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족속,침입,class="gulimClass">의,북유럽,정복,나일,근처의,class="gulimClass">안드족속,지중해,섬들의,다뉴브의,안돈족속,세,백색,인종">


유랜시아 책 - 제80편 : 서방에서의 안드족속 확장

(USGNY[CM]-KOR-000-1996-3)

유랜시아 책   

부 III: 유랜시아의 역사

제80편 : 서방에서의 안드족속 확장



제80편 : 서방에서의 안드족속 확장

80:0.1 (889.1) 유럽의 청색인은, 비록 자체적으로 위대한 문화적 문명을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아담화(化) 된 종족들이 후대의 안드족속 침입자와 혼합됐을 때, 보라색 인종과 그들의 안드족속 계승자 시대 후로 유란시아에 계속 나타났던 것 중에서 진취적 문명을 달성하기에 가장 유능한 혈통 중 하나를 창출한 생물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80:0.2 (889.2) 근대의 백색 사람들은, 상익 인종, 즉 적색 인종 및 황색 인종의 일부 그리고 특별히 청색 인종과 섞이게 됐던 아담 혈통 중 살아남은 종족들을 흡수했다. 모든 백색 인종에는 상당한 비율의 순수한 안돈족속 혈통이 포함됐고 초창기 놋족속 종족들은 훨씬 높은 비율로 들어 있다.

1. 유럽에 들어간 아담족속

80:1.1 (889.3) 마지막 안드족속유프라테스 계곡에서 쫓겨나기 전, 그들의 형제 중 많은 사람이 모험가, 선생, 상인, 그리고 전사(戰士)로 유럽에 들어갔다. 보라색 인종이 활동하던 초창기 시대에는 지중해 해구(海溝)가 지브랄터 해협과 시칠리아 연결육지에 의해 보호 받았다. 사람의 아주 초창기 해상 교역 중 일부는 이런 내륙 호수들에서 이뤄졌는데, 북쪽에서 온 청색인과 남쪽에서 온 사하라인이 동쪽에서 온 놋족속아담족속과 그곳에서 만났다.

80:1.2 (889.4) 지중해 해구 동쪽 계곡에서, 놋족속은 자신의 가장 광범한 문화 중 하나를 이룩했고, 이 중심지들에서 유럽 남부 쪽으로 어느 정도 확산돼 들어갔지만 특히 아프리카 북부 쪽으로 더 많이 들어갔다. 넓은-머리의 놋족속-안드족속 시리아인은, 서서히 융기되는 나일 삼각주(三角洲)에 정착했으므로 도기(陶器) 제조술과 농업을 매우 일찍부터 도입했다. 또한 그들은 양, 염소, 소, 그리고 길들여진 다른 동물을 수입했고 크게 개선된 금속 가공법을 들여왔는데, 당시에는 시리아가 그런 산업의 중심지였다.

80:1.3 (889.5) 30,000년 넘는 동안, 이집트에는 메소포타미아인이 꾸준하게 이주해 들어왔는데, 그들을 따라 예술과 문화가 전해져 나일 계곡에 풍성하게 심어졌다. 그러나 엄청난 숫자의 사하라 사람이 유입돼 나일강 주변의 초창기 문명을 크게 악화시켰으므로 약 15,000년 전에는 이집트 문화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80:1.4 (889.6) 그러나 초창기 시절에는 아담족속의 서부 이주를 방해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사하라는 목동과 농사짓는 사람들이 널리 퍼져 있는 넓은 목초지였다. 사하라인은 제조업에 종사한 적 없었을 뿐 아니라, 도시를 건설한 적도 없었다. 그들은 사멸(死滅)된 녹색 및 오렌지색 인종들의 종족을 많이 간직한 남색-흑색 집단에 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습기 많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부유하고 평화로운 문명을 소멸(消滅)시키고 땅이 융기되기 전까지, 아주 제한된 양의 보라색 유전형질을 받았다.

80:1.5 (890.1) 아담의 피가 대부분의 인간 종족들에게 공유됐지만, 일부에게는 다른 경우들보다 더 확실하게 제공됐다. 인도의 혼합된 인종들과 아프리카에 있는 짙은 색 사람들은 아담족속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적색인이 멀리 이주해 아메리카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적색인과 자유롭게 섞였을 것이며, 황색인에게도 친절한 태도를 보였겠지만, 황색 인종도 너무 먼 아시아 지역에 있었으므로 마찬가지로 접촉하기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험심이나 애타심이 작용했을 때, 또는 유프라테스에서 쫓겨나게 됐을 때, 유럽에 있는 청색 인종들과 합동하기를 매우 자연스럽게 선택했다.

80:1.6 (890.2) 당시에 유럽을 지배하던 청색인에게는, 초창기에 이주하던 아담족속에게 불쾌감을 주는 종교적 관습이 전혀 없었고, 보라색 인종과 청색 인종은 서로 성적 매력을 많이 느꼈다. 청색 인종 중 가장 우수한 사람들은, 아담족속과 결혼하도록 허락 받음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 모든 청색 남성은 아담족속 여인의 호감을 살 수 있을 만큼 능숙하고 예술적인 상태가 되려는 야심을 품었고, 우수한 청색 여인의 최고 소원은 아담족속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

80:1.7 (890.3) 이주하는 이 에덴의 아들들은 청색 인종 중 가장 수준 높은 유형의 사람들과 서서히 결합했는데, 끈질기게 버티는 네안델탈 혈통 종족들을 무자비하게 멸절시키면서 자신의 문화적 풍습들을 활성화시켰다. 이런 종족 혼합 기법은, 열등한 종족들을 제거시킴과 결합돼, 우수한 청색인으로 구성된 12가지 이상의 강건하고 진보적 집단을 형성했는데, 그들 중 하나에게 너희는 크로-마뇽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80:1.8 (890.4) 이런 이유와 또 다른 이유들로 인해, 이주하기에 더 유리한 경로가 조금도 없었음에도,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초창기 물결이 거의 독점적으로 유럽을 향해 방향 잡았다. 그리고 근대 유럽 문명이 앞서도록 결정한 것은 바로 이런 환경이었다.

