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랜시아 책 - 제80편 : 서방에서의 안드족속 확장

(USGNY[CM]-KOR-000-1996-3)

유랜시아 책   

부 III: 유랜시아의 역사

제80편 : 서방에서의 안드족속 확장



제80편 : 서방에서의 안드족속 확장

80:0.1 (889.1) 유럽의 청색인은, 비록 자체적으로 위대한 문화적 문명을 성취하지는 못하였지만, 아담화(化) 된 종족들이 후대의 안드족속 침입자들과 혼합되었을 때, 보라색 인종과 그들의 안드족속 계승자들의 시대 이후로 유란시아에 계속 나타났던 것들 중에서 진취적인 문명을 달성하기에 가장 유능한 혈통들 중 하나를 창출한 생물학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80:0.2 (889.2) 근대의 백색 민족들은, 상익 인종들 즉 적색 인종 및 황색 인종의 일부 그리고 특별히 청색 인종과 섞이게 되었던 아담 혈통 중에서 살아남은 종족들을 흡수하였다. 모든 백색 인종들 속에는 상당한 비율의 순수한 안돈족속 혈통이 포함되어 있으며 초창기의 놋족속 종족들은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들어 있다.

1. 유럽으로 들어간 아담족속들

80:1.1 (889.3) 마지막 안드족속들이 유프라테스 계곡에서 쫓겨나기 전에, 그들의 형제들 중 많은 사람들이 모험가들, 선생들, 상인들, 그리고 전사(戰士)들로 유럽에 들어갔다. 보라색 인종이 활동하던 초창기 시대 동안에는 지중해 해구(海溝)가 지브랄터 해협과 시칠리아 연결육지에 의해 보호를 받았다. 사람의 아주 초창기 해상 교역 중 일부는 이러한 내륙 호수들에서 이루어졌는데, 북쪽으로부터 온 청색인들과 남쪽에서 온 사하라인들이 동쪽으로부터 온 놋족속들 및 아담족속들과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80:1.2 (889.4) 지중해 해구의 동쪽 계곡에서, 놋족속들은 그들의 가장 광범위한 문화들 중 하나를 이미 이룩하고 있었고, 이 중심지들로부터 유럽의 남부 쪽으로 어느 정도 확산되어 들어갔지만 특별히 아프리카 북부 쪽으로 더 많이 들어갔다. 넓은-머리의 놋족속-안드족속 시리아인들은, 서서히 융기되는 나일 삼각주(三角洲)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도기(陶器) 제조술과 농업을 매우 일찍부터 도입하였다. 또한 그들은 양, 염소, 소, 그리고 길들여진 다른 동물들을 수입하였으며 크게 개선된 금속 가공 방법을 들여왔는데, 그 당시에는 시리아가 그러한 산업의 중심지였다.

80:1.3 (889.5) 30,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집트에는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꾸준하게 이주해 들어왔는데, 그들을 따라 예술과 문화가 전해져서 나일 계곡에 풍성하게 심어졌다. 그러나 엄청난 숫자의 사하라 민족들이 유입되어 나일강 주변의 초창기 문명을 크게 악화시켰기 때문에 약 15,000년 전에는 이집트의 문화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80:1.4 (889.6) 그러나 초창기 시대에는 아담족속들의 서부 이주를 방해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사하라는 목동들과 농사짓는 사람들이 널리 퍼져 있는 넓은 목초지였다. 사하라에 사는 이 사람들은 제조업에 종사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를 건설한 적도 없었다. 그들은 사멸(死滅)된 녹색 및 오렌지색 인종들의 종족을 많이 간직한 남색-흑색 집단에 속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습기가 많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부유하고 평화로운 문명을 소멸(消滅)시키고 그 땅이 융기되기 전까지, 아주 제한된 양의 보라색 유전형질을 받았다.

80:1.5 (890.1) 아담의 피가 대부분의 인간 종족들에게 공유되었지만, 일부에게는 다른 경우들보다 더 확실하게 제공되었다. 인도의 혼합된 인종들과 아프리카에 있는 짙은 색의 민족들은 아담족속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였다. 적색인이 멀리 이주하여 아메리카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적색인과 자유롭게 섞였을 것이며, 황색인에게도 친절한 태도를 보였겠지만, 황색 인종도 너무 먼 아시아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접촉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험심이나 애타심이 작용하였을 때, 또는 유프라테스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유럽에 있는 청색 인종들과 합동하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선택하였다.

80:1.6 (890.2)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청색인들에게는, 초창기에 이주하던 아담족속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종교적 관습이 전혀 없었고, 보라색 인종과 청색 인종은 서로 성적 매력을 매우 많이 느꼈다. 청색 인종들 중 가장 우수한 사람들은, 아담족속과 결혼하도록 허락 받는 것을 매우 큰 영광으로 여겼다. 모든 청색 남성은 어떤 아담족속 여인의 호감을 살 수 있을 만큼 능숙하고 예술적인 상태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고, 우수한 청색 여인의 최고 소원은 아담족속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

80:1.7 (890.3) 이주하는 이 에덴의 아들들은 청색 인종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유형의 사람들과 서서히 결합하게 되었는데, 끈질기게 버티는 네안델탈 혈통의 종족들을 무자비하게 멸절시키면서 자기들의 문화적 풍습들을 활성화시켰다. 이러한 종족 혼합 기법은, 열등한 종족들을 제거시키는 것과 결합되어, 우수한 청색인들로 구성된 12가지 이상의 강건하고 진보적인 집단들을 형성하였는데, 그들 중 하나에게 너희들은 크로-마뇽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80:1.8 (890.4) 이러한 이유들과 또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이주하기에 더 유리한 경로가 조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초창기 물결이 거의 독점적으로 유럽을 향해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근대 유럽 문명이 앞서도록 결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환경이었다.

