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랜시아 책 - 제5편 :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

(USGNY[CM]-KOR-000-1996-3)

유랜시아 책   

부 I: 중앙우주와 초우주들

제5편 :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



제5편 :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

5:0.1 (62.1) 만일 사람의 유한한 정신이, 우주적 아버지처럼 그토록 위대하고 그토록 장엄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한한 완전성 속에 있는 그의 영원한 거주지로부터 내려오셔서 개별 인간 피조물과 친해질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면, 그러한 유한한 지능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제적 단편(斷片)이 모든 정상적-정신을 가진 그 지능 안에 거주하고 유란시아 필사자를 실제적으로 인식한다는 그 사실의 진리에 의거하여 신성한 교제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내주하는 사고 섭리사들은 낙원 아버지의 영원한 신격의 일부분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와의 친교를 시도하기 위하여 이 영적-실체 현존에 대해 그 혼이 묵상하는 자기 자신의 내적 경험보다 더 멀리 나가야만 할 필요는 없다.

5:0.2 (62.2)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본성의 무한성을 그의 여섯 절대 동격자(同格者)들의 실존적 실체들 전반에 걸쳐 분배해 왔지만, 그러나 언제든지 그는 자신의 인격-이전(以前) 단편들이라는 매개체(媒介體)를 통하여 창조세계의 어떤 부분이나 단계 또는 종류와 직접적인 인격적 접촉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 영원한 하나님은 또한 우주들의 우주의 살아있는 피조물들과 신성한 창조주들에게 인격체를 증여하는 특권을 자신에게 한정시켜 왔고, 동시에 그는 인격체 회로를 통하여 이 인격적 존재들 전체와 직접적인 그리고 어버이로서의 접촉을 유지하는 특권을 더욱 한정시켜 왔다.

1. 하나님께 접근함

5:1.1 (62.3) 무한하신 하나님께 유한 피조물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은 선천적인데, 아버지가 냉담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창조된 존재들의 유한성과 물질적 제한조건들 때문이다. 우주 실존 중 가장 높은 인격체와 창조된 지성체들 중 가장 낮은 집단들 사이에 있는 영적 차이의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비교적 낮은 지성체 계급들이 아버지 자신의 현존 속으로 즉시 옮겨지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우주적 아버지의 현존에 대해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필사적 사람이 우주적 아버지낙원 현존 속으로 안전하게 안내되기를, 가능성의 영역들 안에서 그리고 일관되게 요구할 수 있기 전까지, 그의 앞에는 멀고도 먼 길이 있다. 영적으로 볼 때, 사람은 일곱 으뜸 영들 중 어느 하나라도 볼 수 있게 만들 영적 통찰력을 이룩하게 될 어떤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여러 차례 변환되어야만 한다.

5:1.2 (62.4) 우리의 아버지는 숨어 계시지 않으며; 그는 독단적으로 은둔해 있지 않으시다. 그는 자신의 우주적 영토들에 속한 자녀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끝없이 수고하심에 있어서 신성한 지혜의 자원들을 동원시켜 왔다. 그를 파악하거나 사랑하거나 또는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피조 된 존재의 연합을 그가 동경하도록 만드는 그의 사랑의 위엄과 관련된 무한한 장엄함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대함이 존재하며; 그러므로, 너희가 필사자 상승의 여행의 목표를 달성하고 모든 물체들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의 현존 속에 서게 되는 시간과 장소와 환경들을 결정하는 일은, 너희 안에 선천적으로 있는 그 제한조건들인데, 너희의 유한한 인격체 및 물질적 실존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5:1.3 (63.1) 너희가 영 진보의 가장 높은 유한 차원들에 도달할 때까지 아버지낙원 현존에게 접근하는 일이 유보되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너희 내부 혼 그리고 너희의 영성화 하는 자아와 매우 긴밀하게 연합된 아버지의 증여 영과의 즉각적 친교가 항상-현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기뻐해야만 한다.

5:1.4 (63.2) 시간과 공간의 영역들에 속한 필사자들이 타고난 재능과 지능적 천부재능에 있어서 크게 다를 수 있거나, 또는 그들이 사회적 발전과 도덕적 진보에 예외적으로 유리한 환경들을 누릴 수 있거나, 또는 그들이 문명의 기술들에 있어서 예상되는 발전과 문화에 대한 거의 모든 인간적 도움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고생할 수 있지만; 그러나 상승하는 생애에 있어서의 영적 진보를 위한 가능성들은 모두에게 동일하며; 영적 통찰력과 조화우주적 의미들의 증가하는 차원들은 진화적 세계들에 있는 다각적인 물질적 환경들의 그러한 모든 사회-도덕적 차이들과는 매우 독립적으로 달성된다.