2. 기후와 지형의 변화

80:2.1 (890.5) 유럽으로 들어간 보라색 인종의 초창기 확장은, 상당히 갑작스런 어떤 특정한 기후 및 지형 변화에 의해 가로막혔다. 북쪽 얼음 벌판들이 물러감에 따라, 수분 많은 바람이 서쪽에서 북쪽으로 바뀌었고, 거대한 사하라의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들이 점차 불모의 사막 지대로 바뀌었다. 비교적 키-작고 거무스름하며 눈동자가 검고 길쭉한-머리의, 거대한 사하라 고원 거주자들이, 이런 건조 현상 때문에 흩어졌다.

80:2.2 (890.6) 보다 순수한 남색 요소들이 남쪽으로 이동해 중앙 아프리카의 밀림 지대에 이르렀고, 그것들은 그 후로 그곳에 계속 남았다. 비교적 더 많이 혼합된 집단들이 세 방향으로 퍼져나갔는데: 우수한 부족들은 서쪽으로 이주해 스페인으로 갔고 그곳에서 인접된 유럽 지역으로 들어갔으며, 후대에 지중해 지역에 있던 길쭉한-머리의 거무스름한 인종들의 중심을 형성했다. 진보가 가장 안 된 무리가 사하라 고원 동쪽으로 향했고 아라비아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인도를 거쳐 멀리 실론까지 이르렀다. 중간에 해당되는 집단은 북동쪽으로 이동해 나일 계곡에 이르렀고 팔레스틴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80:2.3 (890.7) 데칸에서 이란메소포타미아를 통과하고 지중해 양쪽 해안선을 따라 흩어졌던 근대의 민족들 가운데서 어느 정도 유사성이 나타남은, 이런 2차적 상익 토대 때문이다.

80:2.4 (890.8) 아프리카에서 이런 기후 변화가 일어날 무렵, 영국이 대륙에서 분리됐고, 덴마크가 바다 밑에서 융기된 반면, 지중해 서쪽 해구(海溝)를 막는 지브럴터 해협이 지진 영향으로 길을 열어주게 돼, 이 내륙 호수의 수위가 갑자기 높아져 대서양과 같은 높이가 됐다. 이윽고 시칠리아 연결육지가 가라앉으면서, 지중해라는 하나의 바다가 탄생됐고 대서양과 연결됐다. 이런 자연의 대격변으로 인해 수많은 인간 정착지가 홍수를 당했으며, 세계의 전체 역사 중 홍수에 의한 가장 많은 생명체 손실이 야기됐다.

80:2.5 (891.1) 지중해 분지가 이렇게 가라앉음으로써, 아담족속의 서쪽 방향 이동은 즉각 줄어든 반면, 사하라인이 대량으로 유입돼, 증가하는 인구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에덴 북쪽과 동쪽으로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아담 후손이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에서 북쪽으로 여행했을 때, 당시에 확장돼 있던 카스피 해와 산맥 울타리들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아담족속은 여러 세대 동안 사냥과 목축을 하고 정착지 주변 땅을 경작하면서 투르케스탄 전역으로 흩어졌다. 격조 높은 이 민족은 자신의 영역을 유럽으로 서서히 확장시켰다. 그러나 이 때 동쪽에서 유럽으로 들어간 아담족속은 청색인의 문화가 아시아 문화보다 수천 년 뒤쳐져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이 지역이 메소포타미아와 접촉이 거의 완벽하게 차단돼 왔기 때문이었다.

3. 크로-마뇽 청색인

80:3.1 (891.2) 청색인 문화의 고대 중심지들은 유럽의 모든 강을 따라 자리 잡았었지만, 지금은 솜므 강만 빙하기 이전 동안 흘렀던 동일한 경로를 따라 흐른다.

80:3.2 (891.3) 청색인이 유럽 대륙에 널리 퍼져있는 것으로 우리가 이야기하지만, 그곳에는 여러 인종적 유형이 있었다. 35,000년 전에도, 유럽 청색 인종들은 이미 적색 및 황색의 두 종족을 지닌 크게 혼합된 민족이었던 반면, 대서양 해안 지대와 오늘날의 러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상당한 양의 안돈족속 피를 흡수한 상태였고, 남쪽 지역에서는 사하라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인종 집단을 다 열거하려는 시도는 무익할 것이다.

80:3.3 (891.4) 아담 이후의 이런 초창기 시대 유럽 문명은, 청색인의 활동력과 예술이 아담족속의 창조적 상상력과 혼합돼 나타난 독특한 것이었다. 청색인은 활기 넘치는 인종이었지만, 아담족속의 문화적 및 영적 상태를 크게 저하시켰다. 매우 많은 사람이 처녀를 속이고 타락시키는 경향을 가졌으므로, 후자(後者)가 크로-마뇽에게 자신의 종교를 심어 주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10,000년 동안, 인도이집트에서 이룩된 종교적 발전에 비교할 때 유럽의 종교는 가장 쇠퇴한 시기에 있었다.