2. 기후와 지형의 변화

80:2.1 (890.5) 유럽으로 들어간 보라색 인종의 초창기 확장은, 어떤 상당히 갑작스러운 특정한 기후 및 지형 변화에 의해 가로막혔다. 북쪽 얼음 벌판들이 물러감에 따라, 수분이 많은 바람이 서쪽에서 북쪽으로 바뀌었고, 거대한 사하라의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 지역들이 점차적으로 불모의 사막 지대로 바뀌었다. 비교적 키가-작고 거무스름하며 눈동자가 검고 길쭉한-머리의, 거대한 사하라 고원 거주자들이, 이러한 건조 현상 때문에 흩어졌다.

80:2.2 (890.6) 보다 순수한 남색 요소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중앙 아프리카의 밀림 지대에 이르렀고, 그 후로 그들은 그곳에 계속 남아있게 되었다. 비교적 더 많이 혼합된 집단들이 세 방향으로 퍼져나갔는데: 우수한 부족들은 서쪽으로 이주하여 스페인으로 갔고 그곳에서부터 인접된 유럽 지역으로 들어갔으며, 후대에 지중해 지역에 있었던 길쭉한-머리의 거무스름한 인종들의 중심을 형성하였다. 가장 진보가 안 된 무리들은 사하라 고원 동쪽으로 향하였고 아라비아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인도를 거쳐 멀리 떨어진 실론까지 이르렀다. 중간에 해당되는 집단은 북동쪽으로 이동하여 나일 계곡에 이르렀고 팔레스틴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80:2.3 (890.7) 데칸으로부터 이란메소포타미아를 통과하고 지중해의 양쪽 해안선을 따라 흩어졌던 근대의 민족들 가운데에서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2차적 상익 토대 때문이다.

80:2.4 (890.8) 아프리카에서 이러한 기후 변화가 일어날 무렵, 영국이 대륙으로부터 분리되었고, 덴마크가 바다 밑으로부터 융기되었으며, 반면에 지중해의 서쪽 해구(海溝)를 막는 지브럴터 해협이 지진의 영향으로 길을 열어주게 되어, 이 내륙 호수의 수위(水位)가 갑자기 높아져서 대서양과 같은 높이가 되었다. 이윽고 시칠리아 연결육지가 가라앉으면서, 지중해라는 하나의 바다가 탄생되었고 대서양과 연결되었다. 이러한 자연의 대격변으로 인하여 인간의 수많은 정착지들이 홍수를 당하였으며, 세계의 전체 역사 중에서 홍수에 의한 가장 많은 생명체의 손실이 야기되었다.

80:2.5 (891.1) 지중해 분지가 이렇게 가라앉음으로써, 아담족속들의 서쪽 방향 이동은 즉각적으로 줄어들었고, 반면에 사하라인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그들은 증가하는 인구를 해결하기 위해 에덴의 북쪽과 동쪽으로 탈출구(脫出口)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으로부터 아담의 후손들이 북쪽으로 여행하게 되면서, 그들은 그 당시에 확장되어 있었던 카스피 해와 산맥 울타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세대 동안 아담족속들은 사냥과 목축을 하고 정착지 주변의 땅을 경작하면서 투르케스탄 전역으로 흩어졌다. 격조 높은 이 민족은 자기들의 영역을 서서히 유럽으로 확장시켰다. 그러나 이 때 동쪽으로부터 유럽으로 들어간 아담족속들은 청색인의 문화가 아시아의 문화보다 수천 년 뒤쳐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이 지역이 메소포타미아와의 접촉이 거의 완벽하게 차단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3. 크로-마뇽 청색인

80:3.1 (891.2) 청색인의 문화의 고대 중심지들은 유럽의 모든 강들을 따라 자리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솜므 강만이 빙하기 이전 동안에 흘렀던 동일한 경로(徑路)를 따라 흐르고 있다.

80:3.2 (891.3) 우리가 청색인이 유럽 대륙에 널리 퍼져있는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곳에는 여러 인종적 유형들이 있었다. 심지어 35,000년 전에, 유럽의 청색 인종들은 이미 적색 및 황색의 두 종족들을 지니고 있는 크게 혼합된 민족이었으며, 반면에 대서양 해안 지대와 오늘날의 러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상당한 양의 안돈족속 피를 흡수한 상태였고, 남쪽 지역에서는 사하라의 민족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인종적 집단들을 낱낱이 열거하고자 시도하는 일은 무익할 것이다.

80:3.3 (891.4) 아담 이후의 이러한 초창기 시대의 유럽 문명은, 청색인들의 활동력과 예술이 아담족속들의 창조적인 상상력과 혼합되어 나타난 독특한 것이었다. 청색인들은 활기가 넘치는 인종이었지만, 아담족속들의 문화적 및 영적 상태를 크게 저하시켰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처녀들을 속이고 타락시키는 경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후자(後者)가 크로-마뇽들에게 자기들의 종교를 심어 주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10,000년 동안, 인도이집트에서 이룩된 종교적 발전에 비교해 볼 때 유럽의 종교는 가장 쇠퇴한 시기에 있었다.

