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랜시아 책 - 제86편 : 종교의 초창기 진화

(USGNY[CM]-KOR-000-1996-3)

유랜시아 책   

부 III: 유랜시아의 역사

제86편 : 종교의 초창기 진화



제86편 : 종교의 초창기 진화

86:0.1 (950.1) 전술(前述)한 원시적 경배 충동으로부터의 종교 진화는 계시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주적 영 증여에 속하는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정신-보조체들의 지배적인 영향 하에 있는 인간 정신의 정상적인 기능발휘는 그러한 발전을 보장하기에 전적으로 충분하다.

86:0.2 (950.2) 종교가 생기기 이전에 사람이 처음으로 가졌던 자연의 힘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이 인격화되고, 초자연적 존재로 취급되고, 결국에는 인간 의식(意識) 속에서 신격화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종교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적 유형의 종교는 진화하는 동물 정신들의 심리적 타성(惰性)으로부터 발생되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결과인데, 그러한 정신들은 이미 한 때 초자연에 대한 개념들을 간직한 이후에 일어난다.

1. 우연: 행운과 불운

86:1.1 (950.3) 자연적인 경배 충동을 제외시킨다면, 초창기의 진화적 종교는 우연--소위 운수, 즉 평범한 사건들--에 대한 인간 경험에 그 기원의 뿌리를 두었다. 원시인은 음식을 찾아다녔다. 그러한 탐색의 결과는 항상 변할 수밖에 없었으며, 사람들이 행운 불운으로 표현하는 그러한 특별한 경험들을 하도록 만들었다. 생존과 죽음의 불확실하고 초조한 경계선 위에서 끊임없이 살아야만 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생애 속에서 불행은 하나의 중대한 요소였다.

86:1.2 (950.4) 미개인들의 제한된 지능적 시야가 너무나도 우연에 관심을 집중하였기 때문에, 운수가 그들의 삶 속에서 일정한 요소가 되었다. 원시적 유란시아인들은 생활수준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존을 위해 투쟁하였으며; 우연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위험한 생애를 살았다.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불행에 대한 변치 않는 두려움이, 모든 쾌락을 효과적으로 가릴 수 있는 어떤 절망적 구름을 이 미개인들 머리 위에 드리웠으며; 그들은 불운을 가져올 수 있는 어떤 것을 하는 데 대한 변치 않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미신에 사로잡힌 미개인들은 행운이 달아날 것을 항상 염려하였으며; 그러한 행운을 특정한 재난의 전조로 생각하였다.

86:1.3 (950.5) 불운에 대한 항상 존재하는 이 두려움이 계속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행운--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떤 것을 얻음--을 만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열심히 일하다가 불운--무엇인가 했는데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을 자초하겠는가? 생각 없는 사람들은 행운을 쉽게 잊지만--당연하게 여김--, 불운은 애써 기억한다.

86:1.4 (950.6) 초창기 사람은 우연--불운--의 불확실성과 계속적인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인생은 우연이라는 일종의 흥미진진한 경기였으며; 실존은 하나의 도박이었다. 부분적으로 문명화된 사람들이 아직도 우연을 믿고 도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원시인은 두 개의 잠재적 관심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떤 것을 얻으려는 욕망과 무엇인가를 하고서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염려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였다. 그리고 실존에 대한 이 도박은 미개한 정신을 소유한 초창기 정신에게 주요 관심사였고 최고의 매력이었다.

86:1.5 (951.1) 목축을 하는 후대의 사람들도 우연과 운수에 대해 똑같은 관점을 가진 반면, 농업에 종사하는 더 후대의 사람들은 사람이 거의 또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의해 농작물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점점 더 의식하게 되었다. 농부는 자기 자신이 가뭄, 홍수, 우박, 폭풍우, 해충, 식물의 질병뿐만 아니라 더위와 추위 등에 의한 피해자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천연적 영향들이 개인의 성공을 좌우하자, 그들은 그것을 행운 또는 불운으로 간주하였다.