80:3.4 (891.5) 청색인은 자신의 모든 거래 관계에서 몹시 정직했으며, 혼합된 아담족속의 성적(性的) 악습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순결성을 높이 평가했는데, 전쟁으로 인해 남자가 부족할 경우에만 일부다처제를 허용했다.

80:3.5 (891.6) 크로-마뇽 사람들은 용감하고 선견지명 있는 인종이었다. 그들은 어린이 양육에 효과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수고에는 부모 둘 다 참여했고, 비교적 나이 많은 아이들의 협조가 충분히 활용됐다. 각각의 어린이는 동굴에서 보호 받으면서 부싯돌 만들기와 기술 익히는 훈련을 신중하게 받았다. 여자는 어려서부터, 가사(家事)의 기술과 미숙한 농업에 잘 숙달된 반면, 남자는 노련한 사냥꾼과 전사(戰士)였다.

80:3.6 (891.7) 청색인은 사냥하고 물고기 잡고 음식을 모았으며; 배 만드는 데서도 숙달됐다. 그들은 돌도끼를 만들어 나무를 베고, 통나무로 오두막을 지었는데, 일부는 땅 밑으로 들어가게 했고 짐승의 가죽으로 지붕을 했다. 그리고 시베리아에는 아직도 그와 비슷하게 오두막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남부 지대의 크로-마뇽인은 대개 돌로 지은 집과 동굴에서 살았다.

80:3.7 (892.1) 혹독한 겨울 동안에는 밤마다 동굴 입구에 파수꾼을 세워 동사(凍死)를 예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용감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예술가였으며; 아담족속과 혼합됨으로써 창조적 상상력이 갑자기 증진됐다. 청색인의 예술은, 짙은 색 피부를 가진 인종들이 아프리카에서 스페인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오기 전인, 약 15,000년 전에 최고로 발달됐다.

80:3.8 (892.2) 약 15,000년 전 알파인 삼림(森林)이 광범하게 퍼져 나갔다. 유럽의 사냥꾼들은 세계적인 풍성한 사냥터가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으로 변하게 한 것과 동일한 기후적 강압(强壓)에 의해 해안과 강변으로 쫓겨 갔다. 비바람이 북쪽으로 바뀌자, 유럽의 광활한 목초지는 삼림으로 뒤덮이게 됐다. 이런 갑작스럽고 거대한 기후 변경으로 인해, 유럽 인종들은 사냥하던 상태에서 목축하는 상태로 바뀌었고, 상당한 숫자는 어부(漁夫) 또는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 됐다.

80:3.9 (892.3) 이런 변화들이 문화적 진보를 가져온 반면, 특정한 생물학적 퇴보를 가져왔다. 그 전에 사냥 하던 시대에는, 우수한 부족들이 비교적 고상한 유형의 전쟁 포로와 결혼했고 그들이 보기에 열등한 사람은 반드시 멸절시켰다. 그러나 그들이 정착지를 개발하기 시작하고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기 시작한 후로는, 진부한 포로 중 다수를 노예로 남겨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대에 크로-마뇽 유형 전체를 엄청나게 타락시킨 것은 바로 이 노예들의 후손이었다. 이런 문화적 퇴보는, 동부로부터 메소포타미아인의 최종적이고도 총체적인 침입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크로-마뇽 유형과 문화를 재빨리 흡수하면서 그리고 백색 인종들의 문명을 시작하면서, 신선한 기운을 받게 될 때까지 계속됐다.

4. 유럽의 안드족속 침입

80:4.1 (892.4) 안드족속이 한결같은 흐름으로 유럽에 쏟아져 들어오는 동안, 일곱 차례에 걸친 주요 침입이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들은 세 개의 거대한 물결을 이루면서 말을 타고 들어왔다. 일부 사람은 에게 해 섬들을 거쳐 그리고 다뉴브 계곡으로 유럽에 들어왔으나, 비교적 초창기 대부분 사람과 비교적 더 순수한 종족의 사람들은 볼가 강과 강이 있는 목초지를 건너는 북쪽 길을 통해 북서부 유럽으로 이주했다.

80:4.2 (892.5) 세 번째와 네 번째 침입 사이에 떼 지어 이동한 안드족속이 북쪽에서 유럽에 들어왔는데, 시베리아에서 러시아의 강들과 발틱 의 길을 통해 이주했다. 그들은 북쪽에 있는 안드족속 부족들과 즉시 동화됐다.

80:4.3 (892.6) 순수한 보라색 인종의 비교적 초창기 확장은, 그들보다 후대의 약간군사적이고 정복하기 좋아하는 안드족속 후손보다 훨씬 더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아담족속은 평화를 사랑했지만; 놋족속은 호전적이었다. 이 혈통들의 합동은, 나중에 상익 인종과 섞이면서, 실제적인 군사 정복을 이룩한 유능하고 공격적인 안드족속을 형성했다.

80:4.4 (892.7) 그러나 서양에서 안드족속이 지배하도록 만든 진화적 요인은 말(馬)이었다. 흩어지던 안드족속은 말 때문에, 그 때까지 보지 못했던 기동력을 갖추게 됐는데, 말 탄 안드족속 중 마지막 집단은 재빨리 카스피 해를 돌아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그 전에 있었던 안드족속 물결들이 너무 느린 속도로 이뤄졌으므로 메소포타미아에서 멀어진 물결은 모두 와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후대의 물결들은 매우 빨리 진행됐으므로 밀착된 집단을 이루면서 유럽에 도착했고, 어느 정도 고차원적인 문화를 여전히 간직했다.

