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랜시아 책 - 제111편 : 섭리사와 혼

(USGNY[CM]-KOR-000-1996-3)

유랜시아 책   

부 III: 유랜시아의 역사

제111편 : 섭리사와 혼



제111편 : 섭리사와 혼

111:0.1 (1215.1) 인간 정신 속에 있는 신성한 섭리사의 현존(現存)이, 과학이나 또는 철학으로 하여금 인간의 인격체의 진화하는 혼에 대한 만족할만한 파악을 달성하게 되기를 영원히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모론시아 혼은 그 우주의 자녀이며, 조화우주적 통찰력(通察力) 및 영적(靈的) 발견에 의해서만 사실적으로 알려질 수 있다.

111:0.2 (1215.2) 혼의 개념과 내주하는 영의 개념은 유란시아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것은 행성의 믿음들의 다양한 체계들 속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어 왔다. 동양의 신앙들 중 다수와 서양의 신앙들 중 일부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인간성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성적으로 신성하다고 감지해 왔다. 신격의 외적인 편재(遍在)에 덧붙여서 내적인 현존에 대한 느낌이 유란시아의 많은 종교들의 한 부분을 오랫동안 형성하여 왔다. 사람들은 현세적인 짧은 기간의 인생을 넘어서도록 하는 데에 어떤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무엇인가가 인간 본성 안에서 자라가고 있음을 오랫동안 믿어 왔다.

111:0.3 (1215.3) 사람의 진화하는 혼이 거룩한 영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그가 알기 전에는, 눈, 간, 콩팥, 심장, 그리고 나중에는 뇌와 같은 다른 육신적 기관들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미개인은 피, 숨결, 그림자 그리고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혼을 관련시켰다.

111:0.4 (1215.4) 힌두교의 교사들은 대아(大我)의 개념작용 속에서 섭리사의 현존과 본성에 대한 평가에 실제적으로 접근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진화하면서 잠재적으로 불멸성을 갖는 혼의 다른 면을 파악하는 데에서 실패하였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인간 존재의 두 가지 면들, ‘음(陰)’‘양(陽)’, 혼과 영을 깨달았다. 이집트인들과 많은 아프리카 부족들도 두 요소들, ‘카’‘바’를 믿었으며; 혼은 대개 선재(先在) 하는 것이 아니고, 영(靈)만이 선재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111:0.5 (1215.5) 나일 계곡에 거주하던 자들은 태어날 때 혜택을 입은 각각의 개체가 그에게 이미 증여되어 있었거나, 또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이 ‘카’라고 부르는 어떤 보호하는 영이 증여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 수호의 영이 필사적 피험자(被驗者)에게 일생동안 함께 하다가 그보다 먼저 미래의 땅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였다. 아멘호텝 3세의 탄생을 묘사하는 룩소르의 신전 벽에는 어린 왕자가 나일 신(神)의 팔 위에 그려져 있고, 그의 곁에는 다른 아이가 있으며, 그 왕자와 똑같은 모습인데, 이것은 이집트인들이 ‘카’라고 부르던 그 실재의 상징이다. 이 조각은 그리스도 이전 15세기에 완성되었다.

111:0.6 (1215.6) ‘카’는 관련된 필사적 혼에게 현세적 삶에서 보다 나은 길로 안내하기를 기뻐하는 영으로, 더욱 특별하게는 인간 피험자가 장차 행운을 맞이하도록 영향을 주는 뛰어난 영 수호신으로 생각되었다. 이 시대에 살던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죽게 되면, 그의 ‘카’가 대하(大河) 저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다. 처음에는, 오직 왕들만 ‘카’를 소유하리라 생각하였지만, 곧 모든 의로운 사람들이 그것들을 소유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집트의 어느 지배자는 자기 마음 속의 ‘카’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것이 이야기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았으며; 그것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나는 그것이 나에게 하게 한 그것으로 인하여 그렇게 성공하였으며; 나는 그것의 안내에 의하여 저명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카’가 “모든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신탁(神託)”이라고 믿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 편에 서서 즐거운 마음으로 영원한 시간을 보내야한다”고 믿었다.

111:0.7 (1216.1) 진화하는 유란시아 필사자들의 모든 종족은 혼의 개념에 해당하는 어떤 말을 갖고 있다. 미개한 여러 민족들은 혼이 인간의 눈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본다고 믿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증오심에 찬 흉악한 눈을 매우 무서워하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영은 주님의 등불이다”라고 믿어왔다. 리그-베다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정신이 나의 마음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1. 선택의 정신 경기장

111:1.1 (1216.2) 섭리사들의 활동이 비록 본질적으로는 영적이더라도, 그들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지능적인 기초 위에서 그들의 모든 활동을 해야만 한다. 정신은 영 관찰자가 내주하는 인격체의 협동으로 모론시아 혼을 그 위에서 증진시켜야만 하는 인간적 토양이다.

