페레아 지방의 이방인들과 정통성이 적은 유대인들이, 정통성이 보다 크고 그리고 전통에-매인 유대 지역의 유대인들보다, 70인이 전파한 복음을 왜 더욱 기꺼이 믿으려고 하는지에 대해 막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메시지가 마찬가지로 갈릴리인들, 심지어는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더욱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고 그들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열두 사도들은 오랫동안-멸시했던 사마리아인들에게 아직도 친근한 느낌을 도저히 품으려 하지 않았다.
166:2.3 (1827.8)이에 따라서, 열심당원 시몬은 그 문둥병자들 가운데 사마리아인을 관찰하고는, 주로 하여금 그들과 인사를 나누려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통과하여 도시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하려고 애를 썼다. 예수가 시몬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사마리아인이 유대인들만큼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의 동료 사람들을 우리가 심판해야만 하겠느냐?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만일 이들 열 명을 모두 온전하게 한다면, 아마도 사마리아인이 실로 유대인들보다 더욱 고마워할 것임을 증명할 것이다. 시몬아, 너는 네 의견이 맞을 것이라고 느끼느냐?” 그러자 시몬이 재빨리 대답했다, “당신이 저들을 깨끗하게 하면, 당신이 곧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하였다. “시몬아, 그렇게 될 것이며, 그래서 너는 사람들의 감사와 하느님의 사랑넘치는 자비에 관한 진리를 곧 알게 될 것이다.”
166:2.4 (1827.9)예수는 문둥병자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너희가 만일 온전하게 되고 싶다면, 당장에 가서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주어라.” 그리고 그들은 가는 동안에 온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자신이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되돌아서서 예수를 찾으려 나가면서 큰 음성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가 주(主)를 발견하자, 그는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깨끗해짐에 대해 감사했다. 다른 아홉 명인, 유대인들도 역시 자신들의 치유를 발견하였고, 한편으로는 그들도 자신들의 깨끗해짐에 대하여 고마워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보이려고 사제에게 가는 길을 계속 나아갔다.
166:2.5 (1828.1)사마리아인이 아직 예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주(主)는 열두 사도들, 특히 시몬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열 명이 깨끗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러면 다른 아홉 명인, 유대인들은 어디 있느냐? 오직 한 사람, 이 낯선 외국인만이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 사마리아인에게 말했다. “일어나서 네 길을 가라; 너의 신앙이 너를 온전하게 만들었다.”
166:2.6 (1828.2)그 낯선 자가 떠나가자 예수는 다시 그의 사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을 아래로 떨어뜨린 열심당원 시몬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은 예수를 바라보았다. 열두 사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수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166:2.7 (1828.3)이들 열 사람 모두가 실제로 자신들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믿었지만, 단지 네 사람만이 그렇게 질병을 앓았었다. 나머지 여섯 명은 문둥병이라고 잘못-다루어진 피부병이 치료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은 실제로 문둥병에 걸려 있었다.
166:2.8 (1828.4)예수는 열두 사도들에게 문둥병자들을 깨끗하게 한 것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마투스에 들어가는 길에 그가 주목하며 말했다: “너희는 집의 자녀들이 심지어 그들이 자신들 아버지의 뜻에 불순종할 때에도, 어떻게 자신들의 축복을 당연하게 여기는지를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치유를 증여할 때 감사하는 것을 소홀해도, 그들은 그것을 하찮은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낯선 자들은 집의 가장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을 때는, 경이로움으로 휩싸이고, 또한 자신들에게 증여된 그 선한 것들을 인지하면서 감사를 올리려고 억눌리게 된다.” 그러자 사도들은 주(主)의 말에 응답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잠잠히 있었다.