80:4.5 (893.1) 기원전 7,000년부터 2,000년 동안, 거칠게 말을 다루는 안드족속 기수(騎手)들이 출현했을 때, 중국유프라테스 지역을 제외하고, 인간거주 세계 전체는, 매우 제한된 문화적 진보를 10,000년 동안 이룩해 오고 있었다. 그들이 러시아 평원을 지나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청색인 중 가장 우수한 사람은 흡수하고 가장 퇴보된 사람은 멸절시켰을 때, 그들은 하나의 민족으로 혼합됐다. 이들이 소위 노르딕 인종이라 불리는, 스칸디나비아독일 그리고 앵글로색슨 사람들의 선조가 되는 인종들의 조상이었다.

80:4.6 (893.2) 우세한 청색 종족들이 북부 유럽 전반에 걸쳐 안드족속에 의해 오래지 않아 완전히 흡수됐다. 오직 라플란드에서만(그리고 브리타니에서 어느 정도) 옛 안돈족속이 비슷한 정도만이라도 자기 주체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5. 안드족속의 북유럽 정복

80:5.1 (893.3) 북부 유럽의 부족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투르케스탄 남쪽 러시아 지역을 통과해 꾸준히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에 의해 보강되고 증진됐으며, 말 탄 안드족속의 마지막 물결이 유럽을 휩쓸게 됐을 때는, 안드족속 유전형질을 소유한 그 지역 사람들이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는 숫자보다 거기에 이미 더 많이 있었다.

80:5.2 (893.4) 이 3,000년 동안, 북부에 있는 안드족속의 군사적 본부는 덴마크에 있었다. 이 중심지에서 계속적인 정복의 물결이 퍼져 나갔는데, 메소포타미아 정복자와 피정복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혼합되는 것을 지켜보는 세기(世紀)들이 흘러감에 따라 안드족속이 점점 줄어들고 백색 인종이 점점 많아졌다.

80:5.3 (893.5) 북쪽 지역에서 청색인이 흡수됐고 결국 말 탄 백색 인종 침략자들에게 굴복 당한 반면, 백색 인종과 혼합된 진보된 부족들은 크로-마뇽인으로부터 완강하고 계속적인 저항을 받게 됐지만, 그들은 뛰어난 지성과 계속 축적(蓄積)되는 생물학적 비축물에 힘입어, 그 전에 있던 인종을 전멸시켰다.

80:5.4 (893.6) 백색인과 청색인 사이의 결정적 투쟁은 솜므 강 계곡에서 벌어졌다. 이곳에서, 전성기에 도달한 청색 인종은 남쪽으로 이동하는 안드족속과 심한 투쟁을 벌였고, 이 크로-마뇽인은 백색 침입자들의 탁월한 전술(戰術) 앞에 굴복 당하기까지 500년 넘는 동안 자기 영토를 성공적으로 지킬 수 있었다. 솜므 강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북쪽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승리를 거둔 쏘르는, 북부 백색 부족들의 영웅이 됐으며 나중에는 그들 중 일부에 의해 신(神)으로 숭배됐다.

80:5.5 (893.7) 가장 오래 유지된 청색인 본거지(本據地)는 남부 프랑스에 있었지만, 마지막 극심한 군사적 저항은 솜므 강 주변에서 굴복 당했다. 후대의 정복은, 상업적 침투와 강(江)들 유역의 과도한 인구 증가에 의해 그리고 우수한 인종과의 지속적 상호 결혼에 의해 진행됐고, 열등한 인종을 냉혹하게 멸절시킴과 결부됐다.

80:5.6 (893.8) 안드족속 원로(元老)들로 구성된 부족 의회가 열등한 포로에 대해 부적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 그 포로는 복잡한 예식을 거쳐 샤만 사제(司祭)들에게 넘겨졌고, 그 사제는 그를 데리고 강으로 가서 “행복한 사냥터”로 들어가는 제례--익사(溺死)시킴--를 집행했다. 유럽의 백색 침입자들은, 자신의 대열로 빨리 흡수되지 않고 대항하는 모든 민족을 이런 방법을 통해 멸절시켰으며, 청색인은 그렇게 해서--그리고 빠른 속도로-- 멸종됐다.

80:5.7 (893.9) 크로-마뇽 청색인은 현대의 유럽 인종들을 위한 생물학적 기초의 구성 요소가 됐지만, 그들은 후대에 자신의 본거지를 정복한 강건한 사람들에 의해 흡수됨으로써만 살아남게 됐다. 청색 종족은 유럽의 백색 인종들에게 많은 육체적 생기와 억센 특징을 제공했지만, 피가 섞인 유럽 사람들의 유머와 상상력은 안드족속에서 왔다. 북부 지역의 백색 인종에서 이뤄진 이런 안드족속-청색 합동으로 말미암아 안드족속 문명의 즉각적인 상실, 즉 일시적 성질에 속하는 지연을 가져왔다. 결국, 이 북부 야만인의 잠재적 우수성이 모습을 드러냈고 오늘날 유럽 문명에서 절정에 달하게 됐다.

80:5.8 (894.1) 기원전 5,000년경, 진화하는 백색 인종들이, 독일과 북부 프랑스 그리고 영국 제도(諸島)를 포함하는 북부 유럽 전체를 지배했다. 중부 유럽은 청색인과 둥근-머리 안돈족속에 의해 한동안 통제됐다. 후자(後者)는 주로 다뉴브 계곡에 자리 잡았고 안드족속에 의해 완전히 쫓겨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6. 나일 근처의 안드족속

80:6.1 (894.2) 마지막 안드족속 이주가 발생된 시기부터, 유프라테스 계곡에서는 문화의 쇠퇴가 시작됐고, 문명의 직접 중심지는 나일 계곡으로 바뀌었다. 이집트는, 지구상에 있는 가장 진보된 집단의 본부로서, 메소포타미아의 후계자가 됐다.