111:1.2 (1216.3) 우주들의 우주에 있는 여러 정신 차원들 속에는 조화우주적 통일이 있다. 마치 성운(星雲)이 우주 공간의 조화우주적 에너지들 속에서 기원되는 것처럼, 지능적인 자아들은 조화우주적 정신 속에서 기원된다. 지능적 자아들의 인간적 (이후로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필사자 정신의 동의에 따라 영 증진의 잠재력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러한 인간 자아들 안에 있는 절대 가치의 실재-접촉점이 창조적 현존과 함께 하는 인간 인격체의 영적 천부재능들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물질적 정신의 영 지배는 두 가지의 경험들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정신은 일곱 개의 보조 정신-영들의 사역을 통하여 증진되어 왔어야만 하며, 물질적 (개인적) 자아는 진화적으로 그리고 잠재적으로 불멸의 혼인 모론시아 자아를 창조하고 돌보면서 내주하는 섭리사와 협동하는 쪽으로 반드시 선택해야만 한다.

111:1.3 (1216.4) 물질적 정신은 인간 인격체들이 사는 경기장과 같은데, 그 인격체들은 자아-의식적이고, 결정을 내리며, 하나님을 선택하거나 저버리고, 자신에게 영원성을 부여하든지 파괴하든지 한다.

111:1.4 (1216.5) 물질적인 진화는 너희에게 생명 장치 즉 육신을 제공하여 왔으며, 아버지 자신은 우주 안에 알려진 실체 중 가장 순수한 영 실체인 사고 섭리사를 너희에게 부여하신다. 그러나 너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너희 손에 달려 있고, 너희 자신의 결정에 따르며, 정신에게 주어졌고, 정신에 의해 결정된다. 너희들이 섭리사처럼 되도록 하는, 즉 하나님처럼 되게 하는 그 도덕적 결정들을 너희가 바로 이 정신 속에서 그리고 이 정신과 함께 내리는 것이다.

111:1.5 (1216.6) 필사자 정신은 물질적 일생 동안 사용하도록 인간에게 대여된 일시적 지능 체계이며, 그들이 이 정신을 사용함으로써, 영원한 실존으로서의 잠재성을 수락하거나 거절한다. 우주 실체 중에서 너희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은 너희가 가진 정신 밖에 없으며, 혼--모론시아 자아--은 필사적 자아가 만들고 있는 일시적 결정들의 결과를 충실히 묘사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아래로는 전기화학적 장치 위에 조용히 위치하고 있고, 위로는 영-모론시아 에너지 체계에 정교하게 접촉되어 있다. 인간은, 이 두 체계 중 어떤 것도 그의 인생 속에서 완전하게 의식하지 못하며; 그러므로 그는, 그가 의식하는 것에 속하는, 정신 속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이 무엇을 파악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정신이 생존을 보증하는 어떤 것을 파악하고 싶어 하는 것이며; 정신이 어떤 것과 같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이 영 존재확인을 구성하는 어떤 것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식한다기보다는 우주 상승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다. 너희가 현재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보다는 다가오는 매일 매일과 그리고 영원성 속에서 너희가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11:1.6 (1217.1) 정신은 인간의 의지가 그 위에서 파멸의 불협화음을 연주하든지, 아니면 이 동일한 인간의 의지가 그 위에서 하나님 존재확인과 뒤따르는 영원한 생존의 아름다운 곡조를 연주할 수 있는 조화우주적인 악기이다. 결국, 사람에게 증여된 섭리사는 악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며 죄를 지을 수가 없지만, 그러나 필사자 정신은 실제적으로 비틀어져 있을 수 있고, 일그러져 있을 수 있으며, 그리고 사악하고 이기주의적인 인간의 의지의 죄 많은 음모들에 의하여 악하고 비열하게 되어 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정신은 하나님을 아는 인간 존재의 영으로 조명된 의지에 일치함으로써 고결하고 아름다우며 진실하고 선하게--정말로 훌륭한-- 만들어질 수도 있다.

111:1.7 (1217.2) 진화적인 정신은 조화우주적 지능성--전체적으로 기계화 되고 완전히 영성화된--의 두 극단(極端) 위에 스스로를 나타낼 때만이 전적으로 안정되며 신뢰할만하다. 순전히 기계적인 통제(統制)와 순수한 영 본성의 지능적 극단들 사이에는 안정성과 평정성이 인격 선택과 영의 자기 확인에 달려 있는, 진화하며 상승(上昇)하는 정신들의 많은 무리들이 개입한다.