80:3.4 (891.5) 청색인들은 그들의 모든 거래 관계에 있어서 몹시 정직하였으며, 혼합된 아담족속들의 성적(性的)인 악습(惡習)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순결성(純潔性)을 높이 평가하였는데, 전쟁으로 인하여 남자들이 부족할 경우에만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였다.

80:3.5 (891.6) 크로-마뇽 민족들은 용감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인종이었다. 그들은 어린이를 교양(敎養)시키는 일에 있어서 효과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수고에는 부모 둘 다 참여하였고, 비교적 나이가 많은 아이들의 협조가 충분히 활용되었다. 각각의 어린이는 동굴 속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부싯돌을 만드는 일과 기술을 익히는 훈련을 신중하게 받았다. 어려서부터, 여자들은 가사(家事)에 있어서의 기술과 미숙한 농업에 잘 숙달되어 있었고, 반면에 남자들은 노련한 사냥꾼과 전사(戰士)들이었다.

80:3.6 (891.7) 청색인들은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음식을 모았으며; 배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숙달되어 있었다. 그들은 돌도끼를 만들어 나무들을 베고, 통나무로 오두막을 지었는데, 일부는 땅 밑으로 들어가게 하였고 짐승의 가죽으로 지붕을 덮었다. 그리고 시베리아에는 아직도 그와 비슷하게 오두막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남부 지대의 크로-마뇽인들은 대개 돌로 지은 집과 동굴에서 살았다.

80:3.7 (892.1) 혹독한 겨울 동안에는 밤마다 동굴 입구에 파수꾼을 세워서 동사(凍死)하는 것을 막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용감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예술가들이었으며; 아담족속과 혼합됨으로써 창조적인 상상력이 갑자기 증진되었다. 청색인의 예술은, 짙은 색의 피부를 가진 인종들이 아프리카로부터 스페인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오기 이전인, 약 15,000년 전에 최고로 발달되었다.

80:3.8 (892.2) 약 15,000년 전에 알파인 삼림(森林)이 광대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유럽의 사냥꾼들은 세계적인 풍성한 사냥터가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으로 변하게 한 것과 동일한 기후적 강압(强壓)에 의해 해안과 강변으로 쫓겨 가고 있었다. 비바람이 북쪽으로 바뀌자, 유럽의 광활한 목초지는 삼림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이러한 갑작스럽고도 거대한 기후 변경으로 말미암아, 유럽의 인종들은 사냥을 하던 상태에서 목축을 하는 상태로 바뀌었고, 상당한 숫자는 어부(漁夫)들 또는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80:3.9 (892.3) 이러한 변화들은 문화적인 진보를 가져온 반면, 특정한 생물학적 퇴보를 가져왔다. 그 전에 사냥을 하던 시대 동안에는, 우수한 부족들이 비교적 고상한 유형의 전쟁 포로들과 결혼하였고 그들이 보기에 열등한 사람들은 반드시 멸절시켰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착지를 개발하기 시작하고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평범한 포로들 중 다수를 노예로 남겨두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후대에 크로-마뇽인 유형 전체를 엄청나게 타락시킨 것은 바로 이 노예들의 후손들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퇴보는,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최종적이고도 총체적인 침입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크로-마뇽인 유형과 문화를 재빨리 흡수하면서 그리고 백색 인종들의 문명을 시작하면서, 동부로부터의 신선한 기운을 받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4. 유럽의 안드족속 침입

80:4.1 (892.4) 안드족속들이 한결같은 흐름으로 유럽에 쏟아져 들어오는 동안, 일곱 차례에 걸친 주요 침입이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들은 세 개의 거대한 물결을 이루면서 말을 타고 들어왔다. 일부의 사람들은 에게 해의 섬들을 거쳐서 그리고 다뉴브 계곡으로 유럽에 들어왔으나, 비교적 초창기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교적 더 순수한 종족의 사람들은 볼가 강과 강이 있는 목초지 지역을 건너는 북쪽의 길을 통하여 북서부 유럽으로 이주하였다.

80:4.2 (892.5) 세 번째와 네 번째 침입 사이에 떼를 지어 이동한 안드족속들이 북쪽으로부터 유럽에 들어왔는데, 러시아의 강들과 발틱 의 길을 통하여 시베리아로부터 이주하였다. 그들은 북쪽에 있는 안드족속 부족들과 즉시 동화되었다.

80:4.3 (892.6) 순수한 보라색 인종의 비교적 초창기 확장은, 그들보다 후대의 약간군사적이고 정복하기를 좋아하는 안드족속 후손들보다 훨씬 더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아담족속들은 평화를 사랑하였지만; 놋족속들은 호전적이었다. 이 혈통들의 합동은, 나중에 상익 인종들과 섞이면서, 실제적인 군사적 정복을 이룩한 유능하고 공격적인 안드족속들을 형성하였다.

80:4.4 (892.7) 그러나 서양에서 안드족속들이 지배하도록 만든 진화적 요인은 말(馬)이었다. 흩어지던 안드족속들은 그 말 때문에, 그 때까지 보지 못하였던 기동력을 갖추게 되었는데, 말을 탄 안드족속 중 마지막 집단은 재빨리 카스피 해를 돌아서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그 전에 있었던 안드족속들의 물결들은 너무도 느린 속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로부터 멀어진 물결들은 모두 와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후대의 물결들은 너무도 빨리 진행되었으므로 밀착된 집단을 이루면서 유럽에 도착하였고, 어느 정도 고차원적인 문화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80:4.5 (893.1) 그리스도 이전 7,000년부터 2,000년 동안, 거칠게 말을 다루는 안드족속 기수(騎手)들이 출현하였을 때, 중국유프라테스 지역을 제외하고, 인간거주 세계 전체는, 매우 제한된 문화적 진보를 10,000년 동안 이룩해 오고 있었다. 그들이 러시아의 평원을 지나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청색인 중 가장 우수한 사람들은 흡수하고 가장 퇴보된 사람들은 멸절시켰을 때, 그들은 하나의 민족으로 혼합되었다. 이들이 소위 노르딕 인종들이라고 불리는, 스칸디나비아독일 그리고 앵글로색슨 민족들의 선조가 되는 인종들의 조상이었다.