80:6.2 (894.3) 나일 계곡은 메소포타미아 계곡보다 약간 먼저 홍수를 겪기 시작했지만 훨씬 적은 피해를 입었다. 이런 초창기 퇴보는, 계속 이주해 들어오는 안드족속에 의해 보충되는 그 이상의 효과가 있었으므로, 이집트 문화가 실제적으로는 유프라테스 지역에서 유래되기는 했지만 서서히 선두로 나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원전 5,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홍수기 동안, 이집트에는 독특한 일곱 집단이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를 제외한 전체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왔다.

80:6.3 (894.4) 유프라테스 계곡에서 마지막 탈출이 발생됐을 때, 이집트는 가장 숙련된 예술가와 기능공을 많이 받아들이는 행운을 얻었다. 이 안드족속 기능공들은, 강에서의 생활과 홍수 그리고 관개(灌漑)와 건조한 계절 등에 완전히 익숙했으므로 마치 고향에 있는 듯 매우 안정감을 가졌다. 그들은 보호된 나일 계곡 지역의 혜택을 누렸는데; 유프라테스 주변에 있을 때보다는 적으로부터 습격과 공격을 훨씬 적게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집트인의 금속 가공 솜씨를 크게 향상시켰다. 그들은 흑해 지역 대신 시내 산에서 가져오는 철광석을 이곳에서 가공했다.

80:6.4 (894.5) 이집트인은 지방마다 다른 신격들을 매우 일찍부터 모아서 하나의 정교한 국가적 신(神)들 체계를 세웠다. 그들은 광범한 신학 체계를 개발했고, 똑같이 광범하지만 부담 주는 제사장체제를 갖췄다. 몇 명의 다른 지도자는, 셋족속의 초창기 종교적 교훈 중 남은 것들을 되살리려 애쓰기도 했지만, 이런 노력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안드족속이집트에서 최초의 석조(石造) 건축물을 지었다. 돌로 지은 피라밋 중 처음 건축되고 가장 절묘한 것은, 안드족속 건축술의 천재였던 임호텝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가 수상(首相)으로 일할 때였다. 그 전에 세워진 건물들은 벽돌을 이용했고, 세계의 여러 다른 지역에서는 돌로 지은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었지만, 이집트에서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건축 기술은 이 위대한 건축가 시대 이후 계속 퇴보했다.

80:6.5 (894.6) 이런 문화의 찬란한 시기는 나일 주변의 내란(內亂)으로 인해 중단됐고, 그 나라는 메소포타미아 경우와 마찬가지로 곧 침략 당했는데, 황폐한 아라비아로부터 열등한 부족들과 남쪽으로부터 흑색인에 의해서였다. 그 결과로, 사회적 진보는 500년 넘는 동안 꾸준히 퇴보했다.

7. 지중해 섬들의 안드족속

80:7.1 (895.1) 동부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문화가 퇴보하는 동안, 지중해 동부에 있는 섬들의 우수한 문명은 어느 기간 유지됐다.

80:7.2 (895.2) 기원전 약 12,000년경, 안드족속 중 한 총명한 부족이 크레테 섬으로 이주했다. 이 섬은 그런 우수한 집단이 그토록 초창기에 정착한 유일한 섬이었고, 거의 2,000년이 지나서야 이 항해자들의 후손이 인접된 섬들로 퍼져 나갔다. 이 집단은 좁은-머리의, 키-작은 안드족속이었는데, 북쪽에 있는 놋족속 반족속 계열과 섞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키는 모두 6피트 미만이었고, 그들보다 키가 크며 열등한 동료들에 의해 본토에서 완전히 쫓겨난 사람들이었다. 크레테 섬으로 이주한 이 사람들은, 옷감 짜기, 금속 가공, 도예술, 배수시설, 그리고 돌을 건축 재료로 사용함에서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기록하는 일에 종사했고 목축업과 농사짓는 일을 했다.

80:7.3 (895.3) 그들이 크레테 섬에 정착한 후 거의 2,000년이 흐른 뒤, 키가 큰 아담선 후손 중 한 무리가 북부 지역의 섬을 거쳐 그리스로 들어왔는데, 메소포타미아 북쪽에 있는 고원지대의 고향으로부터 거의 똑바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리스인의 선조인 이 사람들은 아담선라타의 직계 후손인 사토에 의해 서쪽으로 인도됐다.

80:7.4 (895.4) 최종적으로 그리스에 정착한 이 집단은, 아담선족속의 두 번째 문명의 마지막을 장식한 선택되고 우수한 민족이었던 375명으로 구성됐다. 이런 아담선 후대 자손은 신흥(新興) 백색 인종 중 가장 귀중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매우 지적인 계층이었고, 육체적으로도 호감을 샀는데, 첫 번째 에덴 시대 이후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80:7.5 (895.5) 그리스에게 제도(諸島) 지역은 이윽고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의 뒤를 이어 서양의 무역, 예술,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이집트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아담선족속 선구자들의 문화를 제외하고는, 에게해 지방의 모든 예술과 과학 역시 실제적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됐다. 이 그리스아담선족속 민족의 모든 예술과 천재성은 아담선, 즉 아담이브의 첫째 아들과, 캘리개스챠 왕자의 순수한 놋족속 참모로부터 이어진 혈통을 이어받은 한 딸인 그의 비범한 둘째 부인에게서 나온 자손의 직접 유산이었다. 그리스인이 자신을 신들과 초인간적 존재들로부터 탄생된 직계 후손으로 여기는 신화적 전승들을 갖고 있음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80:7.6 (895.6) 에게해 지역은 다섯 차례에 걸친 뚜렷한 문화적 단계를 지나왔는데, 단계가 지날 때마다 영적 수준이 저하됐고, 그리스의 후기 세대들이 다뉴브 지역에서 사들인 노예들의 급속도로 증가하는 진부한 후손의 압력에 눌려, 최후의 영화롭던 시대는 머지않아 소멸됐다.