86:1.6 (951.2) 우연과 운수에 대한 이 관념이 고대의 모든 민족들의 사고(思考) 속에 강력하게 침투하였다. 심지어 후대에 쓰인 솔로몬의 지혜서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돌이켜 보니,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 이기는 것이 아니고, 힘이 세다고 해서 전쟁에 이기는 것도 아니며,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총명하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솜씨가 있다고 해서 잘되는 것도 아니고; 숙명과 우연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사람은 불행이 언제 다가올지 알지 못하며; 물고기들이 악한 그물에 걸리는 것처럼, 새들이 덫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들도 갑자기 덮치는 악한 때를 피하지 못한다.”

2. 우연의 의인화(擬人化)

86:2.1 (951.3) 불안은 미개한 정신의 자연적 상태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과도한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들의 먼 조상들의 자연적인 생활 상태로 간단하게 되돌아가며; 불안이 실제적으로 고통스러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활동을 억제하며 반드시 진화적인 변화와 생물학적인 적응을 시작하게 한다. 고통과 고난은 진보적인 진화에 필수적이다.

86:2.2 (951.4) 삶을 위한 투쟁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어떤 부족들은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비탄에 잠기기까지 한다. 원시인이 계속 질문하는 것은 “누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자신의 불행을 해소시킬 물질적 근원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영적인 해결책에 의존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종교는,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발생되었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처음에는 우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신비적 사건 때문에, 실존을 위한 투쟁의 한 요소가 되었다.

86:2.3 (951.5) 원시적 정신은 논리적이기는 하였지만 지성적 연합에 대한 관념은 거의 없었으며; 미개한 정신은 무식하였고 전적으로 순박하였다. 만약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 다음에 일어나면, 미개인들은 그것들을 원인과 결과로 간주하였다. 문명인이 미신으로 간주하는 것이 미개인 세계에서는 그저 평이한 무지에 불과하였다. 원인들과 결과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반드시 성립될 필요가 없음을 인류가 깨닫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소요된다. 인간 존재들은, 실존의 반응들이 행위들과 그에 따른 결과들 사이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하였다. 미개인들은 감지할 수 없고 추상적인 모든 것들을 인격화시키려고 애쓰며, 그리하여 자연과 우연 둘 다 혼령으로 인격화되었고 나중에는 신들로 여겨졌다.

86:2.4 (951.6) 사람은 자기에게 최선책이라고 생각되는 것, 즉 당장의 또는 훗날의 유익과 관계되는 것을 자연적으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사리사욕은 대개 논리를 흐리게 만든다. 미개인과 문명인의 정신에 있어서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용적인 것, 즉 질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정도에 관한 것이다.

86:2.5 (951.7)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계속하여 초자연적 원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모든 형태의 두뇌를 쓰는 힘든 일을 회피하는 게으르고 편리한 방법이나 다름없다. 운수라는 말은 인간이 실존한 모든 시대들에 있어서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에 불과하며; 인간들이 통찰할 수 없는 또는 통찰하기 싫어하는 현상들을 가리킨다. 우연은 인간이 너무 무지하거나 너무 나태하여 원인을 측정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호기심과 상상력이 부족할 때, 즉 인종들에게 독창력과 모험심이 부족할 때에만 자연적 사건들을 우연한 사고 또는 불운으로 간주한다. 생명체의 현상에 대한 탐구로 말미암아, 우연과 운수 그리고 소위 돌발사고들에 대한 사람의 믿음은 조만간에 무너질 것이며, 그 대신에 모든 결과들이 있기 전에 분명한 원인이 있다는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우주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하여 실존에 대한 두려움은 생활의 기쁨으로 바뀐다.

86:2.6 (952.1) 미개인들은 모든 자연이 살아있다고, 즉 무언가에 의해 붙잡혀있다고 생각하였다. 문명화된 사람은 아직도, 자기를 방해하고 자기에게 부딪히는 생명 없는 물건들을 발로 차면서 저주한다. 원시인은 어떤 것도 우연한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모든 것들이 계획되었다고 항상 생각하였다. 원시인에게 있어서 숙명의 영역, 운수의 역할, 영 세계는 원시적 공동체가 그랬던 것처럼, 조직되지 않은 그리고 우연한 것에 불과하였다. 운수는 영 세계의 변덕스럽고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간주되었으며; 나중에는 신(神)들의 익살스러움으로 간주되었다.