5:1.5 (63.3) 유란시아 필사자들이 그들의 지능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심지어 도덕적 기회들과 천부재능들에 있어서 다르더라도, 그들의 영적 천부재능은 균일하고 독특함을 잊지 말라. 그들은 모두 아버지로부터 오는 동일한 신성한 현존의 선물을 누리며, 신성한 기원을 갖는 내주하는 이 영과의 긴밀한 인격적 친교를 추구하는 특권을 똑같이 갖고 있는 반면, 그들은 모두 이 신비 관찰자들의 일정한 영적 안내를 받아들이기로 똑같이 선택할 수 있다.

5:1.6 (63.4) 만약에 필사적 사람이 전심을 다하여 영적으로 동기를 부여받는다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에 온전하게 바쳐진다면, 그는 내주하는 신성한 섭리사를 너무나 확실하게 그리고 너무나 효과적으로 영적으로 부여받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그 고상한 자각 그리고 점점 더 그와 같이 되어 가는 진보적 경험에 의해 하나님을 발견하는 목적을 향한 생존에 대한 숭고한 확신이 그 개인의 경험 속에서 실현되지 않을 수 없다.

5:1.7 (63.5) 사람에게는 생존하는 사고 섭리사가 영적으로 내주한다. 만일 그러한 인간 정신이 진지하게 그리고 영적으로 자극을 받는다면, 만일 그러한 인간 혼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한다면, 즉 진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신성하게 자극받은 혼을 낙원 입구를 향하여 확실하게 상승하는 일로부터 막을 수 있는 어떤 인간적 파멸의 부정적 영향도 어떤 훼방 가능한 긍정적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5:1.8 (63.6) 아버지는 그의 피조물들 전체가 자신과 개인적 친교를 나누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는 그들의 생존하는 신분과 영적 본성이 그러한 달성을 가능하게 하는 그들 모두를 받아들일 장소를 낙원에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영원토록 너희 철학의 틀을 이렇게 잡으라: 너희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갈 수 있는 분이고, 아버지에게 도달할 수 있고, 그 길은 열려 있으며; 신성한 사랑의 힘과 신성한 경영의 방법들 및 수단들은 우주적 아버지낙원 현존을 향한 모든 우주의 모든 가치 있는 지성체의 발전을 촉진시키려는 노력에 있어서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5:1.9 (63.7) 하나님께 도달하기까지 광대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자의 현존과 인격체로 하여금 실제가 되게 한다. 너희의 상승은 일곱 연방우주들의 회로의 일부분이며, 너희가 그 주변을 셀 수 없을 만큼 오락가락하더라도, 너희는 영에 있어서 그리고 신분에 있어서 안쪽을 향해 계속 오락가락하게 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너희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비교적 외부의 회로들로부터 계속 점점 더 내부 중심으로 변환되는 일을 신뢰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너희가 신성한 중앙 현존 안에 서게 될 것을 그리고 상징적으로 말해서 얼굴을 대면하여 그를 보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마라. 그것은 실제적인 그리고 글자 그대로의 영적 차원들의 달성에 대한 문제이며; 신비 관찰자가 내주하였던, 그리고 나중에 그 사고 섭리사와 영원히 융합한 어떤 존재든지 이 영적 차원들을 달성할 수 있다.

5:1.10 (64.1) 아버지는 영적인 은신처 속에 계시지 않지만, 그의 피조물들 중 거의 대부분이 그들 자신의 고의적 결정의 안개 속에 스스로 숨어 왔고 그들 자신의 사악한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의 편협한 정신들과 비영적(非靈的) 본성들에 대한 자기-주장에 빠짐으로써 그의 영과 그의 아들의 영의 친교로부터 스스로를 한동안 분리시켜 왔다.

5:1.11 (64.2) 필사적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도 있고 선택의 능력이 남아 있는 한 신성한 뜻을 반복적으로 저버릴 수도 있다. 사람의 최종적 파멸은 그가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능력을 잃기 전까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마음은 자기 자녀들의 필요와 청원에 대하여 결코 닫히지 않는다. 그의 신성한 뜻을 행하고자 하는--그를 알고자 하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그의 자손들이 최종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잃을 때 그들이 아버지의 이끄는 능력에 대해 그들의 마음을 영원히 닫은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그러한 상승자가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로 최종적이고도 취소할 수 없는 선택을 하였음을 섭리사 융합이 그 우주에게 선언할 때 확인된다.

5:1.12 (64.3) 위대하신 하나님은, 필사적 사람과 직접적 접촉을 가능하게 만드시고 그의 안에 살고 거주하도록 그의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가해한 자아의 일부분을 내어주신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영원한 모험여행을 착수해 오셨다. 만일 너희가 너희 안에서 그리고 너희 주변에서 영적인 세력들의 안내를 따른다면, 너희는 공간에 속하는 진화적 세계들로부터 상승한 그의 우세한 피조물들의 우주 목표로서 사랑하는 하나님에 의해 수립된 높은 운명 달성을 실패할 수 없다.

