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랜시아 책 - 제87편 : 혼령 종파들

(USGNY[CM]-KOR-000-1996-3)

유랜시아 책   

부 III: 유랜시아의 역사

제87편 : 혼령 종파들



제87편 : 혼령 종파들

87:0.1 (958.1) 혼령(魂靈) 종파(宗派)는 불운의 위험을 상쇄시키는 것으로서 진화되었으며; 그것의 원시적인 종교적 관례들은 불운에 대한 염려와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에서 발생되었다. 이러한 초창기 종교들 중에서 신격에 대한 인식 또는 초인적 존재에 대한 경의와 관계가 깊은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것들의 제례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즉 혼령들을 회피하기 위해, 쫓아버리기 위해, 또는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 고안되었다. 혼령 종파는 재난의 대비에 불과하였으며; 더 고차원적인 그리고 장래의 보답을 위한 투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87:0.2 (958.2) 사람은 혼령 종파와 오랫동안 쓰라린 투쟁을 해왔다. 인간 역사 중 혼령-영에 대한 두려움에 인간이 비굴한 노예가 되었던 이 모습보다 더 유감스러운 일을 야기하도록 예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바로 이 두려움의 탄생과 함께, 인류는 종교적 진화의 향상을 시작하였다. 인간의 상상력이 자아라는 해안선으로부터 떠났고 참된 신격, 즉 참된 하나님 개념에 도달할 때까지 닻을 내릴 곳을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다.

1. 혼령에 대한 두려움

87:1.1 (958.3) 죽음을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육신적 몸으로부터의 다른 혼령의 해방을 의미하였기 때문이었다. 고대인들은 죽음을 예방하기 위하여, 즉 새로운 혼령과 투쟁하게 되는 불행을 회피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들은 혼령을 설득하여 죽음의 현장을 떠나도록 만들려고, 즉 죽은 자들의 나라를 향해 여행하도록 만들려고 항상 애를 썼다. 혼령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심한 기간은, 죽는 순간에 그것이 밖으로 나온 때로부터, 혼령의 고향 나라, 즉 희미하고도 원시적인 개념의 가짜 천국으로 나중에 떠나가게 되는 때까지의, 상상에 의한 과도기 기간이었다.

87:1.2 (958.4) 미개인들은 비록 혼령들에게 초자연적 힘이 있다고 믿기는 하였지만, 초자연적 지성을 갖는다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 혼령들을 속이고 기만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여러 가지 속임수들과 술책들이 이용되었으며; 문명화된 사람도 충성심을 겉으로 보임으로써 심지어 전지(全知)하신 신격도 어느 정도 속일 수 있다는 희망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87:1.3 (958.5) 원시인들이 질병을 두려워한 것은, 그것이 죽음의 전조인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부족의 주술사가 고통 받는 사람을 고치지 못하면, 그 환자는 대개 가족들이 기거하는 오두막으로부터 옮겨져, 격리된 채로 죽을 수 있도록 보다 작은 오두막 또는 야외에 눕혀졌다. 사람이 집안에서 죽으면 대개 그 집을 없애버리거나 항상 버려진 상태로 두었고,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초창기 사람은 실속 있는 주거용 건물을 짓지 못하였다. 또한 그것은 영구적인 마을들과 도시들을 세우지 못하도록 작용하였다.

87:1.4 (958.6) 미개인들은 자기 씨족 중에서 누가 죽으면 밤을 지새우며 앉아서 이야기하였으며; 그들은 시체 근처에서 잠이 들면 자기들도 역시 죽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시체로부터의 전염병이 죽은 자에 대한 두려움을 구체화시켰고, 모든 민족들은 시체와 접촉한 사람을 정화(淨化)시키도록 고안된 복잡한 정결 예식들을 한 때 채택했었다. 고대인들은 시체를 향하여 빛이 비춰져야만 한다고 믿었으며; 시체를 어두운 곳에 방치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20세기에 이르러서도, 시체 안치실에 여전히 촛불을 켜놓고 있으며, 사람들이 시체를 지킨다. 소위 문명화된 사람도 생명에 대한 자신의 철학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고 있다.

87:1.5 (959.1) 그러나 이 모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혼령을 속이려 하고 있다. 죽은 자의 오두막을 부수지 않으면, 시체를 내갈 때, 문을 통하지 않고 벽에 구멍을 내어 운반한다. 이 방책들은 혼령을 혼동시키기 위해, 그것이 머물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것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취해졌다. 또한 조객(弔客)들은 장례식에서 돌아올 때, 그 혼령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다른 길을 이용하였다. 혼령이 무덤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방지책으로, 돌아오는 길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술책들이 사용되었다. 혼령을 속이기 위해 남자와 여자가 옷을 서로 바꾸어 입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애곡하는 관습은 유족들을 변장시키기 위해; 나중에는 죽은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함으로써 그 혼령을 달래기 위해 고안되었다.