86:2.7 (952.2) 그러나 모든 종교들이 정령 숭배로부터 발전하지는 않았다. 초자연적인 것들에 대한 다른 개념들이 정령숭배와 동시에 존재하였고, 이 믿음들 역시 경배로 이끌었다. 자연주의는 종교가 아니다--종교의 소산물이다.

3. 죽음--설명할 수 없는 현상

86:3.1 (952.3) 죽음은 진화하는 사람에게 가장 충격적이었고, 우연과 신비가 가장 복잡하게 얽힌 것이었다. 생명의 존엄성이 아니라 죽음의 충격이 두려움을 불어넣었고 그리하여 효과적으로 종교를 조성시켰다. 미개인 민족들 가운데에서 죽음은 대개 폭력에 의해 발생되었기 때문에, 비폭력에 의한 죽음은 점점 더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졌다. 자연적인 그리고 예상되는 인생의 종말로서의 죽음은 원시적 민족의 의식(意識)에 의해 명쾌하게 파악되지 않았고, 그것의 필연성을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다.

86:3.2 (952.4) 초창기 사람은 생명을 사실로 받아들인 반면, 죽음은 어떤 부류의 존재가 찾아온 것으로 간주하였다. 모든 인종들은 죽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고유의 전설들, 즉 죽음에 대한 초창기의 입장이 퇴화된 전통들을 갖고 있다. 인간의 정신 속에는 막연하고 조직되지 않은 영 세계, 즉 인간의 삶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영역에 대한 불투명한 개념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죽음도 여러 가지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중 하나였다.

86:3.3 (952.5) 인간의 모든 질병들과 자연사(自然死)는, 처음에는 영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믿어졌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문명화된 인종들은 질병이 “악마”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고치기 위해 종교적인 예식들에 의존한다. 후대의 그리고 보다 복잡한 신학(神學) 체계들도 여전히 죽음을 영 세계의 작용의 탓으로 돌렸고, 그 모든 것들로 말미암아 원죄(原罪)와 인간의 타락이라는 교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86:3.4 (952.6) 미개인들로 하여금, 인생에 있어서의 불가해한 변화들의 근원이라고 어렴풋이 상상하는 초물질적 세계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애쓰도록 강요한 것은,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의 무능력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질병과 죽음 앞에 닥쳤을 때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4. 죽음-생존의 개념

86:4.1 (952.7) 필사자 인격체의 초물질적 상태에 대한 개념은 무의식으로부터 생겨났고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된 것들과 혼령에 대한 꿈이 순전히 우연하게 관련됨으로써 생겨났다. 죽은 부족장(部族長)에 대한 꿈을 여러 부족원들이 동시에 꾸게 되는 것은, 옛 부족장이 정말로 어떤 형태로든지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땀을 흘리고 떨면서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러한 꿈으로부터 깨어난 미개인들에게 그것은 모두 매우 생생한 것이었다.

86:4.2 (953.1) 미래 실존에 대한 믿음의 꿈 기원은, 보이는 것들에 대한 표현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항상 추측하려는 경향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이 새로운 꿈-혼령-미래-생애 개념이 이윽고 자아-보존의 생물학적 본능과 관련된 죽음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해소시키기 시작하였다.

86:4.3 (953.2) 또한 초창기의 사람은 자신의 호흡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추운 지방에서 더 그러하였고, 그곳에서는 숨을 내쉴 때 입김이 보였기 때문이다. 생명의 호흡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호흡이 육체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잠을 자는 동안에 모든 종류의 괴상한 것들을 꿈꾸었기 때문에 인간 존재에 관한 비물질적인 무엇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인간의 혼, 즉 혼령(魂靈)에 대한 가장 원시적인 관념은, 호흡-꿈 개념-체계로부터 도출되었다.