80:4.6 (893.2) 우세한 청색 종족들이 북부 유럽 전반에 걸쳐서 안드족속들에 의해 오래지 않아 완전히 흡수되었다. 오직 라플란드에서만(그리고 브리타니에서 어느 정도) 옛 안돈족속들이 비슷한 정도만이라도 자기 주체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5. 안드족속의 북유럽 정복

80:5.1 (893.3) 북부 유럽의 부족들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투르케스탄 남쪽 러시아 지역을 통과하여 꾸준히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에 의해 보강되고 증진되었으며, 말을 탄 안드족속의 마지막 물결이 유럽을 휩쓸게 되었을 때에는, 안드족속 유전형질을 갖고 있는 그 지역 사람들이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들에서 발견되는 숫자보다 거기에 이미 더 많이 있었다.

80:5.2 (893.4) 이 3,000년 동안, 북부에 있는 안드족속들의 군사적 본부는 덴마크에 있었다. 이 중심지로부터 계속적인 정복의 물결이 퍼져 나갔으며, 세기(世紀)들이 지나감에 따라 메소포타미아 정복자들과 피정복 민족들이 최종적으로 혼합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 중에는 안드족속들이 점점 줄어들고 백색 인종이 점점 많아졌다.

80:5.3 (893.5) 북쪽 지역에서 청색인이 이미 흡수되었고 결국에는 말을 탄 백색 인종 침략자들에게 굴복 당한 반면, 백색 인종과 혼합된 진보된 부족들은 크로-마뇽인들로부터 완강하고 계속적인 저항을 받게 되었지만, 그들은 뛰어난 지성과 계속 축적(蓄積)되는 생물학적 비축물들에 힘입어서, 그 전에 있었던 인종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80:5.4 (893.6) 백색인과 청색인 사이의 결정적인 투쟁은 솜므 강 계곡에서 벌어졌다. 이곳에서, 전성기에 도달한 청색 인종은 남쪽으로 이동하는 안드족속들과 심한 투쟁을 벌였고, 이 크로-마뇽들은 백색 침입자들의 탁월한 전술(戰術) 앞에 굴복 당하기까지 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기 영토를 성공적으로 지킬 수 있었다. 솜므 강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북쪽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승리를 거둔 쏘르는, 북부 백색 부족들의 영웅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그들 중 일부에 의해 하나의 신(神)으로 숭배되었다.

80:5.5 (893.7) 가장 오래 까지 유지된 청색인의 본거지(本據地)는 남부 프랑스에 있었지만, 마지막의 극심한 군사적 저항은 솜므 강 주변에서 굴복 당하였다. 후대의 정복은, 상업적인 침투와 강(江)들 유역의 과도한 인구 증가에 의해 그리고 우수한 인종과의 지속적인 상호 결혼에 의해 진행되었고, 열등한 인종을 냉혹하게 멸절시키는 것과 결부되었다.

80:5.6 (893.8) 안드족속 원로(元老)들로 구성된 부족 의회가 열등(劣等)한 포로에 대하여 부적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 그 포로는 복잡한 예식을 거쳐서 샤만 사제(司祭)들에게 넘겨졌고, 그 사제는 그를 데리고 강으로 가서 “행복한 사냥터”로 들어가는 제례들--익사(溺死)시킴--을 집행하였다. 유럽의 백색 침입자들은, 자신들의 대열로 빨리 흡수되지 않고 대항하는 모든 민족들을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멸절시켰으며, 그렇게 해서--그리고 빠른 속도로-- 청색인은 멸종되었다.

80:5.7 (893.9) 크로-마뇽 청색인은 현대의 유럽 인종들을 위한 생물학적 기초의 구성 요소가 되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본거지를 후대에 정복한 강건한 사람들에 의해 흡수됨으로써만 살아남게 되었다. 청색 종족은 유럽의 백색 인종들에게 많은 육체적 생기와 억센 특징들을 제공하였지만, 피가 섞인 유럽 민족들의 유머와 상상력은 안드족속들로부터 왔다. 북부 지역의 백색 인종 속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안드족속-청색 합동으로 말미암아 안드족속 문명의 즉각적인 상실, 즉 일시적인 본성에 속하는 지연을 가져왔다. 결국에는, 이 북부 야만인들의 잠재적 우수성이 모습을 드러냈고 오늘날 유럽 문명 속에서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80:5.8 (894.1) 기원전 5,000년경에, 진화하는 백색 인종들이, 독일과 북부 프랑스 그리고 영국 제도(諸島)를 포함하는 북부 유럽 전체를 지배하였다. 중부 유럽은 둥근-머리의 안돈족속들과 청색인에 의해 한동안 통제되었다. 후자(後者)는 주로 다뉴브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안드족속들에 의해 완전하게 쫓겨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6. 나일 근처의 안드족속들

80:6.1 (894.2) 마지막 안드족속 이주가 발생된 시기부터, 유프라테스 계곡에서는 문화의 쇠퇴가 시작되었고, 문명의 직접적인 중심지는 나일 계곡으로 바뀌었다. 이집트는, 지구상에 있는 가장 진보된 집단의 본부(本部)로서, 메소포타미아의 후계자가 되었다.