2. 혼령을 진정시킴

87:2.1 (959.2) 종교에 있어서, 혼령을 진정시키는 소극적 강령(綱領)은, 영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영에게 애원하는 적극적 강령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다. 인간의 경배에 있어서 최초의 행위들은 경의적이기보다는 방어적인 현상들이었다. 현대인에게는 화재를 막는 것이 현명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미개인들은 혼령에 의한 불운을 막는 것이 더 훌륭한 지혜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보호를 확실하게 하려는 노력이 혼령 종파의 기법들과 제례식들을 제정하였다.

87:2.2 (959.3) 혼령의 큰 욕구를 신속하게 “가라앉힘”으로써 죽은 자들의 나라로 조용히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한 때 지배적이었다. 그 혼령을 진정시키는 제례식에 있어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어떤 태만한 행동이나 실책이든지, 그것이 혼령의 나라로 가는 것을 분명히 지연시킨다고 여겼다. 이런 것이 그 혼령을 불쾌하게 만든다고 믿었고, 화난 혼령이 재난과 불운 그리고 불행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다.

87:2.3 (959.4) 장례 예배는 혼령이 된 혼으로 하여금 미래의 고향을 향해 떠나도록 설득하려는 사람의 노력에서 기원되었고, 장례식 설교는 원래 새로운 그 혼령이 어떻게 그곳으로 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계획되었다. 그 혼령의 여행을 위해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는 것이 관습이었는데, 이러한 물건들은 무덤 속 또는 가까운 곳에 놓여졌다. 미개인들은 “혼령을 달래는 데”--무덤 근처로부터 멀리 떠나기까지-- 3일 내지 1년이 걸린다고 믿었다. 에스키모인들은 혼이 시체 주변에서 3일 동안 머문다고 여전히 믿는다.

87:2.4 (959.5) 사람이 죽은 후에 침묵을 지키거나 애곡하는 것은, 혼령으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올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준수되었다. 자기-고문--상처들--은 일반적인 애곡의 형태였다. 진보적인 많은 선생들은 이러한 행위를 없애고자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금식을 비롯한 다른 형태들의 자아-부정이 혼령들을 즐겁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는데, 그 혼령들이 죽은 자들의 나라로 실제적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숨어있는 과도기 기간 동안,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즐긴다고 생각하였다.

87:2.5 (959.6)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또는 자주 애곡하는 일은 문명의 발전에 큰 장애 요소들 중 하나였다. 여러 주간 그리고 심지어 매 년 여러 달의 기간이, 정말로 이 비생산적이고 쓸데없는 애곡하는 일에 소모되었다. 장례식 행사를 위해 전문적으로 애곡하는 사람들이 고용되었다는 사실은, 그 애곡이 제례적인 것이었고 슬픔의 징표가 아니었음을 설명한다. 근대인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리고 사별(死別) 때문에 애곡하기도 하지만, 고대의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

87:2.6 (959.7) 죽은 사람의 이름은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사실, 그 이름들이 언어로부터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러한 이름들은 금기사항이 되었고, 이런 식으로 해서 언어들은 빈번하게 약화되었다. 이것은 결국 “사람이 결코 언급하지 않는 이름 또는 날”과 같은, 상징적인 말과 비유적인 표현을 배가(倍加) 시키게 되었다.

87:2.7 (960.1) 고대인들은 혼령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에 너무 열심이었으므로 삶 속에서 희망하였던 모든 것을 그 값으로 바쳤다. 혼령들이 아내들과 종들을 원한다고 여겼으며; 어떤 부자 미개인은 자기가 죽을 때 한 명 이상의 노예 아내가 산채로 함께 매장될 것을 요구하였다. 나중에는 과부가 자기 남편의 무덤에서 자살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아이가 죽으면, 어른 혼령이 그 어린 혼령과 동행하면서 보살피기 위해, 그 어머니나 숙모 또는 할머니가 목매어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발적이었으며; 그들은 정말로 관습을 위반하여 계속 살 수도 있었지만, 원시인들이 누렸던 기쁨이 거의 없는 그러한 생애를 혼령의 저주에 대한 두려움이 박탈하였다.

87:2.8 (960.2) 족장이 죽으면 많은 것들을 딸려 보내는 것이 관례였으며; 주인이 죽으면 그 노예들을 죽여서 혼령의 나라에서 그를 섬길 수 있게 하고자 하였다. 보르네오 사람들은 아직도 안내원 반려자를 지명하고 있으며; 노예 한 사람을 죽여서 죽은 주인과 함께 혼령 여행에 동반하게 한다. 죽임을 당한 혼령들이 살인한 자들의 혼령들을 노예로 삼고 싶어 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관념이 사람들로 하여금 머리를 잘라오게 만들었다.