86:4.4 (953.3) 미개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이 이중적인 존재--육체와 호흡--라고 생각하였다. 육체를 제외한 호흡이 영(靈), 즉 혼령과 같았다.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매우 명확한 개념을 가진 반면, 혼령들 또는 영들은 초인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육체를 떠난 영들이 실존한다는 이러한 믿음이, 보기 드문, 괴상한, 드물게 일어나는,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86:4.5 (953.4) 죽음 이후의 생존에 대한 원시적 교리가 반드시 불사(不死)에 대한 믿음일 필요는 없었다. 20개를 셀 수 없는 존재들은 무한과 영원을 거의 생각할 수 없으며; 그들은 순환적 환생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86:4.6 (953.5) 오렌지색 인종은 특별히 윤회(輪廻)와 환생(還生)을 믿는 경향이 많았다. 환생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유전적인 현상과 자손들의 특징이 조상을 닮는 것을 관측함으로부터 기원되었다. 조부모(祖父母) 및 다른 조상들을 따라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 관습은 환생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되었다. 후대의 어떤 인종들은 사람이 세 번 내지 일곱 번 죽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과(맨션 세계들에 관한 아담의 가르침으로부터 잔여(殘餘)된), 계시된 종교의 많은 다른 유물들이, 20세기 야만인들의 다른 면에서의 모순 된 교리들 가운데에서 발견될 수 있다.

86:4.7 (953.6) 초창기 사람은 지옥이나 장래의 형벌에 대한 관념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 미개인들은 저 세상의 삶을, 모든 불운을 제외한 이 세상의 삶과 똑같이 생각하였다. 나중에는 선한 혼령들과 나쁜 혼령들에 대한 운명--천국과 지옥--이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가 떠나간 이 세상의 생애와 똑같은 상태의 저 세상 생애를 산다고 많은 원시적 인종들이 믿게 된 후로, 늙고 쇠약해지는 것에 대한 관념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늙은 사람들은 너무 쇠약해지기 전에 죽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였다.

86:4.8 (953.7) 거의 모든 집단 마다 혼령이 된 혼의 운명에 대해 서로 다른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약한 사람의 혼은 반드시 허약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무기력한 혼들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장소로 하데스를 고안해 내었으며; 튼튼하지 못한 이 사람들은 그 망령도 작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초창기 안드족속들은 자기들의 혼령이 조상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였다. 중국인들과 이집트인들은 혼과 육체가 함께 머물러 있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집트인들 사이에서는 이것 때문에 주의 깊게 무덤을 건축하게 되었고 시신(屍身)을 보존하기 위하여 애쓰게 되었다. 심지어 현대인들도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히브리인들은 각 개인의 복제(複製)된 유령(幽靈)이 스올로 내려간다고 생각하였으며; 살았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혼의 진화에 대한 교리에 있어서 중요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5. 혼령-혼의 개념

86:5.1 (953.8) 사람의 비물질적 부분은, 혼령, 영, 망령(亡靈), 유령, 요괴, 그리고 최근에는 이라는 이름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왔다. 혼은 초창기 사람의 꿈 대역(代役)이었으며; 접촉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필사자 자신과 똑같은 것이었다. 꿈 대역들에 대한 믿음은, 생물과 무생물 모두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혼을 갖고 있다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유도해 내었다. 이러한 개념은 오랫동안 자연-영 신념들을 존속시키는 경향이 있었으며; 에스키모인들은 아직도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86:5.2 (954.1) 혼령이 된 혼을 볼 수 있고 그 말을 들을 수 있지만 만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인종의 꿈꾸는 생활이 점차적으로 더 개발되었고 이러한 진화하는 영의 세계에 대한 활동들이 확장되었으므로, 마침내 죽음을 “혼령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동물과 거의 다름없는 상태를 제외하고, 원시적인 모든 부족들은, 혼에 대한 어떤 개념을 발전시켰다. 문명이 진보되면서, 혼에 대한 이러한 미신적 개념이 무너지고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인간적 정신과 그 속에 내주하는 신성한 영 즉 사고 섭리사의 공동 창작에 따라 혼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관념을 위하여 계시와 개인적인 종교적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86:5.3 (954.2) 초창기의 필사자들은 대개 내주하는 영에 대한 개념과 진화적 본성의 혼에 대한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였다. 미개인들은, 혼령이 된 혼이 원래 몸 속에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육체를 감싸는 외부적 매개체인지에 대해 매우 혼돈을 일으켰다. 혼란 속에서 이성적(理性的)인 사고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혼과 혼령 그리고 영에 대한 미개한 관점이 전체적으로 모순 되게 되었다.