3. 게라사에서의 설교
166:3.1 (1828.5)예수와 열두 사도들이 왕국의 메신저들과 함께 게라사를 방문하자, 그를 믿는 바리새인들의 하나가 질문하였다. “주님, 실제로 구원을 받는 자가 적습니까? 아니면 많습니까?” 그러자 예수가 대답하였다:
166:3.2 (1828.6)“너희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들만 구원받을 것이라고 배워왔다; 또한 오직 입양되어 있는 이방인들만 구원에 대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배워왔다. 너희들의 일부는 어떤 사람들은, 성서에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무리들 가운데에서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 만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까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하늘의 왕국을 찾아 나서는 자들의 비교적 적은 자들만 그곳 입구를 발견하리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166:3.3 (1828.7)“너희 가운데에는 또한 많은 진리가 담긴 또 다른 격언도 있다: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똑바르고 좁으며,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은 마찬가지로 좁기 때문에, 구원을 찾아 나서는 자들의 적은 숫자만이 이 문을 통해 입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또 그리로 들어가는 입구도 넓기 때문에, 이 길을 가려고 선택한다는 자가 많다는 가르침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격언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구원이 무엇보다도 먼저 너희들 각자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선언한다. 생명의 길로 가는 문이 비록 좁다 할지라도, 들어가기를 진지하게 찾아 나서는 모든 자들을 수용할 정도로 충분히 넓다, 이는 내가 그 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은, 신앙으로써, 아들을 두루 통하여 아버지를 발견하려고 찾아 나서는 우주의 어떤 자녀에게도 입장을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166:3.4 (1829.1)“그러나 계속하여 미성숙의 쾌락들을 추구하고 또한 이기주의를 만족시키는 것에 탐닉하면서,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자신들의 입구를 소홀히하고 뒤로 미루려는 모든 사람에게는 여기에 위험이 있다: 그들은 어떤 영적 체험으로서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시대에 더욱 영광스러운 길이 계시되기 시작할 때, 그들은 그에 뒤따라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인간성의 모습으로 왔을 때에 왕국을 업신여겨 내쫓은 자들이, 내가 신성의 모습으로 그것이 계시되는 때에 어떤 입구를 발견하려고 찾아 나서면, 그때는 내가 이러한 모든 이기적인 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 너희는 왕국의 이러한 시민관계를 위해 준비할 너희의 기회를 가졌었지만, 그러나 너희는 그러한 모든 자비의 제안들을 거절하였다; 너희는 문이 열려있을 때 오라는 모든 초청을 거부하였다. 이제, 구원을 거절한 너희에게는 문이 닫혔다. 이 문은 이기적인 영광을 위하여 왕국에 들어오려는 자들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구원은 내 아버지의 뜻을 전심을 바쳐 봉헌하는 값을 억지로 치르려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너희가 영과 혼 안에서 아버지의 왕국에 등을 돌렸을 때, 몸과 마음 안에서 이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님,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십시오; 우리도 역시 왕국 안에서 크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외쳐도, 그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때 나는 너희가 나의 양 떼에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할 것이다. 신앙의 선한 싸움을 싸워왔고, 또한 땅에 있는 왕국 안에서 사심-없는 봉사의 보상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에 너희가 있도록, 그렇게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우리들이 당신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 당신이 우리를 길에서 가르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면, 나는 다시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너희는 영적으로 낯선 자이다; 우리는 땅에서 아버지의 자비의 사명활동에서 동료 하인이 아니었다; 나는 너희를 모른다; 그러면 모든 땅의 재판관이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사악한 불의의 일들 안에서 즐거움을 누려왔던 너희 모두는, 우리로부터 떠나라.
166:3.5 (1829.2)“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느님의 왕국 속으로 입장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려고 진지하게 갈망하는 모든 자마다 그러한 언제까지나 영속하는 구원을 분명히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구원을 거절하는 너희들은 언젠가는, 아브라함 자손의 선지자들이 이 영화롭게 된 왕국 안에서 이방인 민족국가들의 신자들과 함께 앉아 생명의 빵을 함께 나누고 또한 그곳에 있는 물로 자신들을 다시-신선하게 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영적 힘 안에서, 또한 살아있는 신앙에서의 끈질긴 공격으로써 그렇게 왕국을 차지할 사람들이 북쪽과 남쪽으로부터 그리고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올 것이다. 그리고 보라, 첫째인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이 되겠고, 마지막인 사람들이 여러 차례 첫째가 될 것이다.”
166:3.6 (1829.3)이것은, 곧고 그리고 좁은 길이라는 오래되고 친밀한 격언을 정말로 새롭고도 낯설게 해석한 것이었다.
166:3.7 (1829.4)사도들과 많은 제자들은 서서히 예수의 초기 선언의 의미를 배우고 있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영의 태어남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너희는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서 정직하고 신앙에서 진지한 모든 자들에게 이것은 영원하게 참된 것으로 남아있다: “보라, 내가 사람들의 가슴의 문 앞에 서서 그리고 두드리니, 누구든지 나에게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리고 그에게 생명의 빵을 먹일 것이다; 우리는 영과 목적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찾는 길고도 열매-넘치는 봉사 안에서 언제까지나 형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구원될 사람들이 적을지 또는 많을지는 이 초청에 주목하는 자가 적을지 혹은 많을지에 달려있다: “나는 문이며, 나는 새로우면서도 살아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뜻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찾는 끝없는 진리-탐구를 착수하는 데 들어갈 수가 있다.