111:1.8 (1217.3) 그러나 사람은 수동적으로, 노예처럼, 그의 의지를 섭리사에게 굴복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천부적인 필사자 정신의 욕구들과 충동들이 섭리사의 인도와 의식적으로 다를 때에는 능동적으로, 긍정적으로, 그리고 협동적으로 섭리사의 인도를 따르기로 결정한다. 섭리사들은, 조작하기는 하지만 사람의 의지에 반대하여 그의 정신을 지배하지는 않으며; 섭리사에게는 인간의 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 그리고 진화하는 인간 지능이라는 거의 제한이 없는 경기장 안에서 사고 조절과 성품 변형이라는 영적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이 애쓰는 동안 그들은 그것을 매우 존중하고 그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111:1.9 (1217.4) 정신이 너희가 가진 배라면, 섭리사는 너희의 조종사이고, 인간 의지는 선장이다. 필사자 선박의 주인은 상승하는 혼을 영원한 구원의 모론시아 항구로 안내하는 신성한 조종사를 신뢰하는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오직 이기심, 나태함, 그리고 범죄만이 사람의 의지로 하여금 그러한 사랑하는 조종사의 안내를 거부하게 할 수 있고 결국 거부된 자비의 함정과 포위된 죄의 바위 위에 필사자 생애가 파선되게 한다. 이 신실한 조종사는, 너희 동의에 따라, 시간의 장벽과 공간의 불리한 조건을 지나 신성한 정신의 바로 그 근원으로 그리고 그 위로, 심지어 섭리사들의 낙원 아버지께로 너희를 안전하게 옮겨 줄 것이다.

2. 혼의 본성

111:2.1 (1217.5) 조화우주적 지성의 정신 기능들 전반에 걸쳐서, 정신의 전체성이 지능적 기능의 부분들을 지배하고, 그것의 본질에 있어서는, 기능적으로 통일체이며; 그러므로 정신은 현명치 못한 행동들과 잘못 인도된 자아의 선택들에 의해 훼방되고 저지를 당할 때조차도 이러한 구조적인 통일체임을 증명하는 데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의 이 통일체는 의지의 존엄성과 상승(上昇)의 특권을 갖는 자아들과 관련되는 모든 차원들에서의 협조를 늘 추구한다.

111:2.2 (1217.6) 필사적 사람의 물질적 정신은 내주하는 사고 섭리사가 그 위에 영속적인 가치들과 신성한 의미들--궁극적인 운명과 영구적인 경력의 생존하는 혼, 즉 잠재적인 최종성취자--을 갖는 어떤 우주 성품이라는 영(靈) 무늬들을 바느질하는 모론시아 원단들을 걸어놓은 조화우주적 방직기계와 같다.

111:2.3 (1218.1) 인간의 인격체는 물질적 육신 속에서의 삶에 의해 기능적 관계 속에 함께 유지되는 정신 및 영과 동일시된다. 그러한 정신과 영의 이 기능발휘 관계는 정신과 영의 특성들 또는 속성들의 어떤 배합이 생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새롭고, 독창적이며, 그리고 잠재적으로 영원한 인내심을 갖는 독특한 우주 가치, 즉 이 생기게 한다.

111:2.4 (1218.2) 그러한 불멸의 혼이 진화적으로 창조되는 데에는 두 요소들이 아니라 세 요소들이 있다. 모론시아 인간 혼의 이 세 가지 선행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111:2.5 (1218.3) 1. 그것에 앞서고 그래서 영향을 미치는 인간 정신과 모든 조화우주적 영향들.

111:2.6 (1218.4) 2. 이 인간 정신에 내주하는 신성한 영 그리고 인간의 삶 속에 관련된 모든 영적 영향들 및 요소들과 함께 절대 영성(靈性)의 그러한 단편(斷片) 속에 타고난 모든 가능성들.

111:2.7 (1218.5) 3. 물질적 정신과 신성한 영 사이의 관계인데, 이것은 어떤 가치를 암시하며 그리고 그러한 연합에 기여하는 요소들에서 또는 그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 의미를 동반한다. 이 독특한 관계의 실체는 물질적이지도 않고 영적이지도 않으나 모론시아적이다. 그것이 혼이다.

111:2.8 (1218.6) 중도적(中途的) 피조물들은 사람의 이 진화하는 혼을, 낮거나 물질적인 정신 그리고 높거나 조화우주적인 정신에 대비(對比)하여, 중간-정신이라고 오랫동안 불러왔다. 이 중간-정신은 참으로 하나의 모론시아 현상인데, 왜냐하면 이것이 물질적 영역과 영적 영역 사이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론시아 진화의 잠재성은 정신의 두 우주적 충동들 안에 타고 나는데: 하나님을 알고 창조주의 신성(神性)을 획득하고자 하는 피조물의 유한 정신의 욕구와, 사람을 알고 그 피조물의 경험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조주의 무한 정신의 욕구이다.