86:5.4 (954.3) 꽃과 그 향기의 관계처럼 혼이 육체와 관련된다고 생각하였다. 옛 사람들은 혼이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육체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86:5.5 (954.4) 1. 평범하게 그리고 순간적으로 기절한 경우.

86:5.6 (954.5) 2. 잠을 자면서, 자연적으로 꿈을 꾸는 경우.

86:5.7 (954.6) 3. 질병 또는 사고와 관련하여 혼수상태 또는 무의식 상태에 빠진 경우.

86:5.8 (954.7) 4. 죽어서 영원히 떠난 경우.

86:5.9 (954.8) 미개인들은 재채기하는 것을, 혼이 육체로부터 도망치려다가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깨어서 지킴으로써 혼이 도망치려는 것을 육체가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나중에는, 재채기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주시기를!”이라는 말과 같은, 어떤 종교적인 표현이 덧붙여졌다.

86:5.10 (954.9) 진화의 초창기에는, 잠을 자는 것은 혼령이 된 혼이 육체로부터 떠날 수 있음을 증거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잠자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거나 소리침으로써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다. 혼은 다른 형태의 무의식 속에서 더 멀리 떠나는 것으로, 즉 아마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도망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꿈은, 잠자는 동안 혼이 일시적으로 육체를 떠나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개인들은, 자기가 꾼 꿈이, 깨어서 경험하는 것의 일부분인 실제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옛 사람들은 잠자는 사람을 급하게 깨우지 않는 풍습을 제정하였는데, 혼이 몸 속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86:5.11 (954.10) 시대가 지나가는 동안 내내, 사람들은 밤에 나타나는 허깨비들을 두려워하였으며, 히브리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러한 관념을 반대하는 모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믿었다. 그리고 모세가 옳았는데, 영적인 세계의 인격체들이 물질적인 존재들과 대화할 방법을 모색할 때 일상적인 꿈들이 그들에 의해 사용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86:5.12 (954.11) 옛 사람들은 혼이 동물에게로 또는 심지어 무생물에게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동물과 동일시하는, 인간이 늑대가 된다는 관념에서 최고조에 달하였다. 어떤 인간이 낮에는 법을 지키는 시민이 될 수 있지만, 잠이 들게 되면 그 혼이 늑대 또는 다른 동물 속으로 들어가서 야밤의 약탈 행위를 하기 위해 어슬렁거리며 다닐 수 있다고 믿었다.

86:5.13 (955.1) 원시인들은 혼이 호흡과 관련된다고 생각하였으며, 그것의 특성들이 호흡에 의해 전해지거나 양도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용맹스러운 대장이 새로 태어나는 아이 위에 숨을 크게 내쉬어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자 하였다. 초창기의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서는, 거룩한 영 증여 예식을 하면서 후보자들에게 입김을 뿜었다. 시편 기자(記者)는: “(主)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만들어졌고 그 속에 있는 모든 무리들이 그의 입김에 의해 지어졌다.”고 기록하였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숨을 맏아들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행위가 오랫동안 관습으로 지켜졌다.

86:5.14 (955.2) 나중에는 그림자를 두려워하였고 호흡과 마찬가지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물에 비친 모습도 때로는 이중적인 자아에 대한 증거로 간주되었으며, 미신적인 두려움으로 거울을 취급하였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많은 문명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거울을 벽 쪽으로 돌려놓는다. 어떤 미개한 부족들은 아직도, 사진이나 초상화나 모형 또는 형상들이 그 혼의 전부 또는 일부분을 제거시킨다고 믿고 있으며;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금지시킨다.

86:5.15 (955.3) 혼은 일반적으로 호흡과 일치되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그것이 머리, 머리카락, 심장, 간, 피, 지방질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도 있었다. “아벨의 피가 땅 속에서 부르짖고 있다.”는 말은 피 속에 혼령이 존재한다는 한 때의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셈족속들은 혼이 몸의 지방질 속에 거주한다고 가르쳤으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동물의 기름을 먹는 것이 금기사항으로 지켜졌다. 가죽을 벗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잘라 오는 것이 적의 혼을 사로잡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눈이 혼의 창문과 같다고 간주되어 왔다.