80:7.7 (895.7) 가인의 후손의 어머니 숭배 종파가 최고로 유행됐던 것은 바로 이 시기에 크레테 섬에서였다. 이 종파(宗派)는 이브를 “대모(大母)”로 숭배하면서 이브에게 영광 돌렸다. 이브의 형상이 도처에 있었다. 대중을 위한 수천 개의 신전이 크레테 섬소아시아 전역에 세워졌다. 그리고 어머니를 숭배하는 이 종파는 그리스도 시대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는데, 나중에는, 예수의 이 세상 어머니였던 마리아에게 영광 돌리고 숭배함으로 변장하면서 초창기 그리스도교와 합쳐졌다.

80:7.8 (895.8) 기원전 약 6,500년경까지, 안드족속의 영적 유산에 큰 퇴보가 계속됐다. 이 아담 후손은 광범하게 흩어졌고, 보다 오래되고 숫자가 많은 인간 종족들에게 삼켜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안드족속 문명의 이런 쇠퇴는, 그들의 종교적 표준의 소멸과 함께, 비참한 상황에 있는 이 세상 종족들을 영적(靈的)으로 가난하게 내버려뒀다.

80:7.9 (896.1) 기원전 5,000년경, 3개의 가장 순수한 아담 후손 종족이 수메르와 북부 유럽 그리고 그리스에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전체는, 아라비아에서 스며들어오는 혼합되고 짙은 색의 종족들의 물결에 의해 서서히 저하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열등한 사람들의 도래는, 안드족속의 생물학적 및 문화적 잔재가 더 널리 흩어지도록 기여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 전체에서, 더 모험심 많은 민족들이 서쪽으로 쏟아져 나와 여러 섬으로 들어갔다. 이 이주민은 곡식과 채소를 재배했고 길들인 동물을 가져갔다.

80:7.10 (896.2) 기원전 5,000년경, 진보적인 메소포타미아인의 강력한 군대가 유프라테스 계곡에서 밖으로 이동해 키프러스 섬에 정착했는데, 이 문명은 2,000년 정도 지난 후 북쪽에서 들어온 야만적인 유랑민 무리에 의해 전멸됐다.

80:7.11 (896.3) 또 다른 거대한 이주민이, 후대의 칼타고 지역에서 가까운 지중해 연안에 정착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에서 많은 숫자의 안드족속스페인으로 들어갔고 나중에는, 일찍이 에게 제도에서 이탈리아로 들어왔던 그들의 동족과 스위스에서 섞였다.

80:7.12 (896.4)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의 문화적 퇴보를 답습할 때, 매우 유능하고 진보를 이룩한 여러 가족이 크레테 섬으로 피신했으며, 그렇게 해서, 이미 진보된 이 문명을 크게 증대시켰다. 그리고 이집트로부터 열등한 집단들이 들어와 크레테 섬의 문명이 위협 당하자, 문화가 매우 발달된 가족들이 서쪽으로 이동해 그리스로 들어갔다.

80:7.13 (896.5) 그리스인은 위대한 선생과 예술인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상인과 식민지 개척자였다. 그들은 자신의 예술과 상업을 삼켜버린 열등한 물결에 결국 압도당하게 되기 전에는, 성공적으로 많은 문화적 전초기지를 서쪽 방향에 세웠기 때문에 초창기 그리스 문명에서 엄청난 진보가 남부 유럽의 후대 민족들 속에 계속 이뤄졌고, 이런 아담선족속의 혼합된 후손 중 다수는 주변에 있는 대륙(大陸)의 부족들에 합병됐다.

8. 다뉴브의 안돈족속

80:8.1 (896.6) 유프라테스 계곡의 안드족속 민족 중 북쪽으로 이주해 유럽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청색인과 섞였고,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지중해 지역으로 들어가, 남아있는 사하라인과 남부의 청색인과 섞였다. 그리고 백색 인종의 이 두 부류는, 당시에, 그리고 현재에도, 이 중심 지역들에 오랫동안 거주해 왔던 초창기 안돈족속 부족 중 산악 지역에 살아남은 넓은-머리의 사람들에 의해 널리 흩어졌다.

80:8.2 (896.7) 안돈 후손은 중앙과 남부 유럽의 산악지대 대부분으로 분산됐다. 그들은 소아시아에서 도착된 사람들에 의해 종종 보충됐는데, 그들은 상당한 힘으로 그 지역을 점령했다. 고대의 헷족속안돈족속 혈통에서 직접 기원됐는데; 그들의 창백한 피부와 넓은 머리가 그 종족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이 종족이 아브라함의 조상을 낳았고, 그로부터 시작된 유대인 후손의 독자적 얼굴 모양에 많은 영향을 줬는데, 그 후손은 안드족속으로부터 유래된 문화와 종교를 간직하면서, 확실히 색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그들의 언어는 안돈족속과 뚜렷이 일치했다.