2. 하나님의 현존

5:2.1 (64.4) 무한자라는 물리적 현존은 물질적 우주의 실체이다. 신격이라는 정신 현존은 개별적인 지능적 경험의 깊이에 의해 그리고 진화적 인격체 수준에 의해 결정되어야만 한다. 신성(神性)이라는 영적 현존은 우주 안에서 구별될 필요가 반드시 있다. 그것은 감수성(感受性)이라는 영적 수용능력에 의해 그리고 신성한 뜻을 행하려는 피조물의 의지의 헌신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5:2.2 (64.5) 하나님은 그의 영-태생 아들들 각자 속에 살아 계시다. 낙원 아들들은 하나님의 현존, “아버지의 오른 손”을 향해 항상 접근할 수 있으며, 그의 피조 인격체들 전체가 “아버지의 품”을 향해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그리고 어떻게 접촉되든지 인격체 회로를 언급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중앙 거주지(居住地) 또는 지정된 다른 장소에서든지 아니든지, 낙원의 신성시되는 일곱 구체(球體)들 중 하나에서처럼, 우주적 아버지와의 인격적인, 자아-의식 접촉 및 친교를 수반한다.

5:2.3 (64.6) 아무튼, 신성한 현존은 자연계 속 어디서든지 또는 심지어 하나님을-아는 필사자들의 생애 속에서도, 내주하는 신비 관찰자낙원 사고 섭리사와의 너희의 시도된 친교 속에서처럼 그토록 충분하게 그리고 그토록 분명하게 발견될 수 없다. 우주적 아버지의 영이 너희 자신의 정신 속에 살아 계실 때, 하늘들 속에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꿈꾸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5:2.4 (64.7) 너희가 섭리사의 영적 인도에 조화하면서 진보할 때, 너희를 둘러싸고 너희에게 침범하지만 그러나 너희의 완전한 일부분으로서 작용하지는 않는 그 다른 영적 영향들의 현존과 변형하는 능력을 더 충분하게 식별하기를 너희가 소망할 수 있는 것은 너희 안에 내주하는 이 하나님 단편(斷片) 때문이다. 너희가 내주하는 섭리사와의 가깝고도 긴밀한 접촉에 대해 지능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고양된 경험을 조금도 반증(反證)하지 않는다. 신성한 섭리사와의 우애에 대한 증거는 개별적 신자(信者)의 생애 경험 속에서 산출되는 영의 열매들의 본성과 크기 속에만 있다.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써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5:2.5 (65.1) 필사적 사람의 불충분하게 영성화 된 물질적 정신에게는, 낙원 섭리사들로서의 그러한 신성한 실재들의 영(靈) 활동들에 대한 두드러진 자각(自覺)을 경험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다. 정신과 섭리사의 공동 창조물인 혼이 점점 더 실존하게 될 때, 신비 관찰자들의, 그 현존을 경험할 수 있는, 그리고 영(靈) 인도들 및 다른 초물질적 활동들을 인식할 수 있는 혼 의식의 새로운 단계 역시 진화한다.

5:2.6 (65.2) 섭리사 친교의 전체 경험은 도덕적 상태와 정신적 자극 그리고 영적 경험을 포함하는 어떤 것이다. 그러한 성취의 자아-실현은 주로, 독점적이지는 않더라도, 혼 인식의 영역에 제한되지만, 그 증거들은 그러한 모든 내부-영 접촉자들의 생애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영의 열매들의 형태화 속에서 출현하고 있고 풍부하게 있다.

3. 참된 경배

5:3.1 (65.3) 우주 관점에서 볼 때, 낙원 신격들이 하나로 존재하더라도, 유란시아에 거주하는 그러한 존재들과 맺는 영적 관계들에 있어서 그들은 또한 별개의 분리된 세 인격들이다. 개인적인 간청과 친교 그리고 다른 긴밀한 관계들에 관해서는 (神)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 가장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우주적 아버지를 그리고 오직 그분만을 경배한다. 정말로, 우리는 아버지창조주 아들들 안에서 드러나는 만큼 그를 경배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지만,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경배를 받고 찬미를 받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5:3.2 (65.4) 모든 종류의 간청은 영원한 아들 및 그 아들의 영적 조직의 영역에 속한다. 기도, 즉 우주적 아버지에 대한 찬미와 경배를 제외한 모든 것에 해당하는, 모든 정규 대화들은 지방우주에 관계되는 문제들이며; 그것들은 대개 창조주 아들의 관할권에 해당하는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경배는 아버지의 인격체 회로의 기능에 의해 확실하게 회로화(回路化) 되고 창조주의 인격에게 파견된다. 더욱이 우리는 섭리사-내주 피조물들의 경의(敬意)에 대한 그러한 등록은 아버지의 영 현존에 의해 촉진된다고 믿는다. 그러한 믿음을 구체화시키는 굉장히 많은 증거가 존재하며, 나는 아버지 단편(斷片)들로 구성된 모든 계급들이 우주적 아버지의 현존 속에서 그들의 피험자(被驗者)들의 진실한 찬미를 만족스럽게 등록하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것을 알고 있다. 섭리사들은 또한 하나님과 대화하는 인격-이전(以前) 경로들을 분명하게 직접 활용하며, 그들은 마찬가지로 영원한 아들의 영-중력 회로들도 활용할 수 있다.