86:5.16 (955.4) 혼이 세 개 내지 네 개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혼을 하나 잃는 것은 불안감을, 두 개를 잃는 것은 질병을, 세 개를 잃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의 혼은 호흡 속에, 또 하나는 머리 속에, 또 하나는 머리카락 속에, 또 하나는 심장 속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환자들은 그들의 방황하는 혼들을 다시 찾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야외를 방황하도록 충고를 받았다. 가장 훌륭한 주술사는 질병에 걸린 사람의 아픈 혼을 새로운 것, 즉 “새로운 호흡”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86:5.17 (955.5) 바도난의 자손들은 두 개의 혼들, 즉 호흡과 그림자에 대한 믿음을 발전시켰다. 초창기의 놋족속 부족들은 인간이 두 개의 인격, 즉 혼과 육체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인간 실존에 대한 이러한 철학은 나중에 그리스적 관점에 반영되었다. 그리스인들 자신은 세 개의 혼들을 믿었는데; 성장하는 혼은 배 속에 있고, 동물적인 혼은 심장 속에 있으며, 지능적인 혼은 머리 속에 있다고 믿었다. 에스키모인들은 인간이 육체와 혼과 이름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믿었다.

6. 혼령-영 환경

86:6.1 (955.6) 사람은 자연적 환경을 물려받았고, 사회적 환경을 획득하였으며, 혼령 환경을 추측하였다. 국가는 자연적 환경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고, 가정은 사회적 환경에 대한 반응이며, 교회는 가공적(架空的)인 혼령 환경에 대한 반응이다.

86:6.2 (955.7) 인류 역사상 매우 초창기에는, 혼령과 영에 대한 가상적 세계의 실체들이 보편적으로 믿어지게 되었으며, 새롭게 상상되어진 이러한 영의 세계가 원시 공동체 속에서 하나의 권능을 갖게 되었다. 모든 인류의 정신적 및 도덕적 생애는 인간의 사고(思考)와 행동에 있어서의 이러한 새로운 요소의 출현에 의해 항상 변경되었다.

86:6.3 (955.8) 인간의 두려움이 그 뒤에 따라오는 원시적 민족들의 모든 미신과 종교를, 환상(幻想)과 무지에 대한 이러한 주요 전제(前提) 속으로 채워 넣었다. 이것은 계시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사람의 유일한 종교였으며, 오늘날에도 세계의 인종들 중 다수가 이러한 미숙한 진화적 종교만을 신봉하고 있다.

86:6.4 (955.9) 진화가 진행되면서, 행운은 선한 영들과 연결되고 불운은 악한 영들과 관련되었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강제적 적응의 불안감이 불운, 즉 영적인 혼령들의 불쾌감으로 간주되었다. 원시인은 자신의 타고난 경배 충동과 운수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개념작용으로부터 종교를 서서히 이끌어 내었다. 문명화된 사람은 이러한 우연한 사건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보험이라는 책략을 제공하고 있으며; 근대 과학은 허구적인 영들과 변덕스러운 신들 대신 수학적인 계산으로 보험 체제를 삼는다.

86:6.5 (956.1) 지나가는 각 세대들은 자기 조상들의 어리석은 미신들을 비웃는 반면, 개화(開化)된 후손들 중 일부를 더욱 비웃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할 사상과 경배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계속 지니고 있다.