80:8.3 (897.1) 이태리스위스 그리고 남부 유럽 호수의 퇴적지(堆積地) 또는 통나무 방파제 위에 세운 집에 거주한 부족들은, 아프리카인에게 해 사람들 그리고 더 특별하게는 다뉴브 이주민의 확장하는 경계선에 해당했다.

80:8.4 (897.2) 다뉴브인안돈족속이었고, 발칸 반도를 통해 유럽에 들어왔던 농부와 목동이었으며, 다뉴브 계곡을 따라 서서히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질그릇을 만들었고 땅을 경작했으며 계곡에서 사는 것을 선호(選好)했다. 다뉴브인 중 가장 북쪽 거주지는 벨기에 리지에 있었다. 이 부족들은, 자신의 문화적 중심지와 근원지에서 멀리 이동하면서 급속도로 저하됐다. 최고의 질그릇은 비교적 초창기 정착지의 작품이다.

80:8.5 (897.3) 다뉴브인크레테에서 온 선교사들이 활동한 결과로 어머니 숭배자가 됐다. 이 부족들은 작은 배를 타고 소아시아 해안에서 온 안돈족속 항해자들과 나중에 혼합됐는데, 그들 역시 어머니 숭배자였다. 그리하여 중앙 유럽 대부분에는 넓은-머리의 백색 인종의 혼합된 유형 사람들이 일찍부터 자리 잡았고, 그들은 어머니 숭배 그리고 죽은 사람을 화장(火葬)하는 종교 제례를 신봉했는데, 어머니 숭배 종파에서는 돌로 만든 오두막에서 죽은 사람을 태우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9. 세 백색 인종

80:9.1 (897.4) 안드족속의 이주가 끝나게 되면서 유럽에서 인종적 혼합은 다음과 같은 세 백색 인종으로 일반화됐다:

80:9.2 (897.5) 1. 북부의 백색 인종. 소위 노르딕 인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주로 청색인과 안드족속을 구성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안돈족속 핏줄이 섞였고, 적색과 황색의 상익도 비슷한 양으로 섞여 있었다. 그리하여 북부의 백색 인종은 이 네 가지 가장 바람직한 인간 혈통을 모두 포함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유전자는 청색인에서 왔다. 전형적인 초창기 노르딕인은 길쭉한-머리에 키가 컸으며 금발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인종은 오래 전에 백색 민족의 모든 지류(支流)와 완전히 혼합됐다.

80:9.3 (897.6) 침입하는 노르딕인과 충돌한 유럽의 원시적 문화는, 청색인과 피가 섞인 퇴화하는 다뉴브인이 이룩한 것이었다. 노르딕-덴마크 문화와 다뉴브-안돈족속 문화는 라인에서 서로 만나 혼합됐는데, 오늘날 독일에 두 인종 집단이 실존하고 있음에 의해 잘 알 수 있다.

80:9.4 (897.7) 노르딕인발틱 해안에서 계속적으로 호박(琥珀)을 매매했는데, 브렌너 통로를 통해 다뉴브 계곡에 사는 넓은머리 사람들과 큰 교역을 이뤘다. 다뉴브인과의 이런 광범한 접촉으로 인해, 북부 지역의 이 사람들이 어머니를 숭배하게 됐고, 죽은 사람을 화장(火葬)이 수천 년 동안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시행됐다. 유럽 전역에 매장 풍습이 있었음에도, 초창기 백색 인종의 유골이 발견되지 않음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돌과 진흙으로 만든 납골(納骨) 단지 속에서 그 재만 발견될 수 있다. 또한 이 백색인은 집을 건축했고; 결코 동굴에서 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백색인의 초창기 문화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음을 설명하는데, 그에 반해 그 전에 있었던 크로-마뇽인 유형은 동굴과 석굴 속에 밀봉되어 잘 간직돼 왔다. 사실 그러했듯이, 한 때 유럽의 북부 지역에는 퇴보하는 다뉴브인과 청색인의 원시적 문화가 있었고 그 다음으로는 갑자기 나타난 그리고 매우 우수한 백색인의 문화가 있었다.

80:9.5 (897.8) 2. 중앙의 백색 인종. 이 집단은, 청색과 황색 그리고 안드족속의 종족들을 포함하고, 주로 안돈족속이다. 이 민족은 머리가-넓고 가무잡잡하며 땅딸막하다. 그들은 노르딕 종족과 지중해의 종족 사이를 쐐기 모양으로 갈라놓는데, 그 꼭대기는 프랑스 동부를 관통하고 넓은 그 하부(下部)는 아시아에 자리 잡았다.

80:9.6 (898.1) 안돈족속은 거의 20,000년 동안, 안드족속에 의해 점점 더 멀리 중앙 아시아 북쪽으로 밀려났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점점 건조해지는 기후 때문에 이 안돈족속투르케스탄으로 돌아왔다. 이 안돈족속은 수천 년 계속 남쪽으로 밀려왔는데, 카스피 해흑해 부근에서 나뉘어, 발칸우크라이나 두 길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갔다. 이 침입에는 아담선의 자손 중 남은 집단들이 포함됐으며, 그 침입 기간 중 하반기(下半期)에는, 상당한 숫자의 이란 안드족속뿐 아니라 셋족속 제사장들의 후손 중 많은 사람도 동행했다.