166:3.8 (1829.5)사도들 조차도 모든 물질적 저항을 두루 깨부수는 목적을 위하여, 또한 하느님의 해방된 아들들로서 영 안에서의 새로운 생명에 대한 모든-중요한 영적 가치를 파악하는 길 안에서 우연히 서 있을지도 모르는 모든 땅에서의 장애물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영적 기세를 사용할 필요성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4. 우연한 사고에 관한 가르침
166:4.1 (1830.1)팔레스타인 사람들 대부분은 하루에 두 끼의 식사를 하였지만, 예수와 사도들은 여행을 할 때, 휴식과 원기-회복을 위하여 한낮에 잠시 멈추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로 가는 길에서 그렇게 정오에 길을 멈추었을 때, 도마가 예수에게 물었다. “주(主)여, 오늘 아침에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에 당신의 견해들을 들으면서 떠오른 질문인데, 물질적인 세계 안에서 이상하고 비상한 발생-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에 영적 존재들이 관여하고 있는지를 제가 묻고 싶고, 더 나아가서 천사들과 다른 영적 존재들이 우연한 사고들을 예방할 수 있는지도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166:4.2 (1830.2)도마의 물음에 예수가 말하였다. “내가 너와 그토록 오랫동안 같이 있었는데, 아직도 너는 내게 그런 질문들을 계속하느냐? 사람의 아들이 너희와 함께 하나의 존재로 어떻게 살아가고, 그리고 그 자신의 개인적 본체를 위해서 하늘의 기세들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어떻게 일관되게 거절하는 지를 네가 지켜보지 못했다는 것이냐? 모든 사람들이 존재하는 그와 같은 동일한 수단으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지 않느냐? 아버지의 계시를 위하여, 그리고 질병으로 아픈 그의 자녀들을 때때로 치유하는 것을 제외하고, 이 세상의 물질적인 일생 안에서 현시되는 영적 세상의 힘을 너는 보느냐?
166:4.3 (1830.3)“너희의 조상들은 모두 너무나 오랫동안, 번영은 신성한 허락에 대한 인정받은 표시라고 믿었다; 또한 역경은 하느님의 불쾌함의 증거라고 믿었다. 내가 선언하건대, 그러한 믿음들은 미신들이다. 너희는 훨씬 더 많은 수의 가난한 자들이 기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또한 즉시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관찰하지 않느냐? 만일 부유함이 신성한 은혜를 입증한다면, 부자가 하늘로부터 온 이 좋은 소식을 믿기를 왜 그토록 여러 번 거절하겠는가?
166:4.4 (1830.4)“아버지는 올바른 자와 부정한 자에게 그의 비를 내리신다; 마찬가지로 태양도 정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빛을 비추어준다. 너희는 갈릴리인을 빌라도가 그들의 피를 희생제물에 섞은 것으로 그렇게 알지만,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건대, 이런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다고 해서, 어떤 면에서도 이들 갈릴리인은 그들의 다른 모든 동료들보다 더 죄인이 아니다. 또한 실로암의 망대를 짓다가 열여덟 명이 떨어져 죽은 것을 너희가 알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다고 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그들의 형제들보다 더 죄를 범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들 무리는 단순히 시간에서의 우연한 사고들의 무고한 희생자였을 뿐이다.
166:4.6 (1830.6)“1. 너희는, 땅 위에서 너희와 너희 동료들이 살아가는 일생에서의 한 부분으로 그렇게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것들 안에서 공유될 수가 있다.
166:4.7 (1830.7)“2. 너희는, 자연의 우연한 사고, 사람들의 불운에 어쩌다가 당하는 희생자가 될 수가 있으며, 그러한 발생들이 어떤 면에서도 미리-준비된 것도 아니고 혹은 다른 한편으로 영역의 영적 기세들로 인하여 산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166:4.8 (1830.8)“3. 너희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연적인 법칙과 거기에 순응하는 너희의 직접적인 노력의 수확물을 거두어 들일 수가 있다.
166:4.9 (1830.9)“자기 집 마당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여러 번 열매를 얻고자 하였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포도원 일꾼들을 자기 앞으로 불러서 말했다; ‘내가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고 여기에 3년 동안 왔지만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열매 맺지 못하는 이 나무를 베어 버려라. 왜 땅만 못쓰게 하느냐?’ 그러나 우두머리 정원사가 자신의 주(主)에게 말했다; ‘내가 그 주변의 땅을 파서 거름을 줄 수 있도록 일 년만 더 놓아두십시오. 그리고 그리하여도 다음 해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않으면, 잘라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열매-풍성함을 얻는 법칙에 순응하였을 때, 그 나무가 살아나게 되었고 또 좋아졌으므로, 그들은 풍수한 수확으로 보상을 받았다.