111:2.9 (1218.7) 진화하는 불멸의 혼의 이 숭고한 처리사항은 인간 정신이 첫째로 인격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둘째로는 초동물적 실체들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며; 그것은 도덕적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도덕적 본성의 진화를 보장하는 조화우주적 사역의 초물질적 천부재능을 소유하는데, 그럼으로써 관련된 영적 사역들과의 그리고 내주하는 사고 섭리사와의 진실한 독창적(獨創的) 접촉이 달성된다.

111:2.10 (1218.8) 인간 정신의 그러한 밀착된 영성화의 필연적인 결과는, 모든 창조의 하나님의 실제적 단편(斷片)--신비 관찰자--의 전면통제 아래에 있는 그 우주의 영적 군대들과 접촉하면서 활동하는, 혼의 점진적인 탄생, 즉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못 견디는 인간 의지에 의하여 지배되는 보조 정신의 공동 자손이다. 그리하여 자아의 물질적 및 필사적 실체는 육체의 삶을 영위하는 기계장치의 일시적 한계들을 초월하며, 자아성질 연속성을 위한 진화하는 매개체 즉 모론시아 혼 및 불멸적 혼 안에서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신분을 달성한다.

3. 진화하는 혼

111:3.1 (1218.9) 필사자 정신의 실수들과 인간적 행위의 실책들은, 비록 피조물 의지의 동의에 따라 내주하는 섭리사에 의해 일단 그것이 시작된 후에는 그것들이 그러한 모론시아 현상을 금지할 수 없다 하더라도, 혼의 진화를 심히 연기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필사자의 죽음 이전에는 언제든지, 이 동일한 물질적 및 인간적 인간 의지가 그러한 선택을 무효로 하고 생존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는다. 심지어 생존한 후에도 그 상승하는 필사자는 영원한 생명을 거부할 수 있는 이 선택 특권을 여전히 가지며; 섭리사와 융합되기 이전에는 언제든지, 진화하며 상승하는 피조물이 낙원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섭리사와의 융합은 상승하는 그 필사자가 영원히 그리고 무제한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이다.

111:3.2 (1219.1) 육신 속에서 사는 동안, 진화하는 그 혼은 필사적 정신의 초물질적 결정들을 강화시킬 수 있게 된다. 혼은, 초물질적이기 때문에, 인간 경험의 물질적 차원 위에서 저절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 하위(下位)영적 혼은, 신격의 어떤 영 즉 섭리사와 같은 그러한 존재의 협조 없이는, 모론시아 차원 이상에서 작용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이 물질적 정신이 그러한 권한을 연합된 기능의 그러한 모론시아 혼에게 자유로이 그리고 기꺼이 위임할 때와 그러는 동안을 제외하고, 그 혼은 죽을 때까지 또는 필사자 정신과의 물질적 연합으로부터 그것을 분리하는 전환이 있을 때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생애 동안, 필사자 의지, 즉 결정-선택을 하는 인격체 능력은 물질적 정신 회로들 속에 거주하며; 이 자아는 지구상의 필사자 성장 진행에 따라, 그것의 아주 귀중한 선택의 능력과 함께, 떠오르는 모론시아-혼 실재와 점차적으로 동일시 되게 되며; 죽음 이후에 그리고 맨션 세계에서의 부활 이후에, 인간의 인격체는 모론시아 자아와 완전하게 동일시된다. 그래서 그 혼은 인격체 정체성의 미래 모론시아 운송수단의 태아(胎兒)와 같다.

111:3.3 (1219.2) 이 불멸의 혼은 처음에는 본성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모론시아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융합 가치의 참된 영 차원들을 향하여 신격의 영들, 대개는 피조물의 정신 속에 그러한 독창적 현상을 일으켰던 바로 그 우주적 아버지의 영과 함께 변함없이 올라가는 발전을 할 수용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111:3.4 (1219.3) 인간 정신과 신성한 섭리사 둘 다, 진화하는 혼의 현존하는 그리고 특이한 본성을 의식한다--섭리사는 전체적으로, 정신은 부분적으로. 그 혼은 그 자신의 진화적(進化的)인 성장에 비례하여, 정신과 섭리사 둘 다를 관련된 실체들로써 점점 더 의식하게 되어간다. 그 혼은 인간 정신과 신성한 영(靈) 둘 다의 특성들을 같이하지만 그러나 그의 의미들이 진실된 영 가치와 조화하기를 추구하는 정신 기능의 보살핌을 통하여 영 통제와 신성한 지배의 확대를 향해 끊임없이 진화(進化)한다.

111:3.5 (1219.4) 필사자 생애 즉 혼(魂)의 진화는 하나의 실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교육이다. 지존적 가치들의 생존을 믿는 신앙이 종교의 중심이며; 참된 종교 경험은 지존적인 가치들과 조화우주적 의미들이 우주적 실체의 실현으로써 합동하는데 있다.