87:2.9 (960.3) 혼령들이 음식 냄새를 좋아할 것이라고 믿었으며; 장례식 잔치에서 음식이 제공되는 일이 한 때 보편적으로 행해졌다. 음식을 먹기 전의 기도에 해당하는 원시적 방법은 마술적인 문구를 중얼거리면서 음식 한 조각을 불에 던져 넣는 것이었는데, 영들을 달래고자 하는 목적에서였다.

87:2.10 (960.4) 죽은 자들이 자기가 살았을 때 소유하였던 도구들과 무기들의 혼령들을 이용한다고 여겨졌다. 어떤 물건을 깨뜨리는 것은 “그것을 죽이는” 것이었고, 그렇게 혼령을 풀어주어 혼령 나라 봉사로 옮겨지게 하였다. 또한 재물을 태우거나 묻음으로써 희생제물로 바치기도 하였다. 고대에는 장례식에서의 낭비가 심하였다. 후대 종족들은 죽은 자를 위한 희생제물로, 실제적 물건이나 사람들 대신 종이로 모형들을 만들고 그림을 이용하였다. 재물을 땅에 묻거나 태우는 대신 친족에게 물려주게 되었을 때 문명이 크게 진보되었다. 이로쿼이족 인디언들은 장례식에서의 낭비를 많이 개선시켰다. 그리고 이 재산 보존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북부 지역의 적색인들 중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현대인은 혼령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습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현세적인 많은 재물들이 아직도 장례 제례식들과 죽은 자에 대한 예식들에 소모되고 있다.

3. 조상 숭배

87:3.1 (960.5) 혼령 종파의 진보에 따라 조상 숭배가 필연적으로 발생되었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혼령과 보다 고차원적인 영들, 즉 진화하는 신(神)들 사이를 연결시켜 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신들은 단순히 죽은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87:3.2 (960.6) 조상 숭배는 원래 경배보다는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믿음들은 혼령에 대한 두려움과 숭배를 더욱 퍼뜨리는 일에 확실히 기여하였다. 초창기 조상-혼령 종파들은 하품할 때 해로운 혼령이 몸 속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87:3.3 (960.7) 자녀들을 양자로 삼는 관습은, 죽은 후 그 혼의 평강과 진보를 위해 누군가가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미개인들은 자기 친구들의 혼령들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았고, 죽은 후의 자기 혼령의 안전한 행동을 위한 계획에 자기 여가 시간을 투자하였다.

87:3.4 (960.8) 대부분의 부족들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전체-혼령들에 대한 축제를 시행하였다. 로마인들은 12가지 혼령 축제들을 행하였고 매 년 예식들을 올렸다. 한 해의 반 정도는 이러한 고대의 종파들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예식에 바쳐졌다. 어떤 로마 황제는 축제에 바쳐지는 날들을 한 해에 135일로 줄임으로써 이러한 풍습들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87:3.5 (961.1) 혼령 종파는 계속 진화되었다. 혼령들이 불완전한 상태로부터 보다 고차원적 단계의 실존으로 옮아간다고 상상되었던 것처럼, 그 종파는 결국 영들에 대한 숭배로 그리고 심지어 신들에 대한 숭배로 그렇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보다 진보된 영들에 대한 다양한 믿음들에는 상관없이, 모든 부족들과 종족들이 한 때 혼령을 믿었었다.

4. 선한 영과 악한 영의 혼령들

87:4.1 (961.2) 혼령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세계적 종교의 근원이었으며; 여러 시대에 걸쳐서 많은 부족들이 같은 종류의 혼령들에 대한 옛 믿음을 고수하였다. 그들은 혼령이 즐거울 때 사람에게 행운이 따라오고 혼령이 화날 때 불운이 임한다고 가르쳤다.

87:4.2 (961.3) 혼령에 대한 두려움의 종파(宗派)가 확장되자, 보다 고차원적인 유형의 영들, 즉 어떤 개인적인 인간과도 명확하게 동일시되지 않는 영들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다. 그들은 혼령 나라의 영역으로부터 진보하여 보다 고차원적인 영의 나라로 졸업한 또는 영광을 얻은 혼령들이었다.

87:4.3 (961.4) 두 종류의 영(靈) 혼령들에 대한 개념은 속도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전 세계적으로 진보를 이룩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이중적 심령술은 부족에서 부족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었으며; 전 세계에 걸쳐 독립적으로 발생되었다. 확장하는 진화적 정신에게 영향을 미침에 있어서, 어떤 관념의 능력은 그것의 실체 또는 정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신속하고 단순한 적용의 생생함과 보편성에 있다.