86:6.6 (956.2) 그러나 원시인의 정신은 마침내 자신의 모든 타고난 생물학적 충동들을 초월하는 사상으로 지배되었으며; 사람은 마침내 물질적 충동에 대한 반응보다 나은 어떤 것을 기초로 하는 삶의 기술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원시적인 철학적 생활 방침의 시초(始初)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삶에 대한 초자연적 기준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만일 영적인 혼령이 화가 나면 불운을 가져오고 유쾌하면 행운을 가져다준다면, 인간의 행위가 그에 따라 조절되어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옳고 그름에 대한 개념이 진화를 완료하였으며; 이 모든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계시 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

86:6.7 (956.3) 이러한 개념들의 출현과 함께, 항상 화를 내는 영들을 달래기 위한 오랫동안의 낭비적인 투쟁, 즉 진화적인 종교적 두려움에 노예처럼 속박된 상태가 시작되었는데,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무덤들과 신전들과 희생제물들 그리고 사제계급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낭비하였다. 그것은 혹독하고 무시무시한 대가(代價)였지만, 그 만큼의 가치가 있었는데, 그것으로부터 사람이 상대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자연적인 의식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며; 인간의 윤리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7. 원시적 종교의 기능

86:7.1 (956.4) 미개인들은 대비책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불운에 대처하는 마법에 의한 대비책의 방법을 위하여, 두려움, 미신, 공포, 사제(司祭)에 대한 선물 등의 힘든 사례금을 기꺼이 지불하였다. 원시적인 종교는 단순히 사냥터가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었으며; 문명화된 사람은 산업의 재해와 근대적인 방식의 삶 속에서의 급박한 사정에 대비하는 물질적 대가를 지불한다.

86:7.2 (956.5) 현대 사회는 보험 업무를 사제들과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제거하여, 그것을 경제의 영역 속에 맡기고 있다. 종교는 점점 더 무덤 저편의 삶에 대한 대비책에 관여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적어도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운을 통제하기 위해 낭비적인 대가를 더 이상 지불하지 않는다. 종교는, 불운에 대비하는 보험이라는 책략으로 작용하던 그것의 이전 기능에 비하여 보다 높은 철학적 수준으로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86:7.3 (956.6) 그러나 종교에 대한 이 고대 관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숙명론적으로 되지 않게 그리고 절망적 비관 상태에 빠지지 않게 예방해 주었으며; 그들은 적어도 운명에게 영향을 주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혼령에 대한 두려움의 종교는, 인간들에게 자기 행실을 통제해야만 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인간의 운명을 조절하는 초물질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86:7.4 (956.7) 근대의 문명화된 인종들은 행운에 대한 해석과 평범한 불평등의 실존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지면서 혼령에 대한 두려움에서 막 벗어나고 있다. 인류는 불운에 대한 혼령-영 해석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성취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변천이 영적 원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잘못된 교리를 사람들이 포기하는 반면, 인간의 모든 불평등을 잘못된 정치적 적응과 사회적인 불공정성 그리고 산업 사회의 경쟁 탓으로 돌리도록 명령하는, 거의 똑같은 정도로 그릇된 가르침을 놀라울 정도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법률과 증가하는 자선사업 그리고 더욱 향상된 산업 재구성은, 아무리 그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유익하더라도, 출생이라는 사실들과 삶에 있어서의 사건들을 개선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사실들에 대한 파악과 자연의 법칙 속에서의 현명한 조작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룩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하게 해줄 것이다. 과학적 행위를 일으키는 과학적인 지식이, 소위 우연이라고 말하는 재난들에 대한 유일한 대책이다.

86:7.5 (957.1) 산업과 전쟁과 노예제도 그리고 시민 정부는, 천연적인 환경 속에서 인간의 사회적 진화에 반응하여 발생되었으며; 그와 유사하게 종교도 허구적인 혼령 세계의 가공(架空)의 환경에 반응하여 발생되었다. 종교는 자기-유지에 대한 진화적 발전이었으며, 근본적으로 잘못된 개념 속에서 그리고 완전한 비논리성 속에서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영향을 미쳐 왔다.

86:7.6 (957.2) 원시적 종교는, 잘못된 두려움의 강력하고도 장엄한 힘에 의해, 초자연적으로 기원된 진정한 영적 힘인 사고 섭리사의 증여를 위하여, 인간 정신이라는 토양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그 신성한 섭리사들은 하나님-두려움을 하나님-사랑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그 후로 항상 노력해 왔다. 진화는 속도가 느릴 수는 있지만, 반드시 효과적이다.

86:7.7 (957.3) [네바돈저녁별에 의해 제시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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