80:6.2 (894.3) 나일 계곡은 메소포타미아 계곡보다 약간 먼저 홍수를 겪기 시작하였지만 훨씬 적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초창기 퇴보는, 계속 이주해 들어오는 안드족속들에 의해 보충되었고 또 그 이상의 효과가 있었으므로, 이집트의 문화는 비록 실제적으로는 유프라테스 지역으로부터 유래되기는 하였지만 서서히 선두 자리로 나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원전 5,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홍수기 동안, 이집트에는 독특한 일곱 집단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를 제외한 전체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왔다.

80:6.3 (894.4) 유프라테스 계곡으로부터의 마지막 탈출이 발생되었을 때, 이집트는 가장 숙련된 예술가들과 기능공들을 많이 받아들였다. 이 안드족속 기능공들은, 강에서의 생활과 홍수 그리고 관개(灌漑)와 건조한 계절 등에 완전히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마치 고향에 있는 듯이 매우 안정감을 가졌다. 그들은 나일 계곡의 보호된 지역으로부터 혜택을 누렸는데; 유프라테스 주변에 있었을 때보다는 적으로부터의 습격과 공격을 훨씬 적게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집트인들의 금속 가공 솜씨를 크게 향상시켰다. 그들은 이곳에서 철광석을 가공하였는데, 그 철광석은 흑해 지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시내 산으로부터 가져오는 것이었다.

80:6.4 (894.5) 이집트인들은 지방마다 틀린 신격들을 매우 일찍부터 모아서 하나의 정교한 국가적 신(神)들의 체계를 세웠다. 그들은 광범위한 신학 체계를 개발하였고, 똑같이 광범위하면서도 부담을 주는 제사장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몇 명의 다른 지도자들은, 셋족속들의 초창기 종교적 가르침들 중에서 남아있는 것들을 되살려 보려고 애쓰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안드족속들이 이집트에서 최초의 석조(石造) 건축물을 지었다. 돌로 지은 피라밋들 중 처음으로 건축되고 가장 절묘한 것은, 안드족속 건축술의 천재였던 임호텝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가 수상(首相)으로 일할 때였다. 그 전에 세워진 건물들은 벽돌을 이용하였고, 세계의 여러 다른 지역들에서는 돌로 지은 건축물들이 많이 세워졌었지만, 이집트에서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건축 기술은 이 위대한 건축가의 시대 이후로 계속 퇴보되었다.

80:6.5 (894.6) 이러한 문화의 찬란한 분할시대는 나일 주변의 내란(內亂)으로 인하여 중단되었고, 그 나라는 메소포타미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곧 침략을 당하였는데, 황폐한 아라비아로부터의 열등한 부족들과 남쪽으로부터의 흑색인들에 의해서였다. 그 결과로, 사회적 진보는 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퇴보를 거듭하였다.

7. 지중해 섬들의 안드족속들

80:7.1 (895.1) 동부 메소포타미아의 땅에서 문화가 퇴보하는 동안, 지중해 동부에 있는 섬들의 우수한 문명은 어느 기간 동안 계속 유지되었다.

80:7.2 (895.2) 기원전 약 12,000년경, 안드족속들 중 한 총명한 부족이 크레테 섬으로 이주하였다. 이 섬은 그러한 우수한 집단이 그토록 초창기에 정착한 유일한 섬이었고, 거의 2,000년이 지나서야 이 항해자들의 후손이 인접된 섬들로 퍼져 나갔다. 이 집단은 좁은-머리의, 키가-작은 안드족속들이었는데, 북쪽에 있는 놋족속반족속 계열과 섞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키는 모두 6피트 미만이었고, 그들보다 키가 크며 열등한 친구들에 의해 본토로부터 완전히 쫓겨난 사람들이었다. 크레테 섬으로 이주한 이 사람들은, 옷감 짜는 일, 금속 가공, 도예술, 납공업, 그리고 돌을 건축 재료로 사용하는 데 있어서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였고 목축업과 농사짓는 일을 하였다.

80:7.3 (895.3) 그들이 크레테 섬에 정착한 후로 거의 2,000년이 흐른 뒤에, 키가 큰 아담선 후손들 중 한 무리가 북부 지역의 섬을 거쳐 그리스로 들어왔는데, 메소포타미아의 북쪽에 있는 고원지대의 고향으로부터 거의 똑바른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그리스인들의 선조인 이 사람들은 아담선라타의 직계 후손인 사토에 의해 서쪽 방향으로 인도되었다.