87:4.4 (961.5) 훨씬 나중에 사람의 상상력은 선한 초자연적 작용과 악한 초자연적 작용 둘 다의 개념을 마음에 그리게 되었는데; 어떤 혼령들은 선한 영들의 수준으로 전혀 진화하지 못하였다. 혼령을 두려워하는 초창기의 단일 영 체계는 점차 이중적 영 체계, 즉 이 세상 직무들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진화하였다. 마침내 행운과 불운은 그 각각을 통제하는 존재들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두 계급들 중 불운을 가져오는 쪽이 더 활동적이고 더 많다고 여겨졌다.

87:4.5 (961.6)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에 대한 교리가 최종적으로 성숙되자, 모든 종교적 믿음들이 가장 널리 퍼지게 되고 계속 유지되게 하였다. 이 이원론(二元論)은 위대한 종교-철학적 진보를 대변하였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들의 행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일관된 초인간적 존재들에 대해 동시적으로 믿는 한편, 행운과 불운 모두를 사람이 설명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들은 선한 쪽이나 악한 쪽으로 분류될 수 있었으며; 가장 원시적인 종교들의 단일 영 체계의 초창기 혼령들이 상상되어 왔던 것과는 달리, 완전하게 변덕스러운 존재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사람은 마침내 행태에 있어서 모순이 없는 초인간적 힘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은 종교 진화의 전체 역사 속에서 그리고 인간 철학의 확장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진리에 대한 발견들 중 하나였다.

87:4.6 (961.7) 어쨌든, 진화적 종교는 이중적인 심령술의 개념에 대한 심한 대가(代價)를 지불하였다. 인간의 초창기 철학은, 오직 두 가지 종류, 즉 하나는 선하고 다른 하나는 악한 영들을 가정(假定)함으로써만 현세적인 행운의 변화와 영의 불변성을 조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이 인간으로 하여금 운수의 변화무쌍함과 변하지 않는 초인간적 힘들에 대한 개념을 조화시킬 수 있게 하였는데, 이러한 교리는 그 후로 계속 종교가들로 하여금 조화우주의 통일성을 잘 깨닫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진화적인 종교의 신(神)들은 대개 어두움의 권세들에 의해 대립되었다.

87:4.7 (962.1) 이 모든 것의 비극은, 이 관념들이 사람의 원시적 정신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 때, 악하거나 조화되지 않는 영들이 어느 세계에도 정말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있다. 그러한 불행한 상황은 캘리개스챠의 반역 이후까지 전개되지 않았고 오직 성령강림절까지만 지속되었다. 조화우주적 협조들을 이루는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은, 심지어 20세기에 이르러서도, 인간의 철학 속에서 매우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종교들 대부분은 신흥 혼령 종파들의 오래 전의 이 문화적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5. 진보하는 혼령 종파

87:5.1 (962.2) 원시인은 영들과 혼령들이 거의 무제한적 권리를 갖는 반면 어떤 의무도 갖지 않는 것으로 여겼으며; 영들은 사람이 여러 가지 의무들을 갖지만 권리는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여겨졌다. 사람은 자신의 영적 의무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계속 실패할 때 영들에 의해 무시당한다고 믿었다. 혼령들이 인간의 관심사들에 간섭하지 않는 대가로 계속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한다는 것이 인류의 일반적 믿음이었으며, 최소한의 불운이 혼령의 활동들에 전가되었다. 초창기 인간들은 신들에게 당연히 바쳐야 할 존경을 빠뜨리는 것에 대해 너무나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알려진 모든 영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친 후에는, 완전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알려지지 않은 신들”에게도 다른 희생제물을 바쳤다.

87:5.2 (962.3) 그리고 이제 단순한 혼령 종파 다음에는, 보다 진보되고 비교적 복잡한 영-혼령 종파의 풍습, 즉 인간의 원시적 상상력 속에서 진화됨에 따른 보다 고차원적인 영들에 대한 예배와 경배가 생겨났다. 종교적 예식절차는 영의 진화와 진보에 보조를 맞추어야만 한다. 확대된 종파는 초자연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과 관련되어 실행되는 자아-유지, 즉 영 환경에 대한 자아-조정의 기술에 불과하다. 산업적이고 군사적(軍事的)인 조직체들은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환경들에 대한 조정들이다. 그리고 양성(兩性)의 요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결혼이 발생되었듯이, 종교적인 조직체는 보다 고차원적인 영 힘들과 영적인 존재들을 믿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발전하였다. 종교는 우연한 신비적 사건을 향한 사람의 환상에 대한 조정을 의미한다. 영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경배는 불운에 대한 대비책, 즉 행운을 위한 수단들로써 채택되었다.