5:3.3 (65.5) 경배는 그 자체를 위한 것이며; 기도는 자아-이익 또는 피조물-이익 요소를 포함하는데; 그것이 경배와 기도 사이에 있는 큰 차이이다. 참된 경배 속에는 자기-요청 또는 개인적 이익의 다른 요소가 전혀 없으며; 우리는 단순히 그가 어떨 것이라고 파악하는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경배드릴 뿐이다. 경배는 경배자들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공경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아버지를 경배하지는 않으며; 우리는 비길 데 없는 아버지의 인격체를 인식함에 대한 자연적이고도 자발적인 반응으로서 그리고 그의 매력적인 본성과 찬미할만한 속성들 때문에 그렇게 헌신하고 그러한 경배에 참여한다.

5:3.4 (65.6) 자기-이익의 요소가 경배를 강요하는 순간, 그 순간의 헌신은 경배로부터 기도로 바뀌고 영원한 아들 또는 창조주 아들의 인격에게로 더 적절하게 유도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종교적 경험에 있어서는 기도가 참된 경배의 일부분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려져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5:3.5 (66.1) 너희가 너희 일상생활의 실제적 직무들을 처리할 때, 너희는 제3 근원 및 중심 안에서 기원되어 온 영 인격체들의 손 안에 있으며; 너희는 공동 행위자의 대리인들과 협동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된다: 너희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아들에게 기도하고 그와 교제하며; 너희 세계에서 그리고 너희 우주 전반에 걸쳐 활동하는 무한한 영의 지성체들과 관련하면서 너희의 이 세상 체류로 인한 세부적 일들을 처리한다.

5:3.6 (66.2) 지방우주들의 운명을 관장하는 창조주 또는 주권자 아들들이 낙원우주적 아버지영원한 아들 둘 다의 자리를 대신한다. 이 우주 아들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경배의 찬미(讚美)를 받고 그들 각자의 창조세계들 전반에 걸쳐 그것들의 탄원하는 백성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인다. 지방우주의 그 자녀들에게 있어서 모든 구체적 의미들과 목적들에 대해 미가엘 아들하나님이시다. 그는 우주적 아버지영원한 아들의 지방우주 의인화(擬人化)이다. 무한한 영우주 영들 즉 낙원 창조주 아들들의 경영적 및 창조적 동료들을 통하여 이 영역들에 속한 자녀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유지한다.

5:3.7 (66.3) 진지한 경배(敬拜)는 진화하는 혼(魂)의 지배 아래에 있는 그리고 연합된 사고 섭리사의 신성한 방향설정에 따르는 인간적 인격체의 모든 능력들이 동원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 제한 조건들을 갖는 정신은 참된 경배의 실제 의미를 결코 깊이 의식하게 될 수 없다. 경배 체험의 실체에 대한 사람의 깨달음은 그의 진화하는 불멸적 혼의 발전적인 상태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 그 혼의 영적인 성장은 지능적인 자아-의식과는 전적으로 독립하여 일어난다.

5:3.8 (66.4) 경배 체험은 인간적 혼--하나님을-추구하는 필사적 정신과 하나님을-계시하는 불멸적(不滅的) 섭리사의 공동 창조물--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갈망들과 형언할 수 없는 염원들을 신성한 아버지에게 전달하려는 약혼된 섭리사의 숭고한 시도이다. 그러므로 경배는, 연합된 영의 안내를 따라, 우주적 아버지의 신앙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하여, 그것의 영화(靈化)하는 자아의 시도에 물질적 정신이 동의하는 행위이다. 필사적 정신은 경배에 동의하며; 불멸적 혼은 경배를 갈망하고 일으키며; 신성한 섭리사 현존은 필사적 정신과 진화하는 불멸적 혼을 대신하여 그러한 경배를 수행한다. 결국, 참된 경배는 네 가지 조화우주적 차원들 즉: 지능적, 모론시아적, 영적, 그리고 인격적 차원들--정신과 혼과 영의 인식 그리고 인격체 안에서의 그것들의 통합--에서 실현된 어떤 경험이 된다.

4. 종교에 있어서의 하나님

5:4.1 (66.5) 진화하는 종교들의 도덕성은 하나님 추구에 있어서 두려움이라는 원동력의 힘에 의해 사람들을 앞으로 몰아간다. 계시의 종교들은 사랑의 하나님을 추구하도록 사람들을 유도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 분처럼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는 단순히 “절대적 의존”과 “생존의 보장”이라는 소극적 느낌인 것은 아니며; 그것은 인간성 공헌에 입각한 신성(神性) 성취라는 살아있고 역동적인 경험이다.

5:4.2 (66.6) 참된 종교의 위대하고도 즉각적인 공헌은 인간 경험 속에서의 영구적인 통일, 즉 영속하는 평화와 깊은 확신의 수립이다. 원시적인 사람에게 있어서는, 심지어 다신교(多神敎) 조차도 신격에 대한 진화적 개념의 상대적 통합이며; 다신교는 발달 중에 있는 일신교이다. 머지않아서, 하나님은 가치들의 실체, 의미들의 본체, 그리고 진리의 생명으로서 파악되게 되어 있다.