80:7.4 (895.4) 최종적으로 그리스에 정착한 이 집단은, 아담선족속들의 두 번째 문명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던 선택되고 우수한 민족이었던 37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아담선의 후대 자손들은 신흥(新興) 백색 인종들 중에서 가장 귀중한 종족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지능적인 계급이었고, 육체적으로도 호감을 샀는데, 첫 번째 에덴의 시대 이후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80:7.5 (895.5) 그리스에게 제도(諸島) 지역은 이윽고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의 뒤를 이어서 서양의 무역과 예술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아담선족속 선구자들의 문화를 제외하고는, 에게해 지방의 모든 예술과 과학 역시 실제적으로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이 후자(後者) 민족의 모든 예술과 천재성은 아담선, 즉 아담이브의 첫 번째 아들과, 캘리개스챠 왕자의 순수한 놋족속 참모로부터 이어진 혈통의 후손인 한 딸로부터 나온 자손의 직접적인 유산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자기들을 신들과 초인간적 존재들로부터 탄생된 직접적인 후손으로 여기는 신화적 전승들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80:7.6 (895.6) 에게해 지역은 다섯 차례에 걸친 뚜렷한 문화적 단계를 지나왔는데, 단계가 지날 때마다 영적인 수준이 저하되었고, 그리스의 후기 세대들이 사들인 다뉴브 지역으로부터의 노예들의 급속도로 증가하는 평범한 후손들의 압력에 눌려서, 최후의 영화롭던 시대는 머지않아 소멸되었다.

80:7.7 (895.7) 가인의 후예들의 어머니 숭배 종파가 최고로 유행되었던 것은 바로 이 시기에 크레테 섬에서였다. 이 종파(宗派)는 이브를 “대모(大母)”로 숭배하면서 이브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브의 형상이 도처에 있었다. 대중을 위한 수천 개의 신전들이 크레테 섬소아시아 전역에 세워졌다. 그리고 어머니를 숭배하는 이 종파는 그리스도 시대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는데, 나중에는, 예수의 이 세상 어머니였던 마리아에게 영광을 돌리고 숭배하는 것으로 변장하면서 초창기 그리스도교와 합쳐졌다.

80:7.8 (895.8) 기원전 약 6,500년경까지, 안드족속들의 영적 유산에 큰 퇴보가 계속되었다. 이 아담의 후손들은 광범위하게 흩어졌고, 보다 오래되고 숫자가 많은 인간 종족들에게 삼켜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안드족속 문명의 이러한 쇠퇴는, 그들의 종교적인 표준들의 소멸과 함께, 비참한 상황 속에 있는 이 세상의 종족들을 영적(靈的)으로 가난하게 내버려두었다.

80:7.9 (896.1) 기원전 5,000년경에는, 3개의 가장 순수한 아담 후손 종족들이 수메르와 북부 유럽 그리고 그리스에 남아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전체는, 아라비아로부터 스며들어오는 혼합되고 짙은 색의 종족들의 물결에 의해 서서히 저하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열등한 민족들의 도래는, 안드족속들의 생물학적 및 문화적 잔재들이 더욱 널리 흩어지도록 기여하였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 전체로부터, 더욱 모험심이 많은 민족들이 서쪽으로 쏟아져 나와서 여러 섬들로 들어갔다. 이 이주민들은 곡식과 채소를 재배하였고 길들인 동물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80:7.10 (896.2) 기원전 약 5,000년경, 진보적인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강력한 군대가 유프라테스 계곡으로부터 밖으로 이동하여 키프러스 섬에 정착하였는데, 이 문명은 약 2,000년 정도 지난 후 북쪽으로부터 들어온 야만적인 유랑민 무리에 의해 전멸되었다.

80:7.11 (896.3) 또 다른 거대한 이민단이, 후대의 칼타고 지역에서 가까운 지중해 연안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로부터 많은 숫자의 안드족속들이 스페인으로 들어갔고 나중에는, 일찍이 에게 제도로부터 이탈리아로 들어왔던 그들의 동족들과 스위스에서 섞이게 되었다.

80:7.12 (896.4)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의 문화적 퇴보를 답습할 때, 매우 유능하고 진보를 이룩한 여러 가족들이 크레테 섬으로 피신하였으며, 그렇게 해서, 이미 진보를 이룩한 이 문명을 크게 증대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집트로부터 열등한 집단들이 들어와서 크레테 섬의 문명이 위협을 당하자, 매우 문화가 발달된 가족들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그리스로 들어갔다.

80:7.13 (896.5) 그리스인들은 위대한 선생들과 예술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상인들과 식민지 개척자들이었다. 그들의 예술과 상업을 삼켜버린 열등한 물결에 결국 압도당하게 되기 전에는, 그들은 성공적으로 많은 문화적 전초기지들을 서쪽 방향에 세웠기 때문에 초창기의 그리스 문명에 있어서 엄청난 진보가 남부 유럽의 후대 민족들 속에 계속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아담선족속들의 혼합된 후손들 중 다수는 주변에 있는 대륙(大陸)의 부족들 속에 합병되었다.

8. 다뉴브의 안돈족속들

80:8.1 (896.6) 유프라테스 계곡의 안드족속 민족들 중 북쪽으로 이주하여 유럽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청색인들과 섞였고,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지중해 지역으로 들어가, 남아있는 사하라인들과 남부의 청색인들과 섞였다. 그리고 백색 인종의 이 두 부류는, 그 당시에, 그리고 현재에도, 이 중심 지역들에 오랫동안 거주해 왔던 초창기 안돈족속 부족들 중 산악 지역에 살아남은 넓은-머리의 사람들에 의해 널리 흩어졌다.

80:8.2 (896.7) 이러한 안돈의 후손들은 중앙과 남부 유럽의 산악지대 대부분으로 분산되었다. 그들은 소아시아로부터 도착된 사람들에 의해 종종 보충되었는데, 그들은 상당한 힘으로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고대의 헷족속안돈족속의 혈통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원되었는데; 그들의 창백한 피부와 넓은 머리는 그 종족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 종족이 아브라함의 조상을 낳았고, 그로부터 시작된 유대인 후손들의 독자적인 얼굴 모양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 후손들은 안드족속들로부터 유래된 문화와 종교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의 언어는 안돈족속과 분명하게 일치하였다.