87:5.3 (962.4) 미개인들은, 선한 영들은 자기들의 일을 하면서 인간 존재들에게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유쾌한 기분을 유지시켜야만 하는 존재는 악한 혼령들과 영들이었다. 따라서, 원시적 민족들은 그들의 인자한 영들보다 심술궂은 혼령들에게 더욱 관심을 쏟았다.

87:5.4 (962.5) 인간의 성공이 특별히 악한 영들의 질투심을 자극한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의 보복 방법은 인간 매개체를 통하여 그리고 흉악한 눈의 기법에 의해 되받아 치는 것이라고 여겼다. 영의 기피와 밀접하였던 종파의 그 국면은 흉악한 눈의 음모와 많이 관계되어 있었다. 그것의 두려움은 거의 전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들은 흉악한 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베일로 가렸으며; 나중에는 아름답게 여겨지고 싶은 많은 여인들이 이 풍습을 택하였다. 악한 영들에 대한 이 두려움 때문에, 어두워진 후 아이들이 밖에 나가는 것은 거의 허용되지 않았고, 초창기 기도문들 속에는 “우리를 흉악한 눈으로부터 구해달라”는 탄원이 항상 포함되었다.

87:5.5 (962.6) 코란 속에는 한 장(章) 전체가 흉악한 눈과 마법 주문(呪文)에 관계되는 글로 채워진 부분이 있으며, 유대인들은 그것들을 온전히 믿었다. 남근(男根)을 숭배하는 전체 종파는 흉악한 눈에 대항하는 방어책으로 형성되었다. 생식(生殖) 기관들은 그것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주물(呪物)로 여겨졌다. 흉악한 눈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과 관련된 최초의 미신적 행위, 즉 어머니를 따르도록 만들었으며, 그 종파는 한 때 거의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다.

87:5.6 (963.1) 질투심은 뿌리 깊은 인간적 특징이며; 그러므로 원시인은 그것을 자신의 초창기 신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사람은 한 때 혼령들을 속이는 풍습을 가졌었기 때문에, 곧 그 영들도 속이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말하기를, “만약 영들이 우리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질투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기 흉하게 치장할 것이고 우리의 성공을 축소하여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초창기의 겸손은 자존심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투하는 영들을 물리치고 속이려는 시도였다.

87:5.7 (963.2) 영들이 인간의 행복에 대해 질투심을 갖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채택된 방법은, 행운을 가져오거나 귀하게 여기는 물건 또는 사람에게 욕을 심하게 쏟아 붓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 또는 가족에 관하여 칭찬하는 말을 경시하는 관습이 이런 식으로 기원되었으며; 결국 예의바른 겸손과 사양 그리고 공손함으로 발전하였다. 동일한 동기에 따라, 얼굴이 추하게 보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아름다움은 영들의 질투심을 자극하였으며; 인간의 죄 많은 자존심의 전조(前兆)가 되었다. 미개인들은 추한 이름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 종파의 이러한 특색은 예술의 발전에 큰 장애 요인이었고, 오랫동안 세상을 침울하고 추하게 만들었다.

87:5.8 (963.3) 영 종파 아래에서는, 인생은 기껏해야 하나의 도박, 즉 영 통제의 결과에 불과하였다. 인간의 미래는, 영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력이나 열심 또는 재주의 결과가 아니었다. 영을 달래기 위한 예식들은 무거운 부담을 주었는데, 인생을 진저리나게 만들었고 사실상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지나면서, 여러 인종들이 이러한 초월적 혼령들에 관한 교리를 개선시키려고 애썼지만, 어떤 세대도 아직 감히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87:5.9 (963.4) 그 영들의 목적과 뜻은 예언과 신의 계시 그리고 표적에 의해 조사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메시지들은 점(占), 예언, 마술, 괴로운 체험, 그리고 점성술에 의해 해석되었다. 전체적인 종파는, 속임수에 의한 유혹을 통하여 영들을 진정시키고 만족시키며 매수(買收)하도록 고안된 책략이었다.

87:5.10 (963.5) 그리하여 새로운 그리고 확장된 세계적 철학들이 다음과 같은 면에서 발생되었다:

87:5.11 (963.6) 1. 의무--영들로 하여금 적어도 중간적인 마음을 품도록 적절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들.

87:5.12 (963.7) 2. 권리--영들을 능동적으로 이겨서 유익이 되도록 계획된 온당한 행위와 예식들.

87:5.13 (963.8) 3. 진리--영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영들을 향한,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삶과 죽음을 향한 태도.