111:3.6 (1219.5) 정신은 양, 실체, 의미들을 안다. 그러나 질(質)--가치들--은 느껴지는 것이다. 느끼는 것은 실체화하는 정신, 아는 것, 그리고 관련된 영의 공동 창작물이다.

111:3.7 (1219.6) 사람의 진화하는 혼이 하나님을-의식하는 가치-실현에 따라, 진리와 아름다움과 그리고 선함으로 퍼지게 되는 한에 있어서는, 그러한 결과물 존재는 파괴될 수 없게 되어 간다. 만약에 사람의 진화하는 혼 속에 구원될만한 영원한 가치가 없으면, 필사자 실존은 의미가 없으며, 삶 그 자체는 하나의 비극적인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은 영원한 진리이다: 너희가 시간 속에서 시작한 것은 틀림없이 영원 속에서 끝을 맺게 될 것이다--만약 끝내야 할 가치가 있다면.

4. 내적 생활

111:4.1 (1219.7) 인식은 외부 세계로부터 개인의 기억 양식들 안으로 받아들인 감각적 느낌들을 맞추어 가는 지능적인 과정이다. 이해는 이 인식된 감각적 느낌들과 그들에 관련된 기억 양식들이 원칙들의 역동적인 연락망 안으로 합쳐지고 조직되게 된 것을 의미한다.

111:4.2 (1220.1) 의미들은 인식과 이해의 배합으로부터 파생된다. 의미들은 전적으로 감각적인 또는 물질적인 세계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들과 가치들은 오직 인간 경험의 내적(內的) 또는 초물질적 영역들 안에서만 감지된다.

111:4.3 (1220.2) 참된 문명의 진보들은 모두 인류의 이러한 내적 세계 속에서 탄생된다. 참으로 독창적인 것은 오직 내적 생활뿐이다. 어떤 세대든지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흥미와 에너지를 감각 또는 외적(外的) 세계의 유물론적인 추구에 쏟을 때에는 문명이 거의 진보할 수 없다.

111:4.4 (1220.3)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는 일련의 서로 다른 가치들을 갖는다. 어떤 문명이든지, 그 젊은이들 중 4분의 3이 유물론적(唯物論的) 직업에 종사하고 외적 세계의 감각적인 활동들의 추구에 자신들을 몰두하게 할 때에는 위태롭다. 젊은이들이 윤리학, 사회학, 우생학, 철학, 순수 예술, 종교 그리고 우주론 등에 흥미를 두지 않을 때 문명은 위험에 봉착한다.

111:4.5 (1220.4) 그것이 인간 경험의 영적 세계에 충돌함에 따라 보다 더 낫고 보다 더 영구적인 문명의 건축물에 바쳐질 효과적인 지배적 모형들과 관련된 그 높은 개념들을 너희는 오직 초의식 정신의 높은 차원들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인격체는 본래적으로 창조적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직 개인의 내적 생활 속에서만 그렇게 작용한다.

111:4.6 (1220.5) 눈(雪)의 결정체들은 항상 6각형의 형태를 갖지만 어떤 것도 서로 똑같지 않다. 자녀들이 어떤 유형들을 이루기는 하지만 둘이 똑같은 경우는 전혀 없으며, 쌍둥이인 경우일지라도 그러하다. 인격체도 어떤 유형들을 따르기는 하지만 항상 독특하다.

111:4.7 (1220.6) 행복과 즐거움은 내적 생활 속에서 기원된다. 너희는 혼자의 힘으로 진정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없다. 외로운 삶은 행복에 치명적이다. 심지어 가족이나 국가들조차도 그들이 그것을 서로 나눌 때 인생을 더욱 즐기게 된다.

111:4.8 (1220.7) 너희는 외적 세계--환경--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너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내적 세계의 창조성인데, 왜냐하면 이전에 인과의 법칙에 구속되었던 상태로부터 너희의 인격체가 너무도 큰 자유를 그곳에서 얻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의지의 제한된 주권이 인격체와 관련되어 있다.

111:4.9 (1220.8) 사람의 이 내적 생활이 진실로 창조적이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는 이 창조성이 자발적이고 전혀 우연한 것이 되든지 아니면 통제되고, 지시되고, 구조적인 것이 되든지에 관해서 선택의 의무가 주어져 있다. 그것이 작용하는 무대 위에 선입관, 미움, 두려움, 분노, 복수심, 편협한 신앙들로 이미 가득 차 있다면 창조적인 상상력이 어떻게 훌륭한 자녀들을 출산할 수 있겠는가?