80:8.3 (897.1) 이태리스위스 그리고 남부 유럽의 호수 위의 퇴적지(堆積地) 또는 통나무 방파제 위에 세운 집에서 거주하는 그 부족들은, 아프리카인에게 해 사람들 그리고 더욱 특별하게는 다뉴브의 이주자들의 확장하는 경계선에 해당하였다.

80:8.4 (897.2) 다뉴브 사람들은 안돈족속들이었고, 발칸 반도를 통하여 유럽에 들어왔던 농부들과 목동들이었으며, 다뉴브 계곡을 따라 서서히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질그릇을 만들었고 땅을 경작하였으며 계곡에서 사는 것을 선호(選好)하였다. 다뉴브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북쪽의 거주지는 벨기에 안에 있는 리지에 있었다. 이 부족들은, 그들의 문화적 중심지와 근원지로부터 멀리 이동하면서 급속도로 저하되었다. 최고의 질그릇은 비교적 초창기 정착지의 작품이다.

80:8.5 (897.3) 다뉴브 사람들은 크레테에서 온 선교사들이 활동한 결과로 어머니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 부족들은 작은 배를 타고 소아시아의 해안으로부터 온 안돈족속 항해자들과 나중에 혼합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어머니를 숭배하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중앙 유럽의 대부분에는 넓은-머리의 백색 인종들의 혼합된 유형의 사람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고, 그들은 어머니를 숭배하였으며 죽은 사람을 화장(火葬)시키는 종교적 제례를 갖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를 숭배하는 종파에서는 돌로 만든 오두막에서 죽은 사람을 태우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9. 세 가지 백색 인종들

80:9.1 (897.4) 안드족속의 이주가 끝나게 되면서 유럽에서의 인종적 혼합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백색 인종들로 일반화되었다:

80:9.2 (897.5) 1. 북부의 백색 인종. 소위 노르딕 인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주로 청색인과 안드족속을 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안돈족속의 핏줄이 섞여 있었고, 적색과 황색의 상익도 비슷한 양으로 섞여 있었다. 그리하여 북부의 백색 인종은 이 네 가지의 가장 바람직한 인간 혈통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유전자는 청색인으로부터 왔다. 전형적인 초창기의 노르딕 사람은 길쭉한-머리에 키가 컸으며 금발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인종은 오래 전에 백색 민족들의 모든 지류(支流)들과 완전히 혼합되었다.

80:9.3 (897.6) 침입하는 노르딕 사람들과 충돌한 유럽의 원시적 문화는, 청색인과 피가 섞인 퇴화하는 다뉴브인들이 이룩한 것이었다. 노르딕-덴마크 문화와 다뉴브-안돈족속 문화는 라인에서 서로 만나 혼합되었는데, 오늘날 독일에 두 인종 집단들이 실존하고 있는 것에 의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80:9.4 (897.7) 노르딕 사람들은 발틱 해안에서 계속적으로 호박을 매매하였는데, 브렌너 통로를 통하여 다뉴브 계곡에 사는 머리-넓은 사람들과 큰 교역을 이룩하였다. 다뉴브 사람들과의 이러한 광범위한 접촉으로 말미암아, 북부 지역의 이 사람들이 어머니를 숭배하게 되었고,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시행되었다. 유럽 전역에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백색 인종들의 유골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돌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납골(納骨) 단지 속에서 오직 그 재만이 발견될 수 있다. 또한 이 백색인들은 집을 건축하였고; 결코 동굴에서 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백색인의 초창기 문화에 대한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을 설명해 주는데, 그에 반하여 그 전에 있었던 크로-마뇽인 유형은 동굴과 석굴 속에 안전하게 밀봉되어서 잘 간직되어 왔다. 사실 그러하였듯이, 한 때 유럽의 북부 지역에는 퇴보하는 다뉴브 사람들과 청색인의 원시적인 문화가 있었고 그 다음으로는 갑자기 나타난 그리고 매우 우수한 백색인의 문화가 있었다.

80:9.5 (897.8) 2. 중앙의 백색 인종. 이 집단은, 청색과 황색 그리고 안드족속의 종족들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주로 안돈족속이었다. 이 민족은 머리가-넓었고 가무잡잡하였으며 땅딸막하였다. 그들은 노르딕 종족과 지중해의 종족 사이를 쐐기 모양으로 갈라놓았는데, 그 꼭대기는 프랑스 동부를 관통하였고 넓은 그 하부(下部)는 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었다.

80:9.6 (898.1) 거의 20,000년 동안, 안돈족속들은 안드족속들에 의해 점점 더 멀리 중앙 아시아 북쪽으로 밀려났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점점 더 건조해지는 기후 때문에 이 안돈족속들이 투르케스탄으로 되돌아왔다. 이 안돈족속은 수천 년 동안 계속 남쪽으로 밀려왔는데, 카스피 해흑해 부근에서 나뉘어져서, 발칸우크라이나의 두 길을 통하여 유럽으로 들어갔다. 이 침입에는 아담선의 자손들 중에서 남은 집단들이 포함되었으며, 그 침입 기간 중 하반기(下半期) 동안에는, 상당한 숫자의 이란 안드족속들뿐만 아니라 셋족속 제사장들의 후손들 중 많은 사람들도 동행하였다.