5:4.3 (67.1) 하나님은 운명의 결정자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영원한 목적지이다. 인간의 모든 비종교적 활동들은 우주를 자아의 왜곡된 봉사 쪽으로 돌리고자 하며; 참되게 종교적인 개인은 자아를 우주와 일치시키고 그 다음에는 통일된 이 자아의 활동들을, 인간이든지 초월적-인간이든지, 친구 존재들의 우주 가족에 대한 봉사에 바치고자 한다.

5:4.4 (67.2) 철학과 예술의 분야들이 인간 자아의 비종교적 활동과 종교적 활동 사이에 끼어 있다. 예술과 철학을 통하여, 물질적-정신을-가진 사람은 영원한 의미들을 갖는 영적 실체들 및 우주 가치들에 대한 묵상에로 유인된다.

5:4.5 (67.3) 모든 종교들은 신격에 대한 경배와 인간 구원에 대한 어떤 교리를 가르친다. 불교는 고난으로부터의 구원 즉 끝없는 평화를 약속하며; 유대교는 어려움들로부터의 구원, 즉 정의에 입각한 번영을 약속하며; 그리스 종교는 아름다움의 실현에 의한, 불일치 즉 추함으로부터의 구원을 약속하며; 그리스도교는 죄로부터의 구원 즉 거룩함을 약속하며; 마호멧교유대교그리스도교의 가혹한 도덕 표준들로부터의 해방을 제공한다. 예수의 종교는 자아로부터의 구원, 즉 시간 속에서의 그리고 영원 속에서의 피조물 고립이라는 악으로부터의 구출이다.

5:4.6 (67.4)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종교를 선함에 기초하였으며;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에 기초하였으며; 두 종교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였다. 예수는 사랑의 하나님을 계시하였고, 사랑은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을 모두-포함한다.

5:4.7 (67.5)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도덕의 종교를 가졌으며; 힌두인들은 형이상학의 종교를 가졌으며; 유교도들은 윤리의 종교를 가졌다. 예수봉사의 종교를 실천하였다. 이 모든 종교들은 예수의 종교에 접근하기에 합당한 가치를 그 안에 갖고 있다. 종교는 인간 경험 속에서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그 모든 것의 영적 통합이라는 실체가 되게 되어 있다.

5:4.8 (67.6) 그리스 종교는 “너 자신을 알라”는 표어를 가졌으며;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알라”는 그들의 가르침에 중심을 두었으며; 그리스도교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목표로 하는 복음을 전파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을 알고, 너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라”는 복된 소식을 선포하였다. 종교의 목적에 있어서의 서로 다른 이 개념들이 다양한 생활 환경 속에서의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며 그의 개인적 기도 습관의 본질과 경배의 깊이를 예시한다. 어떤 종교든지 그 영적 상태는 그것의 기도의 본질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5:4.9 (67.7) 약간인간적이고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다신교와 숭고한 일신교 사이의 필연적 과도기이다. 고양된 의인화(擬人化) 사상은 순전히 진화적인 종교의 최고 달성이다. 그리스도교는 의인화 사상의 개념을, 인간의 이상(理想)으로부터,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초월적이고도 신성한 개념으로 향상시켜 왔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의인화 사상이다.

5:4.10 (67.8)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교 개념은 분리된 세 가르침들을 혼합하려는 시도이다:

5:4.11 (67.9) 1. 히브리 개념--도덕적 가치 옹호자로서의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

5:4.12 (67.10) 2. 그리스 개념--통합자로서의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5:4.13 (68.1) 3. 예수의 개념--살아 계시는 친구로서의 하나님, 사랑하는 아버지, 신성한 현존.

5:4.14 (68.2) 그러므로 혼합된 그리스도교 신학이 일관성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에 부딪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어려움은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교리들이 다른 세 사람들 즉: 알렉산드리아필로, 나사렛예수, 그리고 다소바울의 개인적인 종교적 경험에 일반적으로 기초를 두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가중된다.

5:4.15 (68.3) 예수의 종교적 생애를 연구할 때,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라. 그의 죄 없음에 대해서보다는 그의 정의, 그의 사랑스러운 봉사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라. 예수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에 대해 히브리 개념 속에 계시된 수동적 사랑을, 각각의 개인의 그리고 심지어 잘못을 범한 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더 고차원적인 능동적이고 피조물을-사랑하는 애정으로 향상시켰다.

5. 하나님에 대한 의식(意識)

5:5.1 (68.4) 도덕성은 자아-의식이라는 이성(理性)에서 기원되었으며; 그것은 초동물적(超動物的)이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진화적이다. 인간의 진화는 섭리사들을 증여하기 이전의 그리고 진리의 영이 부어지기 이전의 모든 천부재능들을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 포함한다. 그러나 도덕성 차원들의 달성이 사람을 필사적 생애의 실제적 투쟁으로부터 해방시키지는 않는다. 사람의 물리적 환경은 실존을 위한 투쟁을 수반하며; 사회적 상황들은 윤리적 조정을 필요로 하며; 도덕적 상태는 이성의 최고 영역들 속에서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며; (하나님을 이해해 온)영적 경험은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진지하게 노력하기를 요구한다.