111:4.10 (1220.9) 생각들은 외적 세계의 충동에서 기인하지만, 이상들은 오직 내적 세계의 창조적 영역들 안에서만 탄생된다. 오늘날 세계의 국가들이 많은 관념들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지시되고 있지만, 그들은 이상(理想)들에 있어서는 매우 가난하다. 그것이 바로 가난, 이혼, 전쟁, 종족간의 증오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111:4.11 (1220.10) 문제는 바로: 만일 자유의지적인 사람이 그 내적 사람 속에 창조성의 능력을 타고난다면, 자유의지적 창조성이 자유의지적 파괴 능력의 가능성도 포함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성이 파괴성으로 바뀔 때에는, 너희들이 죄와 악--억압, 전쟁, 그리고 파괴--의 참상에 직면한다. 악은 분열을 획책하고 종국적 파괴에 이르게 하는 창조성의 치우침이다. 모든 대립은 그것이 내적 생활의 창조적 기능을 제지한다는 점에서 악하다--그것은 인격체 안에서 일어나는 내란의 한 종류이다

111:4.12 (1221.1) 내적인 창조성은 인격체 종합과 자아성질 통합을 통하여 성품이 고상하게 되도록 기여한다. 영원히 참된 것은: 과거는 바뀔 수 없으며; 오직 미래만이 내적 자아의 현재적 창조성의 사역에 의하여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5. 선택의 신성화

111:5.1 (1221.2)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내적 생활을 하나님--그러한 피조물 생활 속에 내적인 의미-가치를 가능하게 하신 바로 그 하나님--과 기꺼이 공유하겠다는 표현에 불과하다. 공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신성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영원한 아들 그리고 무한한 영과 공유하시며, 그들은 모든 것들을 그 우주들의 신성한 아들들 및 영(靈) 들과 차례로 공유하신다.

111:5.2 (1221.3)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완전성에 이르는 열쇠이며;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 생존의 비결이고 생존 속에서 완성에 이르는 비결이다.

111:5.3 (1221.4) 필사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살며, 그래서 하나님도 필사자들 안에서 사시기로 작정하셨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그에게 맡기듯이, 그는--그리고 먼저--그 자신의 한 부분을 사람들과 함께 있도록 맡기셨으며; 사람들 속에 살고, 인간의 의지에 따라 사람들 속에 내주하도록 동의해 오셨다.

111:5.4 (1221.5) 이 삶 속에서의 평화, 죽음에서의 생존, 다음 단계 삶 속에서의 완전성, 영원 속에서의 봉사--이런 모든 것들은 피조물 인격체가 피조물 의지를 아버지의 뜻에 동의--선택-- 하자마자 (영 속에서) 성취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이미 그 자신의 단편(斷片)이 피조물 인격체의 의지에 지배되도록 하는 선택을 하셨다.

111:5.5 (1221.6) 그러한 어떤 피조물의 선택은 의지(意志)의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의지의 헌신, 의지의 확대, 의지의 찬미, 의지의 완성이며;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피조물의 의지를 현세적 의미의 차원으로부터 피조물 아들의 인격체가 영 아버지의 인격체와 친교하는 보다 높은 신분으로 올려준다.

111:5.6 (1221.7) 피조 아들이 낙원에서 하나님의 사실적인 현존 앞에 서기 전에 비록 한 세대가 지나가야만 할지라도, 아버지의 뜻에 대한 이 선택은 필사적 사람의 영 아버지에 대한 영적 발견이다. 이 선택은 피조물 의지의 부인(否認)에 있다기보다는--“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오히려 피조물의 긍정적인 단언에 있다--“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나의 뜻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 선택이 이루어지고 나면, 하나님을-선택한 그 아들은 곧 내주하는 하나님 단편(斷片)과의 내적 합동(융합)을 발견하며, 동시에 이 동일한 완성하는 아들은 사람의 인격체와 그의 조물주의 인격체 즉 그들의 창조적 속성들이 스스로 작정된 표현의 상호관계--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의 또 다른 영원한 동반자적 관계의 탄생-- 속에서 영원히 연합된 두 인격체들이 친교하는 경배 속에서 지존적 인격체의 만족을 발견할 것이다.

6. 인간의 모순

111:6.1 (1221.8) 필사적 사람의 현세적 고난들 중 다수는 조화우주에 대한 그의 이중적 관계로부터 파생된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그가 자연 속에 존재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초월할 수 있다. 사람은 유한하지만, 그러나 그의 속에는 무한의 불꽃이 내주한다. 그러한 이중적 상황이 악에게 가능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많은 불확실성과 적지 않은 불안을 내포하는 많은 사회적 및 도덕적 상황들을 발생시킨다.