80:9.7 (898.2) 기원전 2,500년 무렵, 안돈족속들 중에서 서쪽 방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유럽에 이르렀다. 그리고 투르케스탄 언덕에 있었던 야만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전역(全域)과 소아시아 그리고 다뉴브 분지에 범람(氾濫)하게 됨으로써, 그 때까지의 문화적 퇴보들 중 가장 심각하고 오래 지속된 퇴보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 침입자들은 중앙 유럽에 있는 종족들의 성품이 분명히 안돈족속과 비슷하게 되도록 만들었는데, 그것은 알프스 산맥 근처의 사람들에게 독자적으로 계속 남아 있다.

80:9.8 (898.3) 3. 남부의 백색 인종. 거무스름한 이 지중해 인종은 안드족속과 청색인의 혼혈로 이루어졌는데, 북쪽의 경우보다는 안돈족속의 종족이 적게 들어 있었다. 또한 이 집단은 사하라인들을 통하여 상당한 양의 2차적 상익 핏줄을 흡수하였다. 후대에 이르러서는, 백색 인종의 이 남부 집단에게는, 동부 지중해 사람들로부터 전달된 강력한 안드족속 요소들이 주입되었다.

80:9.9 (898.4) 아무튼, 지중해의 근해(近海) 지역들은 기원전 2,500년에 있었던 거대한 유목민 침입이 있을 때까지 안드족속들로 가득 채워졌다. 유목민들이 동부 지중해 구역들을 침입하였을 때, 육상(陸上) 통행과 거래는 이 때 수세기 동안 거의 정지된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육상 교통의 방해로 말미암아 해상 통행과 거래가 크게 확장되게 되었으며; 지중해에서 배로 운반되는 교역(交易)은 약 4,500년 전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해상 교통 발전의 결과로, 지중해 분지의 연안(沿岸) 전체 지역 전반에 걸쳐 안드족속들의 후손들이 갑작스럽게 확산되었다.

80:9.10 (898.5) 이러한 인종적 혼합은, 남부 유럽 인종으로 하여금 전체 중에서 가장 많이 혼합되도록 하는 기초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 인종은 더욱 심한 혼합의 과정에 들어갔는데, 그 중에서도 청색-황색-안드족속이 합쳐진 아라비아 민족과 많이 혼합되었다. 이 지중해 연안의 인종은 주변에 있는 민족들과 사실적으로 아주 자유스럽게 섞여서 실제로는 서로 다른 유형인 것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일반적으로 그 구성원들은 키가 작고 길쭉한-머리와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졌다.

80:9.11 (898.61) 북쪽 지역에서는 전쟁과 결혼을 통하여 안드족속들이 청색 인종의 흔적을 없애버렸지만, 남부에서는 그들이 많이 살아남아 있었다. 바스크 사람들과 베르베르 사람들은 살아남은 이 종족의 두 지류(支流)들을 대표하지만, 이 사람들조차도 사하라인들과 완전히 섞였다.

80:9.12 (898.7) 이와 같은 내용은 기원전 약 3,000년경의 중앙 유럽에서 나타났던 인종 혼합에 대한 설명이다. 아담의 부분적인 불이행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고상한 유형들이 혼합되었다.

80:9.13 (898.8) 이 시기는 신석기 시대에 해당되며 도래되는 청동기 시대와 교차되는 때였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청동기 시대가 어머니 숭배와 관련된다. 남부 프랑스스페인에서는 신석기 시대가 태양 숭배와 관련된다. 이 시기에는 모양이 둥글고 지붕이 없는 신전들을 세웠다. 유럽의 백색 인종들은 정력적인 건축가들이었고, 태양에 대한 상징으로 거대한 돌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그들의 후손들이 거석주군(巨石柱群)을 세운 것도 그러한 성향 때문이었다. 태양 숭배가 유행한 것은, 이때에 남부 유럽에서 농업이 크게 번창하던 기간이었음을 보여준다.

80:9.14 (899.1) 비교적 최근에 태양을 숭배하던 시기의 이 미신적 관습들이 브리타니 반도의 풍속들 속에서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비록 1,500년 전에 그리스도교화 되었지만, 이 브리타니 사람들은 악마의 눈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신석기 시대에 사용하던 마법의 장식물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번갯불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뇌석(雷石)을 아직도 굴뚝 속에 넣어두고 있다. 브리타니 사람들은 스칸디나비아노르딕 사람들과 한 번도 섞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서부 유럽에 있었던 순수한 안돈족속 주민들의 생존자들인데, 지중해 연안의 혈통들과 혼합되었다.

80:9.15 (899.2) 그러나 백색 민족들을 노르딕알파인 그리고 지중해 연안 주민으로 분류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구분하기에는 전체적으로 너무 많이 피가 섞였기 때문이다. 한때는 백색 인종을 그러한 계통으로 상당히 잘 분류할 수 있었지만, 그 후로 광범위한 혼합이 발생되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명쾌하게 그 차이들을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심지어 기원전 3,000년경에도, 고대의 사회적 집단들이 하나의 인종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오늘날 북 아메리카의 주민들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80:9.16 (899.3) 유럽의 이 문화는 5,000년 동안 계속 자라면서 어느 정도 서로 섞였다. 그러나 언어 장벽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서양 민족들끼리의 완전한 왕래는 방해를 받았다. 지나간 세기 동안 이 문화는 북 아메리카의 국제적으로 구성된 주민들 속에서 섞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경험해 오고 있으며; 그 대륙의 미래는, 현재는 물론 미래의 주민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종적인 유전인자들의 자질(資質)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유지되는 사회적 문화의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80:9.17 (899.4) [네바돈천사장에 의해 제시되었음]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