87:5.14 (963.9) 고대인들이 미래에 대해 알고자 하였던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으며; 그들은 불운을 피하기를 원하였다. 점(占)은 단순히 재난을 피하려는 시도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시대 동안에는, 꿈이 예언으로 간주된 반면, 일상적이 아닌 모든 것들이 어떤 징조로 고려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 문명화된 인종들도 징후들과 표시들 그리고 옛날의 발전하는 혼령 종파의 다른 미신적 잔재들에 대한 믿음으로 저주를 받고 있다. 서서히, 매우 느리게, 사람은 그러한 방법들을 포기하고 있고, 그리하여 생명의 진화적 계단을 점차적으로 그리고 고생하면서 올라갔다.

6. 강제 퇴거와 축귀(逐鬼)

87:6.1 (963.10) 사람들이 혼령만을 믿었을 때에는, 종교적 제례식이 더욱 개인적인 반면, 보다 약하게 조직되어 있었지만, 더 높은 영들에 대한 인식으로 인하여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 높은 영적 방법들”이 채택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영을 달래는 기법을 개선하고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이 시도는 그 영들에 대항하는 방어책의 형성을 직접적으로 인도하였다. 사람은 현세의 생애 속에서 작용하는 통제할 수 없는 힘들 앞에서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느꼈고, 그의 열등감이 그로 하여금 어떤 보상하는 조정 방법, 즉 조화우주에 대한 사람의 일방적 투쟁 속에서 불평등을 없애주는 어떤 기법의 발견을 시도하도록 강요하였다.

87:6.2 (964.1) 그 종파의 초창기에, 혼령 작용에 영향을 미치려는 사람의 노력은 달래는 일, 즉 어떤 대가를 지불하여 불운을 면하려는 유혹에 의한 시도들에 제한되어 있었다. 혼령 종파의 진화가 선한 영들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의 개념으로 진보되자, 이러한 예식들은 더욱 긍정적인 성질의 시도들, 즉 행운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사람의 종교는 더 이상 완전히 부정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행운을 얻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게 되었으며; 곧 책략들을 발명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에 의해 영이 협동하도록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인은 자신이 발명하는 영 환영(幻影)들의 끊임없는 요구들 앞에서 더 이상 무방비 상태로 서 있지 않게 되었으며; 미개인은 영 작용을 지배하고 영의 도움을 강요할 수 있는 무기들을 발명하기 시작하였다.

87:6.3 (964.2) 사람의 최초 방어 노력들은 혼령들을 대항하도록 인도되었다. 시대들이 지나자, 살아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대항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하기 시작하였다. 영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을 멀리 쫓기 위해 많은 기법들이 개발되었는데,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될 수 있다:

87:6.4 (964.3) 1. 머리를 잘라내고 시신을 무덤 속에 묶어 둠.

87:6.5 (964.4) 2. 사람이 죽은 집에 돌을 던짐.

87:6.6 (964.5) 3. 시체의 다리를 제거하거나 부러뜨림.

87:6.7 (964.6) 4. 돌 밑에 묻음, 현대적인 묘비의 기원 중 하나임.

87:6.8 (964.7) 5. 화장(火葬), 혼령에 의한 재난을 막기 위해 나중에 발명되었음.

87:6.9 (964.8) 6. 시체를 바다에 던짐.

87:6.10 (964.9) 7. 시체를 방치하여 야생 동물들이 뜯어먹게 함.

87:6.11 (964.10) 혼령들이 소음에 의해 교란되고 깜짝 놀란다고 생각하였으며; 고함소리와 종소리 그리고 북소리가 그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내쫓는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고대의 방법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밤을 새우는” 곳에서 여전히 성행되고 있다. 달갑지 않은 영들을 내쫓기 위하여 악취를 뿜는 조제물(調劑物)이 이용되었다. 그 영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형상들을 세워서 그들이 자기 모습을 보고 재빨리 도망하게 만들려고 하였다. 영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개들이 감지할 수 있고, 짖어댐으로써 경고를 준다고 믿었으며; 그들이 가까이 왔을 때 수탉들이 운다고 믿었다. 수탉의 모양을 풍향기에 이용하는 것은 이러한 미신의 잔재이다.

87:6.12 (964.11) 물은 혼령들을 대항하는 최고의 보호책으로 간주되었다. 거룩한 물은 다른 어떤 형태보다도 우수하였는데, 그 물은 사제들이 발을 씻은 것이었다. 불과 물은 모두 혼령들에게 지나갈 수 없는 장애물이 된다고 믿었다. 로마인들은 물을 가지고 시체 주위를 세 번 돌았으며; 20세기에 있어서는 시체 위에 성수(聖水)를 뿌리고 있고, 묘지에서 손을 씻는 것이 아직도 유대인들의 제례식으로 남아있다. 세례는 물로 하는 후대의 제례식의 한 부분이었으며; 원시 시대의 목욕은 종교적인 예식이었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목욕이 위생 습관으로 바뀌었다.