111:6.2 (1222.1) 자연 정복의 달성과 자기 자아의 초월을 필요로 하는 용기는 자기-자만심의 유혹에 쓰러질 수도 있는 그런 용기이다. 자아를 초월할 수 있는 필사자는 자기 자신의 자아-의식을 신격화하는 유혹에 굴복할 수도 있다. 필사자의 진퇴양난은 그가 자연에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독특한 자유--영적 선택과 행동의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중적 사실에서 기인한다. 사람은 물질적인 차원들에서 자연에 예속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반면에 영적인 차원에서는 자연과 모든 일시적이며 유한적인 것들에 대하여 승리를 얻는다. 그러한 모순은 유혹, 잠재적 악, 결정상의 실책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자아가 교만해지고 오만해질 때, 죄가 더욱 자라갈 것이다.

111:6.3 (1222.2) 죄의 문제는 유한한 세계 안에 스스로-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유한하다는 사실은 악하거나 죄스러운 것이 아니다. 유한 세계는 무한한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으며--그것은 그의 신성한 아들들의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이 하다. 악과 죄는 유한한 것의 오용, 왜곡으로부터 기인한다.

111:6.4 (1222.3) 영이 정신을 지배하며; 그래서 정신이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은 물리적 영역들의 인과법칙에 해당하는 수학적 차원 속에 타고난 변형적 가능성들에 대한 자체 지성 조작을 통하여서만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다. 피조물 정신은 천성적으로 에너지를 통제할 수 없으며; 그것은 신격의 특권이다. 그러나 피조물 정신은 물리적 우주의 에너지 비밀들을 정복하는 한도 내에서만 에너지를 조작할 수 있다.

111:6.5 (1222.4) 사람이 자기 자신 또는 환경을 잃지 않고 물리적 실체를 변경하고자 할 때, 그는 통제하는 물질과 관리하는 에너지의 수단들과 방법들을 발견해 온 그 정도까지 성공한다. 도움을 받지 않는 정신은 어떤 물질이든지 그 자신의 물리적 장치를 지키도록 영향을 주는 데에 중요한데, 그것과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육신 장치의 지성적 사용을 통하여, 정신은 다른 장치들, 심지어 에너지 관계들 및 삶의 관계들까지도 창출할 수 있는데,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이 정신이 점점 더 통제하고 심지어 우주 안에서의 물리적인 차원을 지배할 수도 있다.

111:6.6 (1222.5) 과학은 사실들의 근원이며, 정신은 사실들 없이 작용할 수 없다. 그것들은 지혜를 건축함에 있어서 인생 경험에 의해 함께 접착되는 벽돌과 같다. 사람은 사실들 없이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으며, 사랑이 없이도 하나님의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람은 그가 신성한 법칙과 신성한 사랑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의 진화하는 조화우주적 사상(思想) 속에서 이것들을 경험적으로 통합하기 전에는, 무한한 균형, 숭고한 조화, 제1 근원 및 중심의 포괄적인 본성의 정교한 반복 등에 대하여 결코 감사하지 못한다.

111:6.7 (1222.6) 물질적 지식의 확장은 생각들의 의미들과 이상들의 가치에 대한 훨씬 더 지능적인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 존재는 그의 내적 경험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는 그가 개인적으로 발견한 진리를 일상생활의 냉혹한 실질적 요구들에 적용하기 위하여 사실들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111:6.8 (1222.7) 필사적 사람이 일시적이고 유한한 모든 것들을 완전히 초월하는 영적인 능력을 소유하는 반면 자연에 묶여 탈출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가 불확실성에 의해 시달릴 수밖에 없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오직 종교적인 신뢰--살아있는 신앙--만이 그러한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 사람을 지탱해 줄 수 있다.

111:6.9 (1223.1) 사람의 인간적인 본성을 에워싸고 있고 그의 영적 성실성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위험들 중에서, 자만심이 가장 위험하다. 용기는 씩씩함을 주지만, 자만심은 허영심을 주며 자멸적(自滅的)이다. 합리적인 자기-신뢰는 비탄에 잠기지 않게 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동물 세계로부터 그를 구별해주는 것이다.

111:6.10 (1223.2) 자만심은 개인, 단체, 인종, 국가를 막론하고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기만적이며, 도취시키며, 죄를-잉태케 하는 것이다. “자만심은 멸망의 선봉(先鋒)이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틀림이 없다.

7. 섭리사의 문제

111:7.1 (1223.3) 안전성과 함께 하는 불확실성은 낙원 모험여행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이다--시간과 정신 속의 불확실성, 펼쳐지는 낙원 상승의 사건들에 관한 불확실성; 영 속에서 그리고 영원성 속에서의 안전성, 우주적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신성한 연민 속에서 피조물 아들의 무조건적인 신뢰로부터 오는 안전성; 경험하지 못한 우주 시민으로서의 불확실성; 전적으로-강력하시고, 전적으로-지혜로우시며, 만유를-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우주 맨션들 안에서 상승하는 아들로서의 안전성.