5:5.2 (68.5) 종교는 과학의 사실들, 사회의 책무들, 철학의 가정(假定)들, 또는 도덕성의 암시적 의무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종교는 삶의 환경에 대한 인간 반응의 독립된 영역이고 도덕이 생긴 뒤에 있는 인간 발전의 모든 단계들에서 반드시 나타난다. 종교는 가치들을 실현하고 우주 교제를 즐기는 네 차원들 즉: 자아-보존의 물리적 또는 물질적 차원; 교제의 사회적(社會的) 또는 감정적 차원; 이성의 도덕적 또는 의무적 차원; 신성한 경배를 통한 우주 교제에 대한 인식의 영적 차원, 그 모두에 스며들 수 있다.

5:5.3 (68.6) 사실을-추구하는 과학자들은 하나님최초 원인 즉 힘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인 예술가들은 하나님을 아름다움의 이상(理想) 즉 미학(美學)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 추론하는 철학자들은 때로 우주적 통일성의 하나님으로, 심지어 범신론적 신격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신앙을 가진 종교가들은 생존을 촉진시키는 하나님,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

5:5.4 (68.7) 도덕적 행위는 진화된 종교 그리고 심지어 계시된 종교의 일부분보다 항상 선행되지만, 종교 경험 전체보다 선행될 수는 결코 없다. 사회적 봉사는 도덕적 사고와 종교적 삶의 결과이다. 도덕성은 종교적 경험의 비교적 높은 차원까지 생물학적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계를 찬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통일성을 숭배하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경배가 아니다.

5:5.5 (68.8) 진화적 종교는, 섭리사들의 증여와 진리의 영의 도래를 포함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계시된 종교에 대한 수용성의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과학과 예술과 철학의 모체(母體)이다. 인간 실존에 대한 진화적 풍경은, 종교의 특성들이 하나는 진화적이고 생물학적이며 다른 하나는 계시적이고 주기적인 것처럼 매우 다름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함께 시작하고 종교와 함께 끝난다. 그리하여, 종교는 사람에게 전형적이고 자연스러운 반면, 그것은 또한 선택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의 뜻에 거슬리면서까지 종교적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5:5.6 (69.1) 종교적 경험은, 근본적으로 영적이기 때문에, 물질적 정신에 의해서는 결코 충분히 이해될 수 없으며; 따라서 신학의 기능 즉, 종교의 심리학이 나왔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 이해의 기본적 교리가, 유한한 파악력 속에 하나의 역설(逆說)을 낳는다. 신성한 내재성 즉 하나님이 각 개인 안에 있고 또한 그 일부분이라는 개념을, 하나님의 초월의 관념 즉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신성한 통치와 조화시키는 것은 인간적 논리와 유한한 이성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신격에 대한 이 두 근본적 개념들은 인격적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개념을 신앙으로-납득함에서 그리고 지성적 경배를 정당화시키고 인격체 생존의 소망을 확인하기 위한 하나님의 단편인 그 내주하는 현존에 대한 자각 속에서 통합되어야만 한다. 종교의 그 난제들과 모순들은, 종교의 실체들이 지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필사자 수용능력을 완전히 벗어난다는 사실 속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다.

5:5.7 (69.2) 필사적 사람은 그가 이 땅에서 잠시 머무는 그 날들 동안에도, 종교적 경험으로부터 세 가지 큰 만족감을 획득한다:

5:5.8 (69.3) 1. 지능적으로 그는 더욱 통합된 인간 의식(意識)의 만족감을 획득한다.

5:5.9 (69.4) 2. 철학적으로 그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이상(理想)의 실체화를 즐긴다.

5:5.10 (69.5) 3. 영적으로 그는 참된 경배의 영적 만족 속에서 신성한 동무관계에 대한 경험이 자라간다.

5:5.11 (69.6) 하나님-의식(意識)은, 그것이 그 영역들의 진화하는 필사자에 의해 경험되듯이, 변화하는 세 요소들 즉 실체 실현의 서로 다른 세 차원들로 이루어진다. 첫째로는 정신 의식(意識)--하나님관념에 대한 파악--이 있다. 다음에는 혼 의식--하나님이상(理想)에 대한 깨달음--이 따라온다. 마지막으로는, 영 의식--하나님영 실체에 대한 깨달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무리 미완성적이더라도, 신성한 깨달음의 이 요소들의 통합에 의하여, 필사적 인격체는 하나님인격체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항상 모든 의식 차원들을 온통 뒤덮는다. 최종성의 단체를 달성한 그 필사자들 안에서, 이 모든 것은 때가 되면 하나님 지존성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하나님궁극성, 즉 낙원 아버지의 유한절대적 초월의식의 어떤 국면에 대한 깨달음이 될 것이다.