80:9.7 (898.2) 기원전 2,500년경, 안돈족속 중 서쪽 방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유럽에 이르렀다. 그리고 투르케스탄 언덕에 있던 야만인이 메소포타미아 전역(全域)과 소아시아 그리고 다뉴브 분지에 범람(氾濫)하게 됨으로써, 그 때까지 중에서 가장 심각하고 오래 지속된 문화적 퇴보가 일어나게 됐다. 이 침입자들은 중앙 유럽에 있는 종족들의 성품이 분명히 안돈족속과 비슷하도록 만들었는데, 알파인답게 계속 남았다.

80:9.8 (898.3) 3. 남부의 백색 인종. 거무스름한 이 지중해 인종은 안드족속과 청색인의 혼혈로 이뤄졌는데, 북쪽 경우보다는 안돈족속의 혈통이 적게 들어 있었다. 또한 이 집단은 사하라인을 통해 상당한 양의 2차적 상익 핏줄을 흡수했다. 후대에 이르러서는, 백색 인종의 이 남부 집단에, 동부 지중해인으로부터 전달된 강력한 안드족속 요소들이 주입됐다.

80:9.9 (898.4) 아무튼, 지중해의 근해(近海) 지역들은 기원전 2,500년에 있었던 거대한 유목민 침입이 있을 때까지 안드족속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유목민이 동부 지중해 구역들을 침입했을 때, 육상(陸上) 통행과 거래는 이 때 수세기 동안 거의 정지된 상태였다. 이런 육상 교통의 방해로 인해 해상 통행과 거래가 크게 확장됐으며; 지중해에서 배로 운반되는 교역(交易)은 약 4,500년 전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런 해상 교통 발전의 결과로, 지중해 분지의 연안(沿岸) 전체 지역 전반에 걸쳐 안드족속 후손이 갑작스럽게 확산됐다.

80:9.10 (898.5) 이런 인종적 혼합은, 남부 유럽 인종으로 하여금 전체 중에서 가장 많이 혼합되도록 하는 기초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 인종은 더 심한 혼합 과정에 들어갔는데, 그 중에서도 청색-황색-안드족속이 합쳐진 아라비아 민족과 많이 혼합됐다. 이 지중해 연안 인종은, 사실, 주변 사람들과 아주 자유스럽게 섞여, 실제로는 서로 다른 유형임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됐지만, 일반적으로 그 구성원들은 키가 작고 길쭉한-머리와 거무스름한 피부를 지녔다.

80:9.11 (898.61) 북쪽 지역에서는 전쟁과 결혼을 통해 안드족속이 청색 인종의 흔적을 없앴지만, 남부에서는 그들이 많이 살아남았다. 바스크인베르베르인은 살아남은 이 종족의 두 지류(支流)를 대표하지만, 이 사람들조차 사하라인과 완전히 섞였다.

80:9.12 (898.7) 이와 같은 내용은 기원전 약 3,000년경 중앙 유럽에서 나타났던 인종 혼합에 대한 설명이다. 아담의 부분적 불이행에도, 비교적 우수한 유형들이 혼합됐다.

80:9.13 (898.8) 이 시기는 신석기 시대에 해당되며 도래되는 청동기 시대와 교차되는 때였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청동기 시대가 어머니 숭배와 관련된다. 남부 프랑스스페인에서는 신석기 시대가 태양 숭배와 관련된다. 이 시기에는 둥글고 지붕이 없는 태양 신전들을 세웠다. 유럽의 백색 인종들은 정력적인 건축가였고, 태양의 상징으로 거대한 돌 기념비 세우기를 좋아했는데, 그들의 후손이 스톤헨지를 세움도 그런 성향 때문이었다. 태양 숭배의 유행이, 이때 남부 유럽에서 농업이 크게 번창했음을 보여준다.

80:9.14 (899.1) 비교적 최근인 이 태양 숭배 시기의 미신들이 브리타니 반도의 풍속에서 지금도 존속한다. 비록 1,500년 전에 그리스도교화 됐지만, 이 브리타니 사람들은 악마의 눈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신석기 시대에 사용하던 마법의 장식물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번갯불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뇌석(雷石)을 여전히 굴뚝 속에 넣어둔다. 브리타니인스칸디나비아노르딕인과 한 번도 섞인 적 없었다. 그들은 서부 유럽에 있었던 순수한 안돈족속 주민 중 생존자인데, 지중해 연안 혈통들과 혼합됐다.

80:9.15 (899.2) 그러나 백색 사람들을 노르딕알파인 그리고 지중해 연안 주민으로 분류하려 생각함은 잘못이다. 그렇게 구분하기에는 전체적으로 너무 많이 피가 섞였기 때문이다. 한때는 백색 인종을 그런 계통으로 상당히 잘 분류할 수 있었지만, 그 후로 광범한 혼합이 발생됐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명쾌하게 그 차이를 밝히기가 불가능하게 됐다. 심지어 기원전 3,000년경에도, 고대의 사회적 집단들이 하나의 인종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은 오늘날 북 아메리카 주민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다.

80:9.16 (899.3) 유럽의 이 문화는 5,000년 동안 계속 자라면서 어느 정도 섞였다. 그러나 언어 장벽으로 인해, 다양한 서양 민족끼리 완전한 왕래가 방해 받았다. 이 문화는 지난 세기 동안 북 아메리카의 국제적으로 구성된 주민들 속에서 섞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체험해 오고 있으며; 그 대륙의 미래는, 현재는 물론 미래의 주민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종적 유전인자들의 자질(資質)에 의해서 뿐 아니라 유지되는 사회적 문화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80:9.17 (899.4) [네바돈천사장에 의해 제시됐음]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