111:7.2 (1223.4) 너희 혼을 향한 섭리사의 충실한 부름의 어렴풋한 반사음에 주의하라고 너희에게 충고해도 되겠는가? 내주하는 섭리사는 시간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너희 생애를 중지시킬 수 없고 실질적으로 바꿀 수조차 없으며; 섭리사는 너희가 함정이 많은 이 세계를 통하여 보내는 인생의 고난들을 줄여줄 수도 없다. 그 신성한 내주자는 너희 행성에 살면서 너희들이 인생의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오직 인내심으로 참아낼 뿐이며; 그러나 너희는 만일 너희가 그 용맹스런 섭리사로 하여금 너희와 함께 그리고 너희를 위하여 싸우도록 허용하기만 한다면--너희가 일하면서 근심함으로써, 싸우면서 근심함으로써-- 너희가 그렇게 할 수 있다. 만일 너희가 섭리사로 하여금 실제적 동기, 최종적 목표, 그리고 너희의 현 물질계의 평범한 문제들과의 이 모든 어렵고 힘든 투쟁의 영원한 목적을 끊임없이 가져오도록 허용한다면, 너희는 위안을 얻고 영감을 얻을 것이다.

111:7.3 (1223.5) 이 모든 불굴의 물질적 노력을 하는 영적 상대편을 너희에게 보여주는 과제를 수행하는 섭리사를 너희는 왜 돕지 않는가? 너희는 왜 섭리사로 하여금 너희가 피조 실존으로서의 일시적 어려움들과 씨름하는 동안 조화우주적 능력의 영적 진리들로 너희를 강하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너희가 당혹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우주적 삶의 영원한 전망에 대한 확실한 통찰력으로 너희를 격려하는 그 하늘의 협조자에게 너희는 왜 용기를 주지 못하는가? 너희 인생 여정을 에워싼 불확실성의 미로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시간의 불리한 조건 한복판에서 수고하는 동안 우주적 관점에서 영감을 받고 밝히 알게 되는 것을 너희는 왜 거절하는가? 비록 너희 발이 이 땅에서의 노력으로 점철된 물질적 통로를 걷지 않을 수 없을지라도, 섭리사로 하여금 너희 생각을 영성화 시키도록 왜 허용하지 않는가?

111:7.4 (1223.6) 유란시아의 비교적 더 고상한 인간 종족들이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으며; 그들은 여러 인종들과 서로 다른 기원을 갖는 혈통으로 섞여 있다. 이러한 혼합적인 본성은 관찰자들이 일생동안 효과적으로 일하는 데에 엄청난 어려움을 제공하며 섭리사와 죽음 이후의 안내하는 스랍천사 둘 다에게 확실히 문제들을 더한다. 나는 살빙톤에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운명의 안내자가 그녀의 필사적 피험자에게 사역함에 있어서의 어려움들에 대하여 정상을 참작하라는 공식 성명서를 제시하는 것을 들었다. 이 스랍천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111:7.5 (1223.7) “나의 어려움의 대부분은 나의 피험자가 두 가지 본성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데에서 기인하였으며; 동물적 나태함에 의해 방해되는 열망의 충동; 열등한 인종의 본능에 의해 방해되는 우수한 민족들의 이상(理想)들; 원시적인 유전형질의 충동에 의해 상쇄되는 탁월한 정신의 고상한 목적들; 시간에 속하는 피조물의 근시안적인 속성에 의하여 훼방 받는 관찰자의 멀리-내다보는 장거리 전망; 물질적인 본성의 욕구들과 갈망들에 의해 변경되고 있는 상승(上昇)하는 존재의 진보적 계획들; 진화하는 인종의 화학-에너지 지시들에 의해 삭제된 우주 지성의 섬광들; 동물적 감정에 의해 방해되는 천사들의 충동; 본능적 성향들에 의해 소멸되는 지능의 단련; 그 인종의 누적된 경향들에 의해 방해받은 개인의 경험; 최악의 경향에 의해 가리워지는 최선의 목적들; 보편성을 중대히 여김으로써 중화되는 천재성의 약동; 부정한 것의 타성으로 인하여 지연된 선한 것들의 진보; 악의 현존에 의해 손상된 아름다운 것들의 예술; 질병의 쇠약으로 인해 중화된 건강의 회복력; 두려움이라는 독약들로 오염된 신앙의 원천; 슬픔의 물에 의해 쓴 맛을 갖게 된 기쁨의 샘; 현실화의 비통함에 의해 환멸을 느끼는 예견된 기쁨; 죽음의 슬픔에 의해 언제든지 위협받는 삶의 즐거움. 그러한 행성에서의 그러한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섭리사의 언제든지-현존하는 재촉과 도움으로 인하여, 이 혼은 공정한 정도의 행복과 성공을 성취하였으며, 심지어 지금도 모론시아의 재판정을 향해 상승하고 있다.”

111:7.6 (1224.1) [오르본톤단독 사자에 의해 제시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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