5:5.12 (69.7) 하나님-의식의 경험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똑같이 전수되지만, 인간 지식에 있어서 각각의 진보하는 분할시대마다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신학적 정의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 하나님을-앎 즉 종교적 의식(意識)은 우주적 실체이지만, 얼마나 타당한 (실제적인) 경험이든지간에, 그것은 지성적인 비평과 이성적인 철학적 해석에 기꺼이 자신을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되며; 인간 경험의 전체성(全體性) 속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이 되도록 추구해서는 안 된다.

5:5.13 (69.8) 인격체의 영원한 생존은 필사적 정신의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그의 결심들이 불멸적 혼의 생존 잠재력을 결정한다. 그 정신이 하나님을 믿고 그 혼이 하나님을 알 때, 그리고 양육하는 섭리사와 함께 그들 모두가 하나님갈망할 때, 생존이 보증된다. 지능의 제한조건들, 교육의 단축, 문화의 상실, 사회적 상태의 메마름, 그리고 심지어 교육적, 문화적, 및 사회적 이점의 불행한 부족으로부터 발생되는 인간 표준들의 열등함조차도, 인간적으로 장애를 받고 불운하지만 믿음을 가진 그러한 개인들 속에 있는 신성한 영의 현존을 무효로 만들 수 없다. 신비 관찰자의 내주(內住)가 불멸적(不滅的) 혼의 성장 및 생존의 잠재력의 시초를 이루고, 그 가능성을 보장한다.

5:5.14 (70.1) 출산할 수 있는 필사자 부모들의 능력은 그들의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상태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 자연적인 환경 아래에 있는 부모의 인자(因子)들의 합동은 자손을 생기게 하기에 매우 충분하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신성한 섭리사와의 합동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수용능력을 소유한 인간 정신은, 만일 그러한 영(靈)이-부여된 개인이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진지하게 갈망한다면,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정직하게 선택한다면, 생존하는 특성들을 가진 그의 불멸적(不滅的) 혼의 생산을 시작하고 촉진시키도록 그 팔사자 안에 요구되는 것 전부에 해당한다.

6. 인격체의 하나님

5:6.1 (70.2) 우주적 아버지는 인격체들의 하나님이시다. 가장 낮은 필사적 및 물질적 인격체 신분의 피조물로부터 가장 높은 창조자 존엄성 및 신성한 신분에 해당하는 인격들에 이르기까지, 우주 인격체의 영토는 그 중심과 경계선을 우주적 아버지 안에 둔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인격체의 증여자인 동시에 보존자이시다. 그리고 낙원 아버지는 마찬가지로 신성한 뜻을 행하기로 전심으로 선택한 그 유한 인격체들 전부의 운명이기도 한데,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갈망한다.

5:6.2 (70.3) 인격체는 우주들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인격체의 다양한 계급들 및 차원들의 조성에 들어가는 요인들에 대한 적당한 개념들을 형성할 수 있지만, 인격체 자체의 실제적 본성을 충분히 파악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함께 투입될 때 인간 인격체를 위한 운반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분명하게 감지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유한한 인격체의 본성과 의미를 충분하게 파악하지는 못한다.

5:6.3 (70.4) 인격체는 최소의 자아-의식으로부터 최대의 하나님-인식에 이르기까지의 범위를 갖는 정신 천부재능을 소유하는 모든 피조물들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정신 천부재능 자체만으로는 인격체가 아니며, 뿐만 아니라 영도 아니고 물리적 에너지도 아니다. 인격체는 물질과 정신과 영의 연합되고 조화를 이룬 에너지들의 이 살아있는 체계들 위에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독점적으로 증여되는 조화우주적 실체 속에 있는 그 특성 및 가치이다. 뿐만 아니라 인격체는 진보적 성취도 아니다. 인격체는 물질적이거나 영적일 수 있지만, 거기에 인격체가 있든지 또는 거기에 인격체가 없든지 둘 중 하나이다. 인격적이-아닌-것은 낙원 아버지의 직접 행동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격적 존재의 차원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5:6.4 (70.5) 인격체의 증여는 우주적 아버지의 독점적 기능, 즉 상대적인 창조적 의식의 속성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유의지 통제와 함께 그가 증여하는 살아있는 에너지 체계들의 인격화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분리된 인격체는 없으며, 어떤 인격체도 아버지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 인격체의 절대적 섭리사 핵(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자아성질(自我性質)의 기초적 속성들도 우주적 아버지의 증여물(贈與物)들인데, 조화우주적 사역에 속한 그의 독점적으로 인격적인 범위 안에서 행동한다.