87:6.13 (964.12) 그러나 사람은 혼령을 강압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종교적 제례식 및 다른 풍습들을 통한 영 작용 강요를 곧 시도하였다. 축귀(逐鬼)는 어떤 한 영을 택하여 다른 영을 통제하거나 추방시키려는 것이었고, 이 술책들은 혼령들과 영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도 이용되었다. 선한 세력들과 악한 세력들의 이중-심령술 개념은 한 매개체와 다른 매개체를 싸움 붙이도록 시도하기 위한 엄청난 기회를 인간에게 제공하였는데, 왜냐하면, 만일 어떤 힘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정복할 수 있다면, 분명히 강한 영이 열등한 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저주하기는 낮은 계급의 영들을 겁주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강제적 관습이었다. 나중에는 이러한 관습이 확장되어 적들에게 저주를 퍼붓게 되었다.

87:6.14 (965.1) 보다 오래된 사회관습의 관행(慣行)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영들과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들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현대인도 똑같은 과정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 너희들은 일상적 언어에 있어서는 평범한 말로 서로 이야기하지만, 기도할 때에는, 지나간 세대의 옛날 문체, 즉 소위 엄숙한 문체라고 불리는 형태를 습관적으로 이용한다.

87:6.15 (965.2) 이 교리는 또한 신전에서의 매음 행위와 같은 성적 본성에 있어서의 많은 종교-예식적 복귀 현상들도 설명해 준다. 원시적 관습으로의 이 복귀 현상들은, 많은 재난들을 방지할 수 있는 분명한 대비책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단순한 정신을 소유한 이 민족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모든 실행들은, 현대인이 난잡하다고 부르는 형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87:6.16 (965.3) 그 다음에는 제례적 맹세의 풍습이 생겼고, 곧 그 뒤를 이어 종교적 서약과 신성시되는 맹세들이 행해졌다. 이 맹세들 대부분은 고행과 자상(自傷) 행위를 동반하였으며; 나중에는 금식과 기도가 동반되었다. 나중에는 자기-부정이 틀림없는 강압 수단으로 여겨졌으며; 이것은 성욕 억제의 문제에 있어서 특히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원시인은 자신의 종교적 풍습에 있어서 단호한 금욕 생활을 일찍부터 발전시켰는데, 마음 내키지 않는 영들로 하여금 그러한 모든 고난과 궁핍에 대해 호의를 갖고 반응하도록 강압할 수 있는 제례식으로, 고행과 자기-부정이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87:6.17 (965.4) 현대인은 더 이상 공개적으로 영들을 강압하려고 시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격과 흥정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맹세하고, 나무를 두드리며, 손가락을 겹쳐 보이고, 침을 뱉으면서 어떤 진부한 말들을 하는데; 그것은 한 때 마술적 처방이었다.

7. 종파체계의 본질

87:7.1 (965.5) 사회 조직체의 종파(宗派) 유형은 계속 유지되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도덕적 정서(情緖)와 종교적 충성의 보존과 격려를 위한 상징성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종파는 “옛 가족들”의 전통들로부터 발생되고 확립된 제도로써 계속 존재하였는데; 모든 가정(家庭)들은 어떤 종류의 숭배대상을 간직하고 있다. 영감을 주는 모든 이상(理想)은 영존하는 어떤 상징체계를 붙잡으려고 하며--생존을 보장하고 실현을 증대시키게 되는 문화적 징후를 위한 어떤 기법을 추구함--, 종파는 감정을 조성하고 만족시킴으로써 이러한 결과를 성취한다.

87:7.2 (965.6) 문명의 여명기부터, 사회적 문화 또는 종교적 진보에 있어서의 모든 매력적인 운동이 제례식, 즉 상징적 예식절차를 발전시켜 왔다. 이 의식(儀式)이 무의식적 성장을 이룩하면 할수록,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더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종파가 정서를 보호하고 감정을 만족시켰지만, 사회적 부흥과 영적 진보에는 항상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87:7.3 (965.7) 종파가 사회적 진보를 항상 방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표준들과 영적 이상들을 믿는 매우 많은 현대인들이 적당한 상징--상호 후원의 종파가 없음--소속될만한 것이 없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종파는 조작될 수 없으며; 자라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제례식들이 권위자에 의해 독단적으로 표준화되지 않으면, 그것들 중 어떤 두 집단도 동일하지 않게 될 것이다.