166:4.10 (1831.1)“질병과 건강의 문제에 있어서, 너희는 이러한 육체적인 상태가 물질적인 원인에서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건강이 하늘의 미소가 아니듯이, 질병이 하느님의 못마땅한 질책이 아니다.
166:4.11 (1831.2)“아버지의 인간 자녀들은 누구나 똑같이 물질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수용력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의 자녀들에게 물리적인 것들을 차별 없이 증여하고 있다. 영적 선물의 증여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이 신성한 자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용력에 따라서 아버지가 제한을 받는다. 비록 아버지가 개인들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지만, 그렇지만 영적 선물들의 증여에서는, 사람의 신앙과 그리고 항상 아버지의 뜻에 계속 머물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적 자발성에 따라서 그는 제한을 받는다.”
166:4.12 (1831.3)그들이 필라델피아를 향하여 여행하는 동안, 예수는 계속하여 우연한 사고와 질병 그리고 기적들과 상관되어 일어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그들은 이러한 지침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 동안의 가르침이 일생토록 지녔던 믿음들을 전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을 납득시키고자 바라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되풀이하여 반복하는 것이 필요함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일어날 때까지 이 땅에서의 그의 사명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실패하였다.
5. 필라델피아에 있는 회중
166:5.1 (1831.4)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필라델피아에서 전도하고 가르치는 아브너와 그의 연관-동료들을 방문하는 그들의 길을 떠났다. 페레아에 있는 모든 도시들 중에서, 필라델피아안에서 가장 큰 무리의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들이 70인의 가르침을 포옹하여, 그로써 그들은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회당은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의 감독 밑에 종속된 적이 결코 없었고 그로 인하여 예수와 그의 연관-동료들의 가르침에 대하여 문을 닫은 적이 결코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아브너는 필라델피아 회당 안에서 하루에 세 번 가르치고 있었다.
166:5.2 (1831.5)바로 이 회당이 나중에 그리스도교인 교회가 되었고, 또한 동쪽 영역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선교 본부가 되었다. 이곳은 오랫동안 주(主)의 가르침에 대한 요새였으며, 여러 세기 동안 이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교인 배움의 중심으로 홀로 우뚝 서 있었다.
166:5.3 (1831.6)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필라델피아의 유대인들과 항상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주님의 남동생 야고보가 우두머리로 있던 예루살렘 교회는 필라델피아의 신자들 회중과 심각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아브너는 필라델피아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그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 역할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과의 이런 소원한 관계가, 어째서 신약 성경의 복음서들 안에서 아브너와 그의 활동에 대해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지를 설명해 준다. 예루살렘과 필라델피아 사이의 이러한 불화는 야고보와 아브너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되었으며, 예루살렘의 파괴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안디옥이 북쪽과 서쪽에서 초기 교회의 본부였던 것처럼, 필라델피아는 남쪽과 동쪽에서 실제로 초기 교회의 본부였다.
166:5.4 (1831.7)아브너가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모든 영도자들과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은 외견상 분명하게 그의 불운으로 보였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관리-행정과 치리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들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예수의 남동생)과 사이가 벌어졌다; 그는 철학과 신학적인 이견 때문에 바울과 갈라섰다. 아브너는 그의 철학에서 헬라인파이기보다는 바빌로니아인파에 더 가까웠으며, 신비로움을 믿는 신자들이 싫어할만한 것들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 다음에는 그리스-로마인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개조하려는, 바울의 모든 시도들에 대하여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166:5.5 (1832.1)그래서 아브너는 하는 수 없이 고립된 일생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기대지 않는 교회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후에 베드로의 지지를 받게 된 주님의 남동생 야고보에게 대담하게 항거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그를 자신의 모든 예전의 관계적-연합-동료들로부터 실질적으로 멀어지게 하였다. 그러고 나자 그는 대담하게 바울에게 대항하였다. 그가 비록 이방인에 대한 그의 사명에 있어서는 바울과 전적으로 공감하였고, 예루살렘 교회와 논쟁이 있을 때 그를 지지하기는 하였지만, 전도하기 위하여 선택한 예수의 가르침들에 대한 바울의 해석에는 통렬하게 반대하였다. 아브너는 자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바울을“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의 일생 가르침들을 영리하게 타락시킨 자”라고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166:5.6 (1832.2)아브너의 후반기와 그 후의 얼마 동안, 필라델피아의 신자들은 땅에서의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예수가 살았던 대로 그리고 가르쳤던 대로, 예수의 종교를 유지하였다.
166:5.7 (1832.3)아브너는 89세가 되도록 살았고, 서기 74년 11월 21일에 필라델피아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는 죽는 바로 마지막까지 하늘왕국의 복음을 신실하게 믿는 신자였고 또 복음의 선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