5:6.5 (70.6) 인격-이전 상태의 섭리사들이 필사적 피조물들의 수많은 유형들 속에 내주하는데, 동일한 이 존재들이 필사적 죽음으로부터 궁극적 영 달성 잠재력과 함께 모론시아 피조물들로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그렇게 보증한다. 왜냐하면, 인격체 기증에 속하는 그러한 피조물 정신이 영원한 하나님의 영의 단편(斷片) 즉 인격적인 아버지의 인격-이전 증여에 의해 내주되면, 이 유한 인격체가 절대자의 실현을 위해 밖으로 뻗어나간다 하더라도 그 궁극자와 유사한 운명을 열망하고 신성한 세계 및 영원한 세계의 잠재력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5:6.6 (71.1) 신성한 인격체가 되기 위한 수용능력이 인격-이전 섭리사 안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으며; 인간 인격체가 되기 위한 수용능력은 인간 존재의 조화우주적-정신 기증 속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필사적 사람의 경험적 인격체는 필사적 피조물의 물질적 생명 운반체가 우주적 아버지의 해방시키는 신성(神性)에 의한 접촉을 이룩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떤 활동적이고 기능적인 실체로서 목격되지 않는데, 자아-의식적이고 (상대적으로) 자아-결정적 및 자아-창조적 인격체로서 경험의 바다 위에 그렇게 항해를 시작한다. 그 물질적 자아는 정말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인격적이다.

5:6.7 (71.2) 그 물질적 자아는 인격체와 정체성, 즉 일시적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인격-이전의 영 섭리사 역시 정체성, 즉 영원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 물질적 인격체와 이 영 전인격체(前人格體)는 불멸적 혼의 생존하는 정체성을 실존시키는 것과 같이 그들의 창조적 속성들을 연합시킬 수 있다.

5:6.8 (71.3) 선행되는 원인에 대한 절대적 의존의 족쇄로부터 사람의 내부적 자아를 해방시켜 왔고 불멸적 혼의 성장을 위해 그렇게 준비해 왔기 때문에, 아버지는 옆으로 비켜 계신다. 이제는, 사람이 적어도 영원한 운명에 관계할 때 원인 반응의 족쇄로부터 그렇게 해방되어 왔기 때문에, 그리고 불멸적 자아 즉 혼의 성장을 위해 준비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선택하는 대로 자기 것이 되는 이 생존하는 그리고 영원한 자아의 창조를 원하든지 또는 금지하든지 하는 문제가 사람 자신에게 남아 있다. 넓은 우주들의 우주 전체 중에서 어떤 다른 존재나 세력이나 창조자나 매개체라도, 필사자의 선택에 속하는 인격체의 영원한 운명에 관하여, 선택의 영역 안에서 그것이 작용할 때, 필사적 자유의지의 절대적 주권에 조금도 간섭할 수 없다. 영원한 생존과 관계될 때, 하나님은 물질적 및 필사적 의지의 주권을 천명해 왔으며, 그 명령은 절대적이다.

5:6.9 (71.4) 피조물 인격체의 증여는 노예적 반응으로부터 선행(先行) 원인을 향한 상대적 해방을 수여하며, 그러한 모든 도덕적 존재들의 인격체들은, 진화적이든지 아니든지, 우주적 아버지의 인격체 속에 중심을 둔다. 그들은 광대하고 우주적인 가족 집단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우애있는 회로를 구성하는 존재의 그 유사성에 의해 그의 낙원 현존을 향하여 계속 끌어 당겨진다. 모든 인격체 속에는 신성한 자발성이라는 유사성이 있다.

5:6.10 (71.5) 우주들의 우주의 인격체 회로는 우주적 아버지의 인격 속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낙원 아버지는 모든 차원들의 자아-의식 실존의 모든 인격체들을 직접 의식하고, 직접 접촉한다. 그리고 전체 창조세계에 대한 이 인격체 의식은 사고 섭리사들의 사명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5:6.11 (71.6) 모든 중력이 낙원 안에 회로화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정신은 공동 행위자 안에 회로화 되어 있고, 모든 영이 영원한 아들 안에 회로화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인격체는 우주적 아버지의 인격적 현존 속에 회로화 되어 있으며, 이 회로는 모든 인격체들의 경배를 근원적 및 영원적 인격체에게 정확하게 전달한다.

5:6.12 (71.7) 섭리사가 내주하지 않는 그 인격체들의 경우에는: 선택-자유의 속성이 우주적 아버지에 의해 역시 증여되어 있고, 그러한 인격들도 신성한 사랑의 위대한 회로, 즉 우주적 아버지의 인격체 회로 속에 마찬가지로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참된 인격체들의 주권적 선택을 제공하신다. 어떤 인격적 피조물도 영원한 모험여행 속으로 강요될 수 없으며; 영원성의 문은 자유의지를 가진 하나님의 자유의지적 아들들의 자유의지적 선택에 반응해서만 열린다.

5:6.13 (72.1) 그리고 이것은 시간세계의 자녀들에 대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관계를 제시하려는 나의 수고를 나타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말하고 마친 후에, 나는 하나님이 너희의 우주 아버지이심을, 그리고 너희는 모두 그의 행성 자녀들임을 반복하는 것 이상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5:6.14 (72.2) [이것은 우버사신성한 조언자에 의한 우주적 아버지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들 중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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