87:7.4 (965.8) 초창기의 그리스도교인 종파는 그 때까지 생각해 내거나 고안해 내었던 어떤 제례식보다도 가장 효과적이고 매력적이며 영구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의 가치 대부분은 너무 많은 원래의 근원적인 교의(敎義)들의 파괴에 의해 과학적인 시대 동안 계속적으로 훼손되어 왔다. 그리스도교인 종파는 많은 근본적 개념들을 잃음으로써 생명력을 계속 잃어 왔다.

87:7.5 (965.9) 과거에는, 종파가 신축성이 있을 때, 즉 상징 체계가 확장될 수 있을 때 진리가 급속도로 자라고 자유롭게 확대되었다. 풍족한 진리와 조정할 수 있는 종파가 사회적 진보의 신속성을 장려하였다. 무의미한 종파는, 그것이 철학을 대체하고 이성(理性)을 노예로 삼을 때, 종교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반면; 참된 종파는 자라난다.

87:7.6 (966.1) 결점들과 불리한 조건들에 상관없이, 진리에 대한 모든 새로운 계시는 새로운 종파가 발생되게 하며, 심지어 예수의 종교에 대한 수정도 새롭고도 적절한 상징체계를 발전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현대인은 자신의 새롭고 확장하는 개념들과 이상들과 충성심들에 맞는 어떤 상징체계를 발견해야만 한다. 이러한 증진된 상징은 반드시 종교적 삶, 즉 영적 경험으로부터 발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보다 고차원적 문명의 고차원적 상징체계는, 하나님아버지-되심 개념에 입각해야만 하며, 사람의 형제-관계에 대한 강력한 이상(理想)으로 가득 채워져야만 한다.

87:7.7 (966.2) 옛 종파들은 너무 자기중심적이었으며; 새 종파는 적용된 사랑으로부터 발생되어야만 한다. 새 종파는, 옛 종파와 마찬가지로, 정서를 조성하고 감정을 만족시키며 충성심을 증진시켜야 하지만; 그 이상(以上)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영적 진보를 촉진시키고, 조화우주적인 의미들을 증진시키며, 도덕적 가치들을 증대시키고, 사회적 발전을 장려하고 고차원적 유형의 개인적 종교 생활을 고무시켜야만 한다. 새 종파는 현세와 영원한 세계 모두--사회적 및 영적--에게 해당되는 삶의 최고 목표들을 제공해야만 한다.

87:7.8 (966.3) 어떤 종파도, 그것이 가정(家庭)에 대한 생물학적, 사회적, 종교적 의미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면, 사회적인 문명과 개인적인 영적 달성의 진보를 허용하고 그에 기여할 수 없다. 계속 살아남는 종파는 끊임없는 변화의 현실 속에서 영원한 것을 상징화 시켜야만 하며; 항상 변화하는 사회적 변질의 흐름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을 찬미해야만 한다. 그것은 참된 의미들을 깨닫고 아름다운 관계들을 강화시키며, 참다운 숭고함의 훌륭한 가치들에게 영광을 찬미해야만 한다.

87:7.9 (966.4) 그러나 새롭고도 만족스러운 종파를 발견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것은, 현대인들이 집단적으로는 과학적인 태도를 고집하고 미신을 피하며 무지함을 멸시하는 반면, 개인적으로는 모두 신비를 갈망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능숙한 어떤 신비성을 포함하고 획득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어떤 것을 비밀로 간직하지 않는 한 어떤 종파도 살아남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상징체계는 그 집단에게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모든 유용한 상징 계의 형태들은, 개인들이 자기 자신의 독창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하고, 개인이 자기 친구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만약에 새로운 그 종파가 정지된 상태 대신에 역동적인 상태일 수만 있다면, 그것은 현세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인류의 진보에 정말로 훌륭한 어떤 것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87:7.10 (966.5) 그러나 종파--제례식들이나 표어(標語)들 또는 목표들에 대한 상징체계--는 만약에 그것이 너무 복잡하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헌신에 대한 요청, 즉 충성심에 대한 반응이 들어 있어야만 한다. 모든 효과적인 종교는 반드시 훌륭한 상징체계를 발전시키며,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회적 도덕적 영적 진보를 지연시키고 방해시킬 뿐인, 속박하고 추하게 만들고 답답하게 만드는 진부한 예식절차들이 되도록 그러한 제례식을 고정시키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어떤 종파도, 그것이 도덕적 성장을 지연시키고 영적 진보를 촉진시키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종파는 그 주변에서 개인적인 영적 경험의 생생하고 역동적인 몸체--참된 종교--가 자라 가는 뼈대 구조물이다.

87:7.11 (966.6) [네바돈찬란한 저녁별에 의해 제